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당시 수석부회장)이 2020년 1월 대한상의에서 열린 신년인사회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미국 인플레이션 완화법(감축법)에 발맞춰 미국 전기차 공장 신설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그룹이 미국 전기차 생산거점 마련에 속도를 내면서 정 회장이 배터리 분야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가운데 누구와 손을 잡을지도 시선이 쏠린다.
26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미국 인플레이션 완화법(IRA) 대응을 위한 정부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산업부는 인플레이션 완화법과 관련한 민관합동 대응반을 구성하고 미국 행정부, 의회, 백악관 등을 대상으로 접촉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9월 안덕근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은 미국을 직접 방문해 미국 측과 인플레이션 완화법에 관해 논의할 예정이고 이에 앞서 8월 안으로 산업부 실장급 인사들도 미국을 방문해 협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정부뿐 아니라 발등에 불이 떨어진 현대차그룹도 정 회장이 직접 나서는 등 미국 내 전기차 직접 생산을 서두르는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자동차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이 미국 조지아주 전기차 전용 공장 착공을 올해 10월로 당초 계획보다 6개월 앞당길 것이라는 시선이 나온다. 기존 완공 시점을 2025년 상반기에서 2024년으로 당긴다는 것이다.
정 회장은 23일 전략기획업무를 총괄하는 공영운 현대차 전략기획담당 사장과 미국 출장에 나섰다. 인플레이션 완화법 대응방안 마련을 위한 출장길이라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또 최근 정 회장은 한국을 방문한 팻 윌슨 미국 조지아주 경제개발부 장관을 만나 조지아주에 설립할 첫 전기차 전용 공장과 관련한 협력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의선 회장이 미국의 대규모 첫 전기차 전용 공장 설립에 속도를 내면서 정 회장이 지금까지 배터리동맹을 이어왔던
최태원 회장과
구광모 회장 가운데 누구와 손잡고 미국 진출을 본격화할지 재계의 시선이 몰린다.
현대차그룹은 5월21일 조지아주에 연간 30만 대 규모의 전기차를 생산할 수 있는 완성차 공장을 설립하는 데 6조3천억 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여기에는 인근에 ‘배터리사와의 전략적 제휴를 통한 배터리셀 공장 설립’도 포함됐다.
현대차는 최근 2분기 콘퍼런스콜에서도 합작법인(조인트벤처)을 통한 미국 배터리셀 공장을 지속해서 검토하고 있다고 알렸다.
전기차 전용 공장이 6개월 앞당겨지기로 결정되면 배터리 조달 계획 역시 빨라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
앞서 정 회장은 최 회장과 2020년 7월 충남 서산 SK이노베이션 배터리 생산공장에서 만나 현대차와 SK이노베이션(현 SK온)의 중장기 배터리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정 회장은 구 회장과도 2020년 6월 LG화학 오창공장에서 만나 현대차와 LG화학(현 LG에너지솔루션)의 전기차배터리부문에서 협력을 위한 정보를 공유했다.
당시 재계에서는 전기차를 생산하는 현대차의 정 회장이 한국의 전기차-배터리동맹을 주도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오기도 했다.
정 회장은 최 회장, 구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재계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꾸준한 만남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K그룹과 LG그룹은 모두 배터리를 미래 핵심 사업 가운데 하나로 꼽고 있다. 현대차가 앞으로 미국 전기차시장 공략을 더욱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현대차의 첫 미국 전기차 전용 공장에 핵심 배터리 공급처에 이름을 올리면 향후 수주를 확보하는 데 큰 힘이 될 수 있다.
SK온과 LG에너지솔루션 모두 현대차와 미국 배터리 합작법인을 세우는데 유리한 입지를 가진 것으로 평가된다.
SK온과 LG에너지솔루션은 2025년 이후 각각 미국에서 가장 많은 배터리를 생산한다는 목표를 세워두고 있다. 중국을 공급망에서 제외하는 미국이 국내 배터리기업에게 가장 큰 시장으로 열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또 SK온은 현대차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 기반 전기차 1차 배터리물량의 단독공급사로 선정되는 등 현대차에 오랫 동안 배터리를 공급해왔다. LG에너지솔루션도 E-GMP 2차 배터리물량을 중국 CATL과 공동으로 수주하는 등 협력을 이어왔다.
SK온은 이미 미국 조지아주에 배터리공장을 운영하고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미 조지아주에 생산거점을 마련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대차와 협력을 빠르게 진행할 수 있는 기반을 지닌 셈이다.
해외언론에 따르면 현재까지 조지아주에 예정된 자동차기업들의 전기차 생산공장 투자 규모는 모두 125억 달러(16조 원)에 이른다. 이에 SK온이 수혜를 볼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SK온은 조지아주에 내년 가동 예정인 제2공장을 포함해 모두 연산 배터리 생산능력 21.5GWh를 갖춘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미 인도네시아에서 현대차와 배터리 합작법인을 추진하고 있어 이 경험을 바탕으로 현대차와 협력하는 데 강점을 가질 수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현대차와 합작해 2024년 상반기부터 인도네시아에서 배터리를 양산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이 계획을 위해 현대차그룹은 최근 7억1천만 달러(9500억 원) 차입에 성공하며 순항하고 있다.
다만 현대차가 추진하는 미국 전기차 전용 공장 규모가 큰 점 등을 이유로 현대차가 배터리 협력사를 선정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배터리업계 한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전화통화에서 “인플레이션 완화법이 공식적으로 통과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현대차와 배터리기업 사이 구체적 계획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 있다”며 “또 현대차 전기차 공장 규모가 매우 크기 때문에 더 심도 있는 검토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전화통화에서 “미국 조지아주 전기차 전용 공장의 착공을 앞당기는 방안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며 “배터리기업과 협력 역시 정해진 내용이 없다”고 말했다. 장상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