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 데뷔전 기죽지 않은 이찬진, 금감원의 소비자 보호 원칙 묵묵히 강조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 국감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국정감사 데뷔전에서 신뢰감 있는 태도를 바탕으로 안정적 리더십을 선보였다.

야당 의원들의 거센 질의에도 기죽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논리를 펼쳐나가는 동시에 그동안 지속해서 강조해 온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 원칙도 재확인했다.

이 원장은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국정감사 증인으로 참석했다. 이날 정무위 국감은 금융감독원과 예금보험공사, 서민금융진흥원을 대상으로 열렸다.

세 기관 가운데 금융감독원이 지닌 무게감이 가장 큰 만큼 오전 질의는 이 원장에게 집중됐다.

더군다나 이 원장은 이재명 대통령의 측근으로 인사청문회 없이 임기를 시작한 만큼 야당 의원들은 초반부터 날선 질문을 이어갔다.

이 원장을 향한 야당 의원들의 압박은 본격적 국감 질의 시작 전, 의사진행 발언부터 시작됐다.

정무위 국민의힘 간사를 맡고 있는 강민국 의원은 “이재명 정부의 10·15 부동산 대책으로 전세, 월세, 상가 임대료까지 출렁하고 있는데 이 원장은 강남의 고가 아파트 2채를 보유하고 있다”며 “부동산 대출 규제 등 금융권에 직접적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이 원장의 재산 내역을 오전 중에 제출해 달라”고 말했다.

이양수 국민의힘 의원은 “이 원장은 이재명 대통령의 쌍방울 불법 대북 송금 사건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변호인이었다”며 “대통령과 5억 원의 금전거래를 했다고 들었는데 금전거래 기록, 즉 송금하고 송금 받은 내역, 이자가 명기된 차용증을 제출해 달라”고 요구했다.

본격적 질의에 들어가서는 민중기 특검의 2010년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주식거래 의혹과 관련한 재조사 사안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이헌승 국민의힘 의원은 “주가조작 여부에 대해서 특검을 수행하는 민중기 특검 당사자가 정작 미공개 정보를 가지고 주식 차익을 얻었다면, 이는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라며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금감원이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양수 국민의힘 의원도 “이번 의혹은 네오세미테크 상장폐지 전 일주일 동안 거래내역만 확인하면 누가 사전에 연락받고 매도했는지 너무 쉽게 알 수 있는 사안”이라며 이찬진 원장에게 재조사를 압박했다.

이 원장은 이헌승 의원의 질의에 “사안을 확인해보니 2010년 조사를 해서 13명의 위규 사실을 발견, 고발 및 검찰 통보조치를 했다”며 “현재 이 사안의 조사가 끝났고 혐의와 관련된 부분 자체가 공소시효가 완성돼 금감원 감독권한을 발휘하기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대답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민 특검 사안은 불법거래 금액 규모가 50억 원이 넘어 공소시효 15년 제한을 받지 않는다'고 몰아세웠는데 이 원장을 이를 놓고도 “확인해보겠지만 일차적으로 금감원이 판단할 위치는 아닌 것 같다”며 차분하게 받아쳤다.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이 “삼부토건이든 네오세미텍이든 내부정보를 활용한 주식거래 부당이익은 철저히 조사돼야 한다”고 지적하자 “공소시효 관련 제한이 있지만 그 부분을 감안해서도 챙겨볼 부분이 있으면 챙겨보겠다”고 대답했다.

금융소비자 보호 기능 분리를 뼈대로 하는 금융감독체계 개편안이 여러 혼란만 낳은 채 무위로 돌아간 것을 놓고 국민들에게 할 말이 없느냐는 이헌승 국민의힘 의원의 지적에는 낮은 자세를 취했다.

이 원장은 “금감원의 기존 소비자보호 관행이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았던 부분에 대해 구성원 전부가 깊이 성찰하고 내부적으로 반성하고 있다”며 “앞으로 상품설계 및 유통 단계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서 소비자 보호를 최우선적 가치로 삼기 위해 힘쓰겠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정치적 압력이나 정부의 단기정책 목표와 무관하게 금융시장의 안정성과 건전성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데 정부의 조직논리에 흔들렸다는 지적에는 “말씀 유념해서 앞으로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성실하게 복무하겠다”고 대답했다.

이날 청문회에서는 여당과 야당을 가리지 않고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금감원의 역할을 지적하는 질의들이 다수 나왔다.

이 원장은 의원들의 지적에 “대부분 공감한다”며 납득할 만한 결과를 만들어보겠다고 대답했다.

디지털 시대,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를 위한 국회의 지원 사격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 원장은 해킹사고 대책 강화를 주문한 추경호 의원의 질의에 “디지털금융으로 전환하는 상황에서 우리 금융 현실은 보안 관련 투자가 굉장히 미미하고, 금감원도 자체 인력이나 시설 인프라가 열악한 상태”라며 “이를 개선하기 위한 위원님들의 협조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그는 “보안 관련 투자를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미국의 15분의 1정도밖에 안 되는 현실을 직시할 때가 된 것 같다”며 “금융을 디지털화 했을 때 반드시 투자해야 할 사회적 비용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감수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고 덧붙였다.
 
국감 데뷔전 기죽지 않은 이찬진, 금감원의 소비자 보호 원칙 묵묵히 강조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 국감에서 증인 선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원장은 이날 오전 국감 중간 중간 “금융위를 통해 보고하겠다” “조만간 금융위와 함께 법안을 제출하겠다” 등 금융위와 협업도 강조했다. 이전 정부에서 금융위와 금감원이 종종 불협화음을 낸 사례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이 원장이 이날 국감에서 여당 의원들의 날카로운 질의와 야당 의원들의 압박에도 기죽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차분히 피력하면서 대내외적으로 더욱 안정적 리더십을 구축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원장은 그동안 상대적으로 조용한 움직임을 보이면서 리더십 역량이 베일에 감춰져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업계 간담회 등 공식 일정은 부지런히 소화했으나 대부분 준비된 발언만 하고 기자들의 질문을 받지 않으면서 개인적 스타일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금감원장은 금융위원장과 달리 인사청문회를 거치지 않는다.

특히 지난 정부 과감한 발언으로 금융산업 이슈 전면에 나섰던 이복현 전 원장과 비교되며 정중동 행보가 더욱 부각됐다. 이는 이날 국회 데뷔전을 치른 이 원장의 국감이 금융업계에서 더욱 주목을 받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이 원장은 이날 업무현황 보고를 통해서는 5가지 주요 과제를 내세웠는데 1번과 5번 과제에 소비자 보호를 배치해,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가 핵심 업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재확인했다.

이 원장은 “금융회사의 소비자보호 조직문화 성숙을 지속 유도 등을 통해 공정한 금융 패러다임을 구축하겠다”며 “내부적으로도 금감원이 보유한 모든 기능이 금융소비자 보호 목표를 실현하는 데 온전히 활용될 수 있도록 금융소비자 보호 중심으로 조직을 전면 재설계하겠다”고 말했다.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