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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오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이 지난해 3월11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열린 ‘삼성전자 제47기 정기 주주총회’에 참석해 이사회 의장 자격으로 인사말을 하고 있다.<뉴시스> |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별명이 ‘미스터 칩(반도체)’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신화의 주인공이란 점에서 해외언론들이 붙인 별명이다.
삼성그룹이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으로 총수공백 사태가 현실로 나타나면서 비상경영체제를 이끌 인물로 권 부회장 역시 주목을 받고 있다.
20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그룹이 미래전략실을 주축으로 비상경영체제를 가동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게 나오고 있다. 미래전략실이 이 부회장의 재판 등 ‘총수 구하기’에 총력을 펼치고 사장단협의회를 꾸려 계열사별 현안을 처리할 것으로 보는 셈이다.
이 과정에서 삼성그룹 전문경영인 가운데 최고 실세로 꼽히는 권오현 부회장의 역할도 커질 수 있다. 전문경영인 투톱 가운데 한 사람인 최지성 부회장과 달리 권 부회장은 일단 특검수사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이다.
최 부회장은 이 부회장이 구속된 직후 가장 먼저 면회를 했다. 삼성그룹 경영위기는 물론 이 부회장의 향후 법적 다툼과 관련된 대응책이 오갔을 것으로 점쳐졌다. 최 부회장은 당분간 특검 수사가 끝나더라도 법적 대응에 골몰할 수밖에 없다.
최 부회장도 특검의 신병처리 결정을 앞두고 있다. 특검은 최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 수사 관련된 경영진의 사법처리 결정을 이 부회장의 기소 이후 확정해 발표할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그룹 리더십 위기에 권 부회장의 역할이 무엇보다 커질 것으로 보이는 점은 이 부회장 구속 외에도 삼성전자에 현안들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미국 최대 전장기업 하만 인수를 위한 후속 절차를 밟아야 하고 곧 갤럭시S8의 출시도 앞두고 있다.
갤럭시S8의 경우 지난해 갤럭시노트7 배터리 점화사고로 생산중단이란 극약처방까지 내놓은 뒤 출시되는 첫 신형 스마트폰이란 점에서 전 세계의 이목이 더욱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그룹은 국내에서 수십 개의 게열사를 거느리고 있지만 글로벌에서는 삼성이라는 브랜드를 대표하는 삼성전자로 통한다. 그런데 삼성 브랜드 평판지수는 최근 조사에서 지난해 7위에서 올해는 49위까지 하락했다.
갤럭시노트7 단종사태와 이 부회장의 구속으로 삼성의 경영승계를 바라보는 부정적 시선이 높아진 점에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사태로 삼성의 대외신인도 하락도 무시하기 어려운 만큼 반도체 신화의 주역으로 일컬어져온 권 부회장의 역할에 더욱 무게가 실릴 수 있다.
해외언론 가운데는 권 부회장 등 전문경영인이 실질적 경영을 이끌어온 만큼 이 부회장의 구속에 따른 파장이 심각한 수준이 아니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무어 인사이트 앤 스트래티지의 패트릭 무어헤드 대표는 17일(현지시각) CNBC와 인터뷰에서 “이 부회장의 구속이 좋지 않은 소식이라는 데 이견의 여지가 없다”며 “한 가지 다행스러운 사실은 그가 삼성 브랜드를 대표하는 세계적 인물은 아니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이 전 세계 소비자들 사이에 널리 알려졌거나 영향력 있는 인물이 아니고 일상적인 실무에 깊이 관여하지도 않는 데다 전문경영인들이 건재하기 때문에 크게 우려할 만한 사안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권 부회장은 삼성전자 대표이사로 반도체와 무선사업, 가전사업부를 모두 아우르는 것은 물론 나머지 전자계열사들의 실질적 수장이다. 지난해까지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 이사회 의장을 맡아왔다.
이 부회장에 이어 최지성 부회장까지 신변에 변화가 생길 경우 권 부회장이 단독으로 총수 대행을 맡을 가능성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삼성그룹에서는 2008년 삼성 특검수사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물러난 뒤 이수빈 당시 삼성생명 회장이 이 회장을 대신해 신년하례식 참석 등 총수 역할을 대신한 전례가 있다. 이수빈 회장이 직급이나 나이로 최고 원로였기 때문이다.
권 부회장이 실질적으로 그룹 총수로서 역할을 맡게 될 경우 삼성전자에서는 가전사업을 이끄는 윤부근 대표와 무선사업을 맡고 있는 신종균 대표와 고동진 사장 등 기존 경영진의 위상에도 더욱 힘이 실릴 수 있다. 이는 다른 주력계열사에서도 마찬가지다.
포춘은 17일 이 부회장의 구속으로 리더십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인물로 최지성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함께 권 부회장을 꼽으며 권 부회장이 “메모리칩 사업을 포함해 삼성의 캐쉬카우(cashcow) 사업을 주로 관리한다"면서 "지난해 갤럭시노트7 스마트폰 폭발 위기 때 삼성을 가이드한 그가 앞으로 더 큰 역할을 부여받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권 부회장은 이 부회장의 구속이 결정되기 직전 주주에게 보낸 서한에서 “올해도 대내외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여러 차례 위기를 극복하고 성장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도전 의식과 지속적인 혁신을 통해 급변하는 환경에 발 빠르게 대응해 향후 지속 성장을 위한 새로운 원년이 될 수 있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 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대개 3월 둘째주 금요일 정기 주주총회를 열어왔다. 올해는 3월10일인데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등기이사인 이 부회장의 구속사태와 관련한 해법을 주주들에게 내놓을 수도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