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가 ‘박근혜 게이트’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기재부 출신의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구속영장이 청구된 데 이어 최상목 1차관도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기재부는 당혹감 속에서 일손을 잡지 못하고 있다.
22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내년도 나라살림살이인 예산안 처리시한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는데 상당한 진통을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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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상목 기획재정부 1차관. |
헌법상 예산안은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인 12월 2일까지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 내년도 예산안은 사상 최초로 400조 원을 돌파했지만 이른바 ‘최순실 예산’ 파문에 휘말리면서 한 차례 감액되는 소동을 벌였다.
최근 상임위별 예비심사가 마무리된 가운데 예결위 소위가 가동됐지만 정국 혼란에 묻혀 예산심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12월 중순에 발표될 내년 경제정책 방향도 안갯속이다.
기재부와 내년 경제정책 방향의 기본틀을 협의해야 할 청와대는 사실상 업무수행이 마비돼 있다. 경제정책 방향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부처 간 정책조율도 현재 기대하기 어렵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내년 대선 등 정치적 일정을 앞둔 상황에서 '박근혜 게이트'까지 터지면서 정부의 정책 추진력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이에 따라 내년도 우리 경제상황도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기재부 공무원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다.
기재부는 그동안 임종룡 금융위원장,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강호인 국토교통부 장관 등 다른 부처의 장관과 차관을 배출하면서 경제 총괄부처로서 자부심이 높았다.
하지만 조원동 전 경제수석에 이어 최상목 1차관까지 박근혜 게이트에 연루된 것으로 드러나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최 차관은 지난해 10월 21~24일 미르 설립과 관련해 열린 회의에서 “아직도 출연금 약정서를 안 낸 그룹이 있느냐. 명단을 달라”고 한 데 이어 “롯데도 출연기업 포함시키라”고 독촉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최 차관은 상관인 안종범 전 수석의 지시에 따랐다고 해명했다.
최 차관은 국감 위증논란에도 시달리고 있다. 최 차관은 지난달 국감에서 ‘청와대 근무 시절 미르 관계자들을 만난 적이 있느냐’는 김현미 의원의 질의에 “미르가 설립된 이후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재단 관계자 두 명이 찾아와 만났다”라고만 대답했다.
조 전 수석과 최 차관은 공통적으로 기재부 내에서 선후배들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최 차관은 특히 경제정책 및 세제 국제금융 분야를 맡고 있는데 내년 경제정책 방향을 수립하고 세법 개정안을 추진하는 일을 총괄한다. 기재부 관계자는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최 차관이 게이트에 연루돼 분위기가 영 어수선하다”고 말했다.
출세 코스나 엘리트 관료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청와대 근무가 오히려 발목을 잡으면서 앞으로 청와대 파견을 피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공무원들 사이에서 흘러나온다.
기재부의 한 공무원은 “공직자로서 우리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없는 지금의 상황이 가장 답답하다”며 “하루빨리 혼란이 해결돼 정상화되기만을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 ‘공무원의 숙명’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면서도 ‘옷 벗을 각오’가 없다면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에서 비롯되는 상부의 지시를 거역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재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