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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일 오후 정홍원 총리(가운데)가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오른쪽), 박준영 전남지사(왼쪽)와 함께 전남 진도군청을 방문하고 있다. |
정홍원 총리가 다시 원점에 섰다. 정 총리는 ‘시한부 총리’에서 ‘유임 총리’로 꼬리표를 바꿔달게 된 후 세월호 참사 현장부터 찾았다.
사의를 표명한 총리가 유임되는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아 정치권 안팎의 비난 여론이 쏟아지는 가운데 정 총리가 후폭풍을 잠재우고 산적한 난제들을 원만히 풀어나갈 수 있을지 주목을 받고 있다.
정 총리는 27일 오후 3시께 진도군청에 마련된 범정부사고대책본부를 찾아 그동안의 사고 수습 과정을 보고 받았다. 정 총리는 이어 실종자 가족 일부가 머물고 있는 진도 실내체육관과 현장 상황실이 설치된 팽목항을 방문해 실종자 가족들을 위로하고 사고 수습 중인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정 총리의 진도 방문은 세월호 침몰 이후 9번째이자 유임결정 이후 첫 공식일정이다. 26일 박 대통령으로부터 유임소식을 들은 정 총리는 가장 먼저 진도 현장방문 일정부터 잡았다고 전해진다.
세월호 사고에 대한 책임 차원에서 물러난 정 총리였던 만큼 첫 일정으로 진도를 방문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정치권은 해석한다. 정 총리의 유임이 결정되면서 결과적으로 세월호 사고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게 됐다는 비난이 빗발치고 있다. 사고수습 책임자로서 변함없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이런 비난을 잠재우고 2기 내각에 대응하겠다는 의지표현으로 해석된다.
정 총리는 이에 앞서 26일 오전 유임 결정 직후 정부서울청사에서 긴급 간부회의를 열고 "고사의 뜻을 밝혔으나 중요한 시기에 장기간의 국정중단을 막아야 한다는 대통령의 간곡한 당부가 계셔서 새로운 각오 하에 임하기로 했다"면서 "앞으로 국가를 바로 세우고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일과 공직사회 개혁, 부패 척결, 그리고 비정상의 정상화 등 국가개조에 앞장 서서 마지막 모든 힘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정 총리는 "필요한 경우 대통령께 진언드리면서, 국가적 과제를 완수해 나가겠다고"도 했다. 오후에 유임 결정 뒤 주재한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관계부처 장관들에 국정운영 각오를 거듭 밝히기도 했다.
정 총리가 국가개조에 대한 각오를 다지고 있지만 과연 그가 이전과 다른 모습으로 제 역할을 수행해낼 수 있을지 현재로선 미지수다. 총리 인선 실패에 따른 민심 악화와 야당의 공세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당장 야당은 거센 비판을 쏟아내며 정 총리를 인정하지 않을 태세다.
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 공동대표는 27일 “아무리 급해도 레드카드를 받은 선수를 재기용할 수 없다”며 후임 총리 후보를 다시 지명하라고 요구했다. 박영선 원내대표도 정 총리를 “바람 빠진 타이어”에 비유하며 대한민국에 활력과 희망을 가져올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일부에서 법적 절차를 문제삼아 정 총리가 인사청문회 검증을 다시 받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새정치민주연합 법률위원장을 맡고 있는 판사 출신의 박범계 원내대변인은 26일 페이스북에 "정 총리는 이미 세월호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해 대통령도 이를 수용하고 후임 총리후보들을 2번씩이나 지명하고 1번은 (임명)동의안과 함께 (인사)청문요청서를 보냈다"며 "그렇다면 정 총리는 유임이 아니라 사표수리 후 총리후보 지명"이라고 밝혔다. 헌법 규정과 인사 청문 법률에 어긋나는 만큼 다시 임명동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통합진보당도 27일 공식 논평을 내고 정 총리 유임 절차를 문제 삼으며 인사청문회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성규 대변인은 이날 "세월호 참사 이후 4월27일 정홍원 당시 국무총리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사의를 표명했고 그로부터 6시간 후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은 박근혜 대통령이 수리한다는 공식브리핑을 내놨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 박근혜 대통령은 안대희 문창극 후보자를 차례로 지명했고 모두 자진사퇴함에 따라 이번에 정홍원 전 총리를 3번째로 지명한 것"이라며 "새누리당이 그렇게 목청 높여서 주장했던 법률적 규정에 따라 국회의 임명동의와 인사청문회 절차를 모두 철저하게 밟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정 총리는 그동안 총리로서 뚜렷한 존재감을 보이지 못했다. 이는 총리가 실권을 갖지 못한 현행 정치시스템의 문제로 인한 것이기도 하지만 “의전총리면 충분하다”는 박 대통령의 총리관 탓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실권 총리로 힘을 발휘할 수 있을지 정 총리의 앞길이 순탄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