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 때 마련한 고준위방사선폐기물 관리정책 기본계획을 재검토하고 있다. 사진은 2019년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이 포화되는 월성원전. |
'사용 후 핵연료'는 고준위 방사선 폐기물로도 불리며 원자력발전 연료로 사용한 뒤 남은 핵물질이다.
당연히 원자력발전소에서 사용한 피복류 등 저준위 폐기물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방사선을 배출하는 위험물이다. 여러 나라에서 이 사용 후 핵연료를 처리하는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다.
이전 정부에서 공론화를 통해 사용 후 핵연료 관리계획을 마련했으나 공론화 과정에 소통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많다. 이에
문재인 정부는 사용 후 핵연료 관리계획을 놓고 재공론화를 추진하고 있다.
◆ 문재인 정부 두 번째 공론화, 사용 후 핵연료
10일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고준위 방폐물 관리정책 재검토 준비단은 사용 후 핵연료 기본계획 재검토와 관련한 정책 건의서를 8월 산업부에 전달한다.
산업부는 재검토단의 정책 건의서를 최대한 존중해 재검토위원회를 구성하고 관련 고시를 제정하는 등 후속 업무를 차질 없이 진행해 나가기로 했다. 이후 본격적으로 공론화 과정을 밟게 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는 100대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로 공론화를 통해 사용 후 핵연료 정책을 재검토한다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이미 정부는 사회적 갈등을 빚은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놓고 공론화 과정을 거쳐 건설을 재개하기로 확정한 바 있다. 이전 정부에서 마련한 사용 후 핵연료 정책 역시 지역사회와 소통 등 충분한 여론수렴이 되지 않았다고 보고 사회적 합의 과정을 거치겠다는 의미다.
이에 공론화 과정에 들어가기 전 준비단계로 5월11일 재검토준비단을 꾸렸다. 은재호 한국갈등학회 회장을 단장으로 원전 소재지역, 환경단체, 원자력계 등의 추천을 받아 15명의 준비단이 구성됐다.
이들은 기본계획 재검토 과정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논의할지 큰 틀에서 설계하는 역할을 맡는다. 재검토 목표, 재검토 실행기구(가칭 재검토위원회) 구성방안, 재검토 항목(의제), 의견 수렴 방법 등을 중점적으로 논의한다.
◆ 이전 정부는 지역·시민사회와 갈등
사용 후 핵연료 문제는 30여년 전부터 제기됐으나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노무현 정부 때부터다. 2007년 국가에너지위원회가 사용 후 핵연료 관리정책을 논의하기 위한 공론화TF를 만들었고 TF 결과 공론화위원회를 통해 사회적 공론화에 나섰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에서 국가에너지위원회 위상 격하, 공론화위원회 시민단체 배제 등으로 공론화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결국 박근혜 정부에서 20개월의 공론화 과정과 10개월의 정부 검토를 통해 2016년 7월25일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을 마련했다.
정부는 기본계획의 내용을 담아 2016년 11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시설 부지 선정 절차 및 유치 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정부 입법으로 발의했다.
하지만 여전히 정부가 국민들의 합의와 지역주민의 동의 없이 사용 후 핵연료 관리시설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반발이 거셌다. 중간저장시설과 영구처분시설을 동일한 지역에 세우도록 해 해당 지역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논란이 지속되면서 정치권도 대응에 나섰다. 신창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부의 법안 발의 며칠 뒤에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중간저장시설 부지 선정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발의했다. 저장시설 부지 선정 절차를 재규정하고 주민투표를 통해 부지를 확정하도록 한 법안이다.
이전 정부가 발의한 법안과 민주당에서 발의한 법안들도 재검토준비단에서 논의해 정책 건의서를 마련하는데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 임시 보관 한계 도래, 시장은 조기 대응 나서
정부가 재공론화 절차를 밟고 있지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사용 후 핵연료는 현재 원전 내의 수조에 임시 보관하고 있지만 매년 700~800톤가량의 사용 후 핵연료가 지속적으로 발생해 점차 포화상태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당초 기본계획에서 중간저장시설은 2035년, 영구처분시설은 2053년까지 완공하기로 했으나 재공론화에 들어가면 이보다 진행이 늦어질 수 있다.
하지만 가장 먼저 포화가 예상되는 월성원전 1~4호기는 2019년이면 저장시설이 한계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우선 부지 내 건식 저장시설 추가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이 외에도 고리 원전과 한빛 원전은 2024년, 한울 원전은 2037년에 포화상태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원전시장에서 일찌감치 사용 후 핵연료 처리 문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난다. 공론화를 통해 관리계획이 확정되면 앞으로 최대 12조 원 규모의 사용 후 핵연료 저장용기시장이 열릴 것으로 예상돼 이를 선점하려는 것이다.
두산중공업은 3일 한국전력기술, 한국원자력연구원과 사용 후 핵연료 관리 기술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이들은 사용 후 핵연료 운반, 저장, 처분기술 개발 등 관련한 사업에서 공조하고 기술·정보·인력 교류와 시설·장비 공동활용 등 긴밀한 협력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나기용 두산중공업 부사장은 “이번 협약으로 국내 기업과 기관 주도로 사용 후 핵연료시장을 선도해나갈 초석이 마련됐다”며 “성공적 기술 자립으로 사용 후 핵연료의 안전성을 확보하고 국제 경쟁력을 높여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