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기선 기획재정부 차관(오른쪽 둘째)은 10일 비상경제차관회의에서 “가정, 학교, 회사 등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과제를 포함한 에너지 효율 혁신 및 절약 강화 방안을 3월 중 발표할 예정”이라며 “그동안 공공 부문을 중심으로 추진해온 동절기 에너지 절약 노력을 연중 상시화하고 전 국민이 동참하는 강력한 절약 운동으로 확산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1973년 10월 발발한 제4차 중동전쟁의 영향으로 세계 경제는 ‘1차 오일쇼크’를 겪는다. 국제유가는 배럴당 2~3달러 수준에서 3개월 만인 1974년 1월에 12달러 수준으로 급등했고 그 충격은 한국 경제에도 큰 영향을 줬다.
당시 정부는 위기 극복을 내세우며 국민에게 석유소비 절약운동, 사실상 석유배급제 실시 등을 꺼내 들었다.
50년이 지난 지금, 역사가 수레바퀴로 비유되듯 과거와 비슷한 일이 반복되고 있다.
10일 방기선 기획재정부 차관은 비상경제차관회의에서 “가정, 학교, 회사 등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과제를 포함한 에너지 효율 혁신 및 절약 강화 방안을 3월 중 발표할 예정”이라며 “그동안 공공 부문을 중심으로 추진해온 동절기 에너지 절약 노력을 연중 상시화하고 전 국민이 동참하는 강력한 절약 운동으로 확산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국민에게 ‘절약’을 들이밀 때는 언제나 그렇듯 ‘위기’일 때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세계적 에너지 원가 상승, 반도체 등 주력 품목의 수출 부진이 겹친 현재 한국의 경제 상황을 놓고는 위기라는 평가가 대체적인 것으로 보인다.
물가 상승률은 올해 2월에 4.8%로 10개월 만에 5%대에서 내려왔다. 1월 무역수지는 한국은행이 1980년 통계 작성을 시작한 이후 최대 규모인 45억2천만 달러 적자를 냈다.
방 차관 이날 역시 국가적 절약운동을 추진하려는 이유를 놓고 “물가안정, 무역수지 적자 완화 등을 위해서는 국민 모두가 힘을 합쳐 에너지 소비를 절감할 필요가 있다”고 직접 설명했다.
모든 구성원이 힘을 모아 공동체의 위기를 극복하는 일은 분명 아름다운 일이다. 특히 한국은 오랜 역사를 거치며 위기 때마다 온 국민이 뭉쳐 위기를 극복해 온 경험도 많다.
하지만 공동체의 힘을 모으는 아름다운 일이 정부나 대기업처럼 사회에 책임을 져야 할 주체의 정치적 혹은 경제적 부담을 덜기 위한 편의에 이용되는 측면은 없는지 짚어볼 필요는 있다.
또한 위기 극복으로 얻어낸 과실이 사회 구성원이 분담한 고통에 맞게 분배되는지도 의문이다.
정부는 1차 오일쇼크 때는 물론 이후로도 2차 오일쇼크, IMF 구제금융 등 국가적 경제위기 때마다 결국은 국민에게 절약 혹은 금 모으기 같은 희생을 요구해 왔다.
IMF 구제금융 극복을 위한 금모으기 운동이 한창일 때는 일반 가정집에서 고이 보관해 온 돌반지까지 나온 사연은 국가를 위한 희생이라며 널리 회자되기도 했다.
하지만 고위 관료, 재벌 등 사회지도층으로 분류되는 인사가 과감하게 희생한 경우는 구체적 사례가 떠오르지 않는다. 일부 재벌들의 ‘사재 출연’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기는 했으나 사실상 자신이 소유한 재단 혹은 계열사로 돈을 옮기는 무늬만 출연인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한편 그렇게 한국 경제가 위기를 극복하고 성장할 때마다 한국의 빈부격차는 더욱 커져만 갔다. 누군가의 위기는 누군가의 기회였을 뿐이다.
책임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 더 많은 희생을 겪는 상황은 올겨울에도 마찬가지였다.
정부는 에너지 위기에 대응한다면서 공공기관의 난방온도를 17도로 제한했고 사무를 보는 직원들, 공공기관을 찾은 민원인 등은 추위에 떨며 고통을 감내했다. 하지만 대통령실, 국회, 법원과 같은 곳은 난방온도 제한이 없이 20도 이상으로 난방온도를 유지했다.
참다못한 일부 정부 연구기관 소속 연구원들은 공공기관 실내온도 제한 조치를 놓고 헌법소원을 냈을 정도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겠다는 ‘전 국민이 동참하는 강력한 에너지 절약 운동’에 회의적인 생각이 먼저 드는 까닭이다.
사실 ‘절약’이라는 단어 사용부터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에 따르면 절약은 ‘마구 쓰지 않고 필요한 데에만 써서 아낌’이라는 의미다.
에너지 위기로 모두가 고통받은 이번 겨울에 한 달 난방비 몇만 원 상승도 부담스러운 대다수 일반 가정집과 대통령실, 국회, 법원, 지방자치단체와 같은 공공기관 가운데 어느 곳이 더 에너지를 마구 썼을까?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