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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삼영화학 창업주 관정 이종환의 '기부 뿌리' 찾아가다
[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삼영화학 창업주 관정 이종환의 '기부 뿌리' 찾아가다
2013년 초봄, 당시 서울대 오연천 총장은 도서관 신축 예산 문제로 속을 태우고 있었다.그때 우연히 일면식도 없던 구순의 한 기업인과 마주 앉았다. 삼영화학 창업주 관정(冠廷) 이종환 회장(1924~2023)이었다. 오 총장이 툭 던지듯 고민을 털어놨다."도서관 예산이 없어 걱정입니다. 회장님""총장님, 그거 얼마나 드나요?""600억 정도 듭니다."이종환은 망설임이 없었다."그거 내가 해드리리다."오 총장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가 아연실색한 건 너무나 당연했다. 단 30분이었다. 생면부지의 노회장과 마주 앉아 600억 기부를 약속받기까지 걸린 시간.◆ 서울대 관정도서관 건립에 조건 없이 600억 쾌척성격이 급했던 이종환은 결정도 빨랐다. 이종환은 자신의 자서전 '정도(正道)'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오연천 총장은 잘못 알아들은 게 아닌가 하고 놀라는 표정이었다."오 총장이 진짜 놀란 건 그 이후였다. 이종환 회장과 헤어지고 불과 2시간 뒤, 점심 식사를 하던 그에게 다급한 보고가 올라왔다. 기부를 약속한 이종환이 벌써 학교에 나타났다는 것이다. 오 총장은 그날을 이렇게 회고했다."기부 약속하고 난 지 2시간 만에 (학교에 들러) 신축 예정 부지를 돌아보며 측량하는 이종환 회장님의 모습에는 아연실색해 입이 벌어질 지경이었다. '아, 이런 분이 진정한 귀인이구나'라고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오연천 저 '결정의 미학', 21세기북스)그랬다. 이종환에게 결단의 속도는 곧 실행의 속도였다. 기부엔 아무 조건도 없었다. 오로지 '21세기에 맞는 첨단 도서관으로 만들어달라'는 하나의 주문뿐이었다. 당초 이종환은 자신의 이름이나 호가 건물에 붙는 것을 극구 사양했다. "돈을 냈으면 그만이지, 무슨 이름을 남기느냐"는 식이었다.하지만 학교 측의 간곡한 설득 끝에 비로소 '관정'이라는 두 글자가 건물에 붙었다. 2015년 봄, 이종환의 호를 딴 관정도서관이 그렇게 문을 열었다.기회가 있으면 서울대 관정도서관을 한번 가보시라. 거대한 미술관을 보는 듯 은빛 외관에 압도당한다. 중앙홀엔 '이종환의 의도와 달리' 흉상이 세워졌다. 오른쪽 벽에 이종환의 기부 정신을 짐작할 수 있는 어록이 새겨져 있다.'이 세상에 태어나 만수유(滿手有)했으니 공수거(空手去) 하리라.'손에 돈을 가득 쥐어보았으니, 이제 기꺼이 비우고 가겠다는 처연한 선언과 다름없었다.관정 이종환의 '기부 결정판'은 서울대 관정도서관에 600억을 쾌척한 일이다. 서울대 관정관은 미술관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외관을 자랑한다. <이재우>◆ 세계 1등 인재를 키우기 위해 관정이종환교육재단 설립경남 의령에서 태어나 서울 제기동 창고에서 플라스틱 제조업을 시작한 이종환은 삼영화학을 세계 굴지의 글로벌 필름(극초박막 커패시터 필름) 회사로 성장시켰다. 삼영화학은 국내 화학기업 1호로 알려져 있다.이종환은 30년 동안 첨단 애자(碍子: 전신주 전기 절연물) 개발에 박차를 기울였고(고려애자),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중공업에 도전했다(삼영중공업). 정도(正道) 경영을 인생의 모토로 삼았던 그였다.그런 이종환의 사업 인생에 가장 뼈아팠던 순간은 국제전선 사태다. 1970년대 초반 전선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5년 동안 공들인 회사(국제전선)를 대한전선, 금성전선, 정부 3자 압력에 의해 회사를 양도해야 했다. 이종환은 이렇게 토로했다."솔직히 그때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것만으로도 피눈물이 나려고 할 만큼 안타까운 사연이다." (자서전 '정도', 관정이종환교육재단 펴냄)그런 이유로 "상대가 방아쇠를 먼저 당기면 나는 죽는다"는 긴박감을 갖고 살았다고 한다. 때론 전쟁을 치르면서 직원들의 정강이를 걷어찰 만큼 불같은 성미의 그였다.그런 관정에게 기부는 자신과의 '조용한 전쟁'이었다. 그는 흔히 1조 기부왕으로 불린다. 세계 1등 인재를 키우기 위해 설립한 관정이종환교육재단에 전 재산의 95퍼센트를 내놓았다.그의 기부는 철저하고도 엄격했다. 그의 자서전에 따르면, 40년 동안 살아오던 집과 건물을 모두 재단에 넘겼다.심지어 삼영화학 산하 모든 계열사의 토지와 건물도 재단에 출연했다. 그런 계열사는 토지와 건물 소유주인 재단과 임대차 계약을 맺어 매달 임대료를 내게 했다.관정재단에 따르면, 이종환이 세상을 떠난 2023년 기준, 재단의 총 운영자산은 1조 7000억 원에 달한다.국내 최대 장학재단으로 출발해 아시아 최대 장학재단으로 성장한 관정재단. 현재 이종환의 장남인 이석준 삼영그룹 회장이 이사장을 맡고 있다.관정 이종환의 기부 철학은 광주이씨 중시조이자 고려 말 대유학자인 둔촌 이집 선생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필자는 지난해 여름, 경기도 성남 이집 선생 묘를 들렀다. <이재우>◆ 기부 뿌리는 광주이씨 중시조 둔촌 이집 선생의 가르침사실 이종환은 '지독한 구두쇠'로 통했다. 억만장자 자산가였음에도 비행기는 늘 이코노미석을 고집했고, 점심은 자장면을 즐겼다. 그런 그는 왜 애써 모은 전 재산을 사회에 쾌척하게 됐을까?관정은 조상의 가르침을 평생 품고 살았다. 그는 조선조 최대 문벌인 광주이씨 후손이다. 어릴 적 의령 고향집 사랑채에서 조부와 침식을 같이하며 자랐다고 한다. 조부는 광주이씨 집안의 중시조이자 고려 말 대유학자인 둔촌(遁村) 이집 선생이 후손에게 이른 말씀을 자주 들려주었다.'자식들에게 한 광주리의 황금을 물려주느니 한 권의 경서를 더 읽혀라.'이는 관정 집안의 오랜 가훈이었다. 관정은 자서전에서 "전 재산 환원 계기는 둔촌 이집 선생의 가르침 때문"이라고 적고 있다. 필자는 지난해 여름, 경기도 성남의 둔촌 묘역을 참배했다. 전율이 일었다. 관정의 기부가 여기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에. (둔촌 이집은 서울 강동구 둔촌동 지명의 유래가 된 인물이다.)둔촌 선생의 유산(遺産)이 대를 이어 내려오다 관정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큰 나눔으로 발현된 셈이다. 둔촌의 비석을 어루만지자니 한 가문의 숨결이 손끝에 느껴졌다. 2012년 복원된 관정 이종환의 의령 생가. 사랑채 회경당(會敬堂)이 단정하게 자리잡고 있다. 관정은 '돈을 버는 데는 천사처럼 못했어도, 쓰는 데는 천사처럼 하겠다', '이 세상에 태어나 만수유(滿手有)했으니 공수거(空手去) 하리라' 같은 어록을 남겼다. <이재우>◆ 경남 의령 생가에서 큰 나눔의 의미를 되새기다장소를 옮겨본다. 경남 의령. 인구 2만 5천 명 남짓의 이 작고 적막한 군(郡)에서 한국 경제사의 두 거인이 태어났다. 정곡면 중교리에는 삼성 창업주 호암 이병철, 용덕면 정동리에는 관정 이종환.필자는 최근 관정 생가를 찾았다. 마을 주민에게 물어보니 관정이 자란 정동리(井洞里)는 옛날부터 우물물이 좋아 '우무실'이라 불렸다고 한다. 필자는 사랑채 회경당에 잠시 앉아 이런 생각을 했다. "호암의 생가가 '어떻게 부를 쌓을 것인가'를 치열하게 묻는다면, 관정의 생가는 '그 부를 어디에 쓸 것인가'라는 묵직한 답을 건네고 있지 않은가"라고.생가를 복원하던 2012년, 아흔의 노회장은 마당 한쪽 동상에 비장한 어록을 새겨 넣었다. '정도(正道)의 삶을 실천하라. 정도가 결국 승리한다.'필자는 관정이 그토록 강조한 '정도'의 의미를 짐작하기조차 어려웠다. 그 '큰그릇'을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었다. 생가를 나오며 가슴에 한 문장만 담아 왔다. 만수유(滿手有) 공수거(空手去). 관정 이종환이 100세까지 붙들고 살았던 화두였다. 이재우 경영어록서 '일언천금'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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