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이재명 정부의 대전·충남 행정 통합 구상이 지방 균형발전의 해법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대전과 충남은 이번 통합을 통해 재정과 산업 규모에서 단숨에 전국 상위권 광역단체로 도약하며 '제2의 경제 거점' 자리를 노리게 된다. 다만 주민 공감대와 절차적 정당성 확보 없이 무리하게 추진한다면 여러 전례와 같이 통합이 좌초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대전·충남 35년 만의 '재결합', 이재명의 '경제 거점 특별시' 공감대 확보 속도전

이재명 대통령이 18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대전, 충남 국회의원 오찬 간담회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22일 대통령실과 정치권 움직임을 종합하면 이재명 대통령이 대전·충남 행정 통합에 속도를 낼 것을 주문한 가운데 관련 논의가 정치권을 중심으로 급물살을 타고 있다. 내년 지방선거 때 통합 단체장을 선출해 7월1일 수도 서울특별시에 준하는 권한과 지위를 갖는 '통합 특별시' 또는 '통합 특별자치도'가 출범할 것으로 전망된다.

행정 통합이 현실화하면 대전과 충남은 단숨에 대한민국 제3위 규모의 광역단체로 도약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전의 과학기술 역량 및 인적·물적 인프라와 충남의 제조업 중심 산업구조 기반을 결합해 제2의 경제 거점을 만들고 국가 균형발전의 새로운 전환점을 열겠다는 목표가 통합 명분으로 제시됐다. 이를 통해 수도권에 버금가는 초광역 경제권을 형성해 양질의 일자리 창출, 지역경제 선순환 구조 실현, 도농 문화·관광 부가가치 향상 등을 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통합할 경우 인구는 358만 명, 면적 8786㎢, 재정 규모 17조 원을 넘어서며 지역내총생산(GRDP)은 191조6천억 원에 달한다. 수출 규모는 지난해 기준 715억 달러(약 105조8915억 원), 무역수지는 369억 달러(약 54조64889억 원) 흑자로 전국 1위다. 통합 이후 대한민국 제2의 경제 거점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란 전망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또한 대전의 과학기술·연구개발 역량과 충남의 제조업·산업 인프라가 결합할 경우 반도체·우주항공·국방산업·바이오헬스 등 미래 신성장동력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대전·충남 통합은 정치적으로도 큰 상징성을 갖는다. 지역 차원의 실험을 넘어 대한민국 지방 행정 체제 개편의 첫 모델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재명 정부에서 전국을 5대 초광역 성장거점으로 나눠 지방균형발전을 이끌고 권한·재정·자율권 등을 부여해 성장 잠재력을 극대화하겠다는 '5극 3특' 취지에도 부합한다.

현재 정치권과 정부는 행정통합을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김민재 행정안전부 차관은 지난 19일 영상회의를 통해 유득원 대전 행정부시장, 강성기 충청남도 기획조정실장과 행정 통합 추진 상황, 향후 일정 등을 논의했다. 행안부는 이날 회의에서 대전시와 충남도에 통합시 또는 통합자치도가 출범하는 데 필수적인 특례의 우선순위를 정리하고 국회를 설득하기 위해 함께 대응하자고 요청했다. 또 조례 및 행정 시스템 통합 등 출범 준비를 위한 사전 작업에도 속도를 내기로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같은 날 정부가 '5극(수도권·동남권·대구경북권·중부권·호남권) 3특(제주·전북·강원)' 일환으로 추진하는 대전·충남 통합을 지원하기 위해 '대전·충남 통합 및 충청 지역 발전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상임위원장은 황명선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공동위원장은 대전·충남 지역구 박범계·이정문·박정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충북 지역구 이광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맡기로 했다. 위원에는 기초단체장과 지역위원장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이 대통령은 1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더불어민주당 대전·충남 국회의원들과 가진 오찬 간담회에서 "수도권 집중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과제"라며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통합된 자치단체장을 뽑을 수 있게 중앙정부 차원에서 실질적이고 실효적인 행정 조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 대전과 충남의 행정 통합 논의는 두 지방자치단체가 지난해 11월 옛 충남도청사에서 공동 선언을 내놓으면서 본격적으로 촉박됐다. 이장우 대전시장과 김태흠 충남도지사, 조원휘 대전시 의장, 홍성현 충남도 의장이 함께 서명한 선언문은 △통합 특별법 제정 △국가 사무·재정권 이양 △민관협의체 구성 △주민 의견 수렴 등을 핵심 내용으로 담고 있다.

대전과 충남이 행정 통합을 추진하는 가장 큰 배경은 수도권 집중 심화와 지방 소멸 위기가 꼽힌다. 국토 면적의 12%에 불과한 수도권에 인구 절반과 경제력의 70%가 몰리면서 비수도권은 인구 감소와 재정 악화, 산업 생태계 중복 투자 같은 구조적 한계에 직면해 있다.

결국 대전과 충남은 '분가'의 길을 걸었던 지난 35년을 접고 다시 '합가'를 통해 생존과 도약을 동시에 꾀하겠다는 결단에 나섰다. 분가했던 두 지역이 다시 합가를 통해 '전략적 생존 연합'에 나선 셈이다. 특히 대전과 충남은 충남도에서 분가한 지 35년이 지난 지금도 '한 뿌리'와 같은 동일 문화·정서를 가져 통합에 대한 이질감이 적다는 평가도 나온다.

대전과 충남은 1989년 대전의 직할시 승격 이후 분리됐다. 분리 이후 교통과 정보통신 발달 등으로 두 지역의 생활·경제권은 넓어졌지만 이로 인한 다양한 부작용도 이어졌다. 국책사업 유치 경쟁 과열, 산업 생태계 중복 투자, 광역행정 사무 처리의 어려움과 과잉 투자 우려, 인구 감소에 따른 소도시 재정력 약화와 행정적 비효율 증가 등이다.
 
대전·충남 35년 만의 '재결합', 이재명의 '경제 거점 특별시' 공감대 확보 속도전

▲ 대전충남 행정통합 민관협의체가 7월14일 오후 대전시청에서 '(가칭)대전충남특별시 설치 및 경제과학수도 조성을 위한 특별법안'을 확정해 대전시와 충남도에 공식 제안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부터 정재근 민관협 충남 공동위원장, 홍성현 충남도의회 의장, 김태흠 충남도지사, 이장우 대전시장, 조원휘 대전시의회 의장, 이창기 민관협 대전 공동위원장. <연합뉴스>


최대 변수는 여론 결집과 정치권 협조다. 두 광역단체 간 행정 통합이 실질적인 추진 동력을 얻기 위해선 지역민과 정치권의 합의가 필수적이다.

앞서 전국적으로 행정 통합 논의가 부상했지만 사회적 합의 불발로 무산되거나 이견을 좁히지 못해 평행선을 달리는 등 쉬운 작업이 아님이 확인됐다. 대구·경북, 부산·울산·경남, 전주·완주 사례처럼 무산된 전례도 존재한다. 

과거 대구·경북, 부산·울산·경남 통합 논의는 지역 여론 수렴에 실패해 무산됐다. 부울경(부산·울산·경남) 초광역 특별연합 논의는 경남의 부산 집중 우려로 무산됐고 결국 울산이 빠지면서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대구·경북 통합 논의 역시 특별법 제정과 인구·재정 격차에 따른 이해관계 등으로 논의가 지연되고 있다.

특히 전주·완주 통합론의 경우 최근 완주군민과 군의원 등을 중심으로 강한 반발 기류가 형성돼 갈등이 고조됐다. 대전·충남 통합 역시 주민 공감대 형성과 실질적 참여 유도 없이는 통합 추진에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대전·충남 통합 찬성률은 54.5%로 과반을 넘었지만 반대·무응답 비율도 적지 않아 공감대 형성이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아울러 어느 곳을 중심으로 통합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갈렸다. 충남도민의 32%가 충남 중심 일원화를, 대전시민은 응답자의 절반 가까이가 대전 중심 일원화를 바란다고 응답해 향후 통합 추진 과정에서 풀어야 할 과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산업구조나 행정 기능이 다른 두 지역이 단기간에 통합될 수 있는지에 대한 회의도 존재한다.

대전·충남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지난 19일 공동 성명을 통해 "행정 통합이 '규모의 확대'로 지역의 경쟁력을 보장한다는 단순한 논리에 동의하기 어렵다"며 "대전과 충남은 서로 다른 도시 구조와 산업 기반, 인구 특성을 지닌 지역으로 통합이 해법이 될 수 있는지는 정치적 선언이 아니라 객관적 자료와 전문가 검증, 시민 숙의를 통해 판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절차적 정당성도 문제가 되고 있다. 대전과 충남 시민사회단체가 대전·충남 행정 통합과 관련해 정치권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통합 속도전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시민 참여를 보장하는 절차를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대전·충남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김태흠, 이장우 두 시·도지사의 선언으로 시작된 행정 통합 논의가 이재명 대통령의 결정으로 급속히 정치 일정 안으로 편입되고 있다"며 "그러나 이 과정에서 대전과 충남의 주민들은 충분한 설명도 선택의 기회도 갖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어 "대전·충남 행정 통합은 지방자치의 구조, 재정 배분, 행정 권한, 지역 정체성 전반을 뒤흔드는 중대한 선택"이라며 "그럼에도 현재 논의 과정에서 시민의 의견을 체계적으로 수렴하고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려는 노력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기사에서 인용된 여론조사 결과는 조원씨앤아이에서 대전방송(TJB)과 디트뉴스24의 의뢰로 진행됐으며 5월12일부터 5월13일까지 이틀 동안 대전·세종·충남에 거주하는 만 18세 이상 남녀 1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조사는 전화면접(CATI)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조성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