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통신비 인하 압박이 이동통신3사를 넘어 삼성전자, 네이버 등 휴대폰제조사와 인터넷포털로 옮겨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유영민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도 통신비를 반드시 줄이겠다고 공언한 만큼 이동통신단말기 지원금 분리공시제와 제로레이팅 도입이 본격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 분리공시제 도입 급물살로 삼성전자 곤혹
6일 통신업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통신비인하 방안 가운데 하나로 지원금 분리공시제 도입이 유력하게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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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영민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 |
분리공시제란 통신사가 단말기 지원금을 공시할 때 통신사 지원금과 제조사 지원금을 각각 분리해서 공개하는 것이다. 제조사 지원금을 투명하게 해 단말기 출고가격 자체를 낮추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유영민 후보자는 4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통신비 경감 목표를 기필코 달성하겠다”며 “분리공시제를 강하게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김진해 삼성전자 전무는 “(분리공시제와 관련해)정부정책의 방향이 결정되면 따를 것”이라며 수긍의 뜻을 밝혔다.
LG전자가 6월 초 미래부에 분리공시제를 찬성한다는 의견을 전달한데 이어 삼성전자도 한 발 물러서면서 분리공시제 도입은 탄력을 받게 됐다. 이통3사도 통신비인하의 책임을 휴대폰제조사도 함께 져야한다며 분리공시제를 찬성하고 있다.
국회와 시민사회도 분리공시제 도입에 찬성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녹색소비자연대와 알뜰폰협회 등은 6월 분리공시제 도입에 찬성입장을 나타냈다. 또 국회에는 최명길, 변재일,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배덕광 자유한국당 의원 등이 대표발의한 분리공시제 도입을 담은 단말기유통구조 개선법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통신비 인하 압박이 휴대폰제조사로 확대되면서 삼성전자는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분리공시제가 도입될 경우 제조사가 유통망에게 제공하는 판매장려금까지 공개돼 장려금을 통한 시장점유율 유지가 어려워 질 수 있기 때문이다. 2015년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2014년 10월부터 2015년 6월까지 통신사 대리점에 직접 투입한 장려금은 2458억 원으로 같은 기간 660억 원을 지급한 LG전자의 6배에 이른다.
LG전자가 삼성전자보다 한 발 앞서 분리공시제 찬성에 나선 것도 분리공시제 도입이 국내 스마트폰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격차를 좁힐 수 있는 기회라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김홍식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분리공시제가 도입될 경우 휴대폰 가격이 떨어지고 각 모델별 실제 휴대폰 판매가격이 소비자들에게 노출돼 가격경쟁이 심화될 것”이라며 “국내 점유율이 높은 삼성전자의 타격이 가장 클 것”이라고 내다봤다.
◆ 제로레이팅 활성화에 네이버는 부정적
통신비 인하를 위해 제로레이팅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확대되고 있다.
제로레이팅이란 소비자가 특정 콘텐츠를 업로드하거나 내려 받을 때 발생하는 데이터 이용료를 지불하지 않고 콘텐츠사업자가 대신 비용을 내는 방식을 말한다. 데이터요금 인하의 부담을 네이버와 카카오 등 인터넷포털업체에게 지우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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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동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사장(왼쪽)과 한성숙 네이버 대표. |
국내 이통사들은 그동안 꾸준히 제로레이팅 활성화를 주장해 왔다.
인터넷회사들이 이통사가 구축한 인프라를 바탕으로 수익을 내면서도 그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무임승차’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최근 선택약정할인율을 인상하자 통신업계는 인터넷회사도 통신비인하 책임을 같이 져야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국회에서도 제로레이팅 활성화를 놓고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5일 통신비 인하방안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는데 통신비인하의 해법이 제로레이팅 활성화에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윤상필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 대외협력실장은 “통신사업자의 노력만으로는 가계통신비를 절감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방송통신발전기금·정보통신진흥기금 및 제로레이팅만 정책적으로 잘 활용해도 1인당 월 9569원의 통신비 절감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바라봤다.
그러나 네이버 등 포탈업체는 제로레이팅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국내 포털업체들은 이미 이통3사에게 매년 수십억 원에서 수백억 원의 망 사용료를 내고 있으므로 무임승차가 아니라는 것이다.
한성숙 네이버 대표는 5월 기자간담회에서 “네이버는 이미 망 사용료로 많은 금액을 내고 있다”며 “사실 더 내게 되더라도 우리는 버틸 수 있겠지만 지금 막 시작하는 스타트업들이 이런 비용을 부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망중립성 문제도 제로레이팅 활성화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망중립성이란 이통사 등 네트워크 제공자가 특정 콘텐츠를 놓고 요금을 차등부과하는 등의 방법으로 콘텐츠사업자를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
다만 최근 해외에서는 제로레이팅에 관련한 규제를 완화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은 AT&T 등 통신 사업자들의 투자유인을 위해 규제를 완화하는 입법절차를 시작했고 유럽에서는 제로레이팅이 망중립성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판결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미래부도 최근 제로레이팅 서비스의 사전·사후 규제 근거를 담은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작업에 착수하는 등 제로레이팅 적용문제를 개별사안에 따라 검토하고 있다. 최종 가이드라인은 내년 초에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비즈니스포스트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