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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상상력만 남기고 관성은 버린 '레고 구세주' 크누스토르프
[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상상력만 남기고 관성은 버린 '레고 구세주' 크누스토르프
과거에 했던 일을 '더 열심히' 했다가 한때 무너졌던 기업이 있다. 덴마크 장난감 제조업체 레고(LEGO)다. 레고는 상상력으로 성장했지만, 관성으로 위기를 키웠다.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던 브랜드 레고 앞에 어느 날 갑자기 회색 코뿔소가 나타났다. 콧김을 내뿜으면서 발을 구르고 있었다. 레고의 선택지는 둘 중 하나. 피하거나, 짓밟히거나.레고가 맞닥뜨린 위기를 이해하는 데 '회색 코뿔소 이론(Gray Rhino Theory)'만 한 것도 없다. 회색 코뿔소란 분명히 눈앞에 보이고, 충분히 예측 가능하며, 명확히 대응할 시간도 있었지만 조직이 집단적으로 위기를 외면하는 상황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회색 코뿔소라는 개념을 만든 작가 미셸 워커(Michele Wucker)는 "회색 코뿔소의 위기는 예측 가능하지만, 조직은 늘 '아직 아니다'라는 선택을 한다"고 꼬집었다.미셸 워커의 말처럼, 우리는 이런 회색 코뿔소를 무시했다가 대가를 치른 기업 사례를 수없이 봐왔다. 2000년대 초반 레고가 마주한 상황이 그랬다. 당시 레고는 파산 직전이었다.필자는 회색 코뿔소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가 '코뿔소화'로 개념을 확장해 본다. 코뿔소화란, 조직이 위험을 인식하면서도 과거의 성공 방식에 집단적으로 안주하는 상태를 말한다. 이 표현은 극작가 외젠 이오네스코의 희곡 '코뿔소'에서 차용됐다.작품 속에서 사람들이 어느 순간부터 하나둘 코뿔소로 변해간다. 피부는 두꺼워지고, 몸은 커지며, 움직임은 둔해진다. 덴마크 전기작가 옌스 아네르센은 '레고 이야기'라는 책에서 레고의 한 인사 책임자의 말을 인용해 이렇게 지적했다."프랑스의 작은 마을 사람들이 하나하나 피부가 두꺼운 코뿔소로 변해가듯, 레고의 경영진도 시간이 갈수록 뻣뻣하고 느린 동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갈수록 육중해진 몸을 이끌고 늘 가던 길로만 갈 뿐, 무리에서 벗어나 과감하게 움직일 생각은 사라지고 있었다."(옌스 아네르센 저, '레고 이야기', 민음사)미셸 워커의 회색 코뿔소가 이미 닥친 위기라면, 이오네스코의 코뿔소는 그 위기를 맞이하는 조직의 상황을 말한다. 레고의 위기는 바로 이 두 코뿔소가 동시에 달려든 사례였다.생각해 보자. 많은 기업이 회색 코뿔소 앞에서 쓰러진 이유는, 사실 그 전에 이미 조직 내부가 '코뿔소화'되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레고 블록을 가지고 놀던 기억은 많은 사람들에게 소중한 어린 시절의 일로 남아 있다. 레고는 오늘날에도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여전히 인기 있는 브랜드다. <레고 그룹>2000년대 초반 레고그룹은 외부적으로 회색 코뿔소, 내부적으로는 코뿔소화라는 이중 위기에 놓였다. 그럼에도 그들은 놀라운 회복력으로 탈출에 성공했다. 잠시 레고 역사부터 좀 보자.1932년 덴마크의 빌룬이라는 작은 마을. 목수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안센이 목공소를 운영하면서 아이들 장난감 회사 레고를 창업했다. 레고라는 이름은 '잘 ​​놀다'라는 뜻의 덴마크어 'leg godt'의 첫 음절에서 따왔다.처음에는 나무로 장난감을 만들었고, 그로부터 약 20년 후 플라스틱 블록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전 세계에 레고 블록을 수출하기 시작했을 때, 창업자는 라틴어로 레고가 '조립하다'라는 의미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레고는 창업자 3대에 걸쳐 장기간 고성장을 이어가며 덴마크의 가장 존경받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런 레고에 위기가 들이닥친 건 1998년. 처음으로 적자를 내더니 2003년에는 걷잡을 수 없는 재정난에 허덕이게 되었다.사모펀드들이 레고 인수를 위해 눈독을 들였고, 미국의 완구 대기업 마텔에 인수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창업 가문은 과감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레고 역사상 전례 없는 결정이 내려졌다.바로 가족 구성원이 아닌 외부 인사에게 경영권을 넘긴 것이다. 이는 전략적 선택이기 이전에 창업 가문의 자존심을 내려놓는 결단이었다.새롭게 발탁된 CEO는 장난감 업계 베테랑도 아닌 맥킨지 컨설턴트 출신의 예르겐 비 크누스토르프(Jørgen Vig Knudstorp). CEO 취임 당시 35세였다.비즈니스 경력을 쌓기 전에 18개월 동안 유치원 교사로 일했던 특이한 경력의 크누스토르프는 레고에 입사한 지 3년도 되지 않아 회사의 운명을 손에 쥐게 되었다. 위기 수습에 나선 그는 당시 회사의 상황을 이렇게 분석했다."레고가 너무 많은 분야로 너무 빠르게 사업을 확장하면서 경험이 부족한 영역에까지 손을 댔다. 더 큰 문제는 레고그룹의 경영조직과 시스템이 수십 년 동안의 성공을 토대로 구축된 나머지, 하락에 대응하기에 너무 부실하다는 것이었다."(데이비드 로버트슨 저, '레고 어떻게 무너진 블록을 다시 쌓았나', 해냄 출판)그동안 잘 나갔던 레고는 과거의 성공 방식을 쉽게 내려놓지 못했다. 그런 관성은 혁신을 튕겨나가게 만들었다. 레고는 하루빨리 외적으로는 회색 코뿔소를, 내적으로는 '코뿔소화'와 결별해야 했다.크누스토르프는 조직의 관성을 하나씩 하나씩 부숴나갔다. 무엇보다 레고를 '블록으로 회귀'시킴으로써 분명한 방향을 설정했다. 수익을 낼 만한 제품만 살리고 고전하는 라인은 신속하게 버렸다. 레고랜드 같은 자산도 매각했다. 사업성에 복잡성을 제거한 것이다.'레고 어떻게 무너진 블록을 다시 쌓았나'의 저자 데이비드 로버트슨 교수의 진단도 다르지 않았다."하지 않을 일을 결정하는 것이 할 일을 결정하는 것만큼 중요하다."로버트슨 교수는 2002년부터 2010년까지 스위스 경영대학원 IMD에서 '레고 혁신 교수'로 활동했다.(현재는 MIT 슬로안 경영대학원 선임 교수)크누스토르프가 집중한 부분 중 하나는 집단지성을 활용하는 일이었다. 제품 개발에 하고 싶은 말이 있는 사람이라면, 레고 외부인이라도 누구나 자신에게 이메일 보낼 수 있도록 주소를 공개했다."너드(Nerd: 특정 분야에 몰두하는 팬들)를 끌어들여라."예르겐 비 크누스토르프가 레고의 CEO로 취임했을 때, 그는 브랜드의 우선순위를 좁히는 데 집중했다. 그는 "레고는 왜 존재하는가?"라는 한 가지 질문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그는 궁극적으로 그 답을 찾았다. <레고 그룹>크누스토르프는 청소년 팬과 성인층 팬을 '레고 너드'로 규정했다. 그들이 열광하면 다른 레고 소비자들이 따라올 것이라 판단했다. 외부 팬들을 프로젝트 핵심 개발에 참여시키는 파격적인 전략은 레고 내부 전문가만으로 생산하는 것보다 훨씬 나은 성과를 이뤄냈다.이는 데이비드 로버트슨 교수의 "시장과 싸우기보단 '고객과 데이트(dating your customer)'를 통해 혁신을 이뤄야 한다"는 조언과도 결을 같이 한다.그렇게 크누스토르프가 2004년부터 2016년까지 CEO를 맡는 동안 레고그룹은 파산 위기에서 벗어났다. 이는 현대 경영사에서 가장 교과서적인 회생 사례로 꼽힌다. 수많은 덴마크 기업들이 크누스토르프의 접근 방식에서 영감을 받았다.크누스토르프는 레고를 떠났지만 그의 리더십은 끝나지 않았다. 덴마크식 리더십이 세계에서도 통한다는 사실을 그는 몸소 증명하고 있다. 현재 스타벅스의 수석 사외이사이면서 나이키 사외이사로 일하고 있다. 2026년부터는 스위스 경영대학원 IMD의 이사회 의장도 맡는다. 레고의 부활이 증명한 것은 분명했다. 조직을 살린 것은 더 빠른 혁신이 아니라, 오랫동안 붙잡고 있던 성공의 관성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용기였다.돌이켜보면, 대부분의 기업은 위기 때문에 망하지 않는다. 위기를 외면한 채 이미 다른 조직, 다시 말해 '코뿔소화'되어버렸기 때문에 무너진다.기억하라. 미셸 워커의 회색 코뿔소든, 이오네스코의 코뿔소든 언제든 당신 조직 곁에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이재우 경영어록서 '일언천금'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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