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지금 차 마시며 얘기를 하면서도 한 쪽 귀로는 지하 통신구 통신 케이블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나 체크하고 있다."

30여년 전, 한겨레 기자로 KT(당시는 한국통신공사) 출입을 시작할 때 만난 광화문전화국장 말이다. 당시 KT 일선 조직은 전화국이었고, 광화문전화국 사무실은 서울 광화문 KT 사옥(지금은 KT 웨스트빌딩)에 있었다.
 
[김재섭의 뒤집어보기] '낙하산 CEO'와 '탈통신'의 역풍? "통신업계 맏이 KT에서 통신망 전문가가 사라졌다"

▲ KT가 통신망 해킹 및 무단 소액결제 원인과 경로를 짐작조차 못하는 상태가 길어지며 'KT 내부에 통신망 보안 전문가가 없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사무실에 앉아서도 지하 통신구 통신케이블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듣는다고?  '말이야, 막걸리야' 하는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그가 정색을 하며 "이런 얘기를 들으면 다들 웃는데, 사실"이라며 "한국통신 시설관리 직원들은 퇴근 뒤나 쉬는 날에도 통신 케이블에서 바람이 새지 않나 귀를 기울인다"고 말했다.

이어진 그의 설명에 따르면, 통신용으로 쓰는 케이블은 구리선이나 광섬유룰 싼 내피와 바깥 손상 방지 피복 사이에 공기를 주입한 뒤 공기 압력 변화로 손상됐는지 여부를 체크한다. 공기가 새 압력이 떨어지면 케이블이 손상된 것으로 간주해 긴급 점검에 나선다.

서울 광화문 지하 통신구서 화재가 발생해 그 곳을 지나던 전기선과 통신선이 다 탔다.

화재는 진압됐으나 여전히 열기가 완전히 가시지 않고 탄내가 진동하는 상태에서 KT 시설관리 직원이 가장 먼저 통신구로 몸을 들이밀었다. 아직 위험하다고 말렸지만, KT 직원은 통신 케이블 상태를 서둘러 확인해야 한다며 기어코 들어갔다.

당시는 이런 위험한 일도 KT 정규직 직원이 직접 했다.

당시 현장에서 만난 KT 전화국 과장은 "KT 직원들은 통신이 끊긴 상태를 두고는 잠을 못잡니다. 끊어진 곳을 확인해 이어놔야 마음 편히 밥도 먹고 잠도 잡니다"라고 말했다.

역대급 태풍이 내륙을 휩쓸고 지나갔다. 당시 태풍은 비와 바람으로 땅을 마구 헤집었다.

폭우로 물이 불고 바람에 땅이 헤집어지니 땅 속에 매설했거나 전봇대를 사용해 설치해둔 통신선이 온존할 리 없었다.

역대급 태풍 여파로 내륙 오지 마을 곳곳이 고립됐다. 전기와 전화가 모두 끊겨 마을 상태는 물론 주민들의 안전도 확인되지 않았다.

강원도 태백 쪽의 한 오지 마을 역시 완전 고립 상태였다. 관할 전화국 시설관리 직원들이 그 마을로 향했다. 각자 커다란 삐삐선(얇은 구리선 한가닥에 내피만 입힌 전화선으로 주로 군 작전 시 사용) 꾸러미 하나씩 둘러메고 선을 풀며 아직 물이 허리춤까지 개울을 건너고 산등성이를 넘었다.

경북 영덕 쪽으로 휴가를 갔다가 태풍이 지나간 뒤 내륙을 가로질러 집으로 돌아오던 중 그 모습을 발견했다. 가족들을 안전한 마을에서 기다리라고 한 뒤 취재를 핑계로 그 직원들과 동행했다.

동행 길에 '군사 작전을 하는 것도 아닌데, 휴대전화를 몇 대 가져가 사용하게 하며 통신선을 복구하면 될텐데 왜 힘들게 삐삐선으로 연결하느냐?'고 묻자, "전화 뿐만 아니라 전기도 끊겼다. 휴대전화를 가져가봤자 배터리가 떨어지면 무용지물이 된다. 이렇게 유선으로 전화를 연결해놔야 맘이 놓인다"고 했다.

그 직원의 설명에 따르면, 삐삐선으로 유선전화를 연결하면 전화국서 전화선으로 소량씩 흘려주는 전기로 정전 상태에서도 전화 통화를 할 수 있다.

그 날 오후 늦게 태풍으로 고립됐던 오지 마을에 전화가 연결됐다. 전기는 며칠 뒤에나 복구됐다.

갑자기 웬 KT 직원 영웅담이냐고?

요즘 상황이 너무 답답해서다. KT 통신망 추가 해킹 의혹과 휴대전화 무단 소액결제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고 있지만, 원인과 경로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KT 담당 임직원들까지도 짐작조차 못하겠다고 한다. 그 과정서 국민들의 불안감이 커지는 상황이 30년 넘게 통신 쪽을 담당해온 기자로써 너무 안타깝고 답답하다.

KT는 100년 넘는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 최초 통신사이고, 지금도 통신업계에서 '맏이'를 자처하고 있다.

KT는 이번 사태가 불거진 뒤 김영섭 사장 직속으로 90여명 규모의 전담반을 꾸려 운영 중이다. 하지만 아직 원인과 경로를 짐작조차 못하고 있다. '경찰 조사에 혼선을 줄 수 있다'는 핑계를 대고 있다.

그 사이 무단 소액결제 피해는 통신망 해킹 사태로 번졌다. "침해가 있어 신고했지만 해킹은 아니다", "미상의 기지국(일부 언론은 '유령 기지국'이라고 보도)이 발견됐다" 등 이해하기 어렵거나 앞뒤가 맞지 않는 설명이 이어지며 국민 불신과 불안이 커지고 있다.

사실 '미상의 기지국'은 모순된 표현이다. 통신 장비들은 표준이나 프로토콜에 따라 연결돼, 미상의 기지국은 통신망에 붙을 수 없다.

KT 통신망 보안 책임자가 국회 청문회에 출석해 해킹 의심 서버를 폐기한 이유를 설명하며 "찜찜해서"란 표현을 두고도 뒷말이 많다. 그가 기술자 내지 엔지니어라면 절대 쓸 수 없는 표현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맏이 통신사 KT에 통신망 보안 전문가가 없다'는 진단과 더불어, KT의 축소·은폐 의혹이 확산되는 배경이다.

사고나 해킹 공격 등에 따른 KT 통신망 장애는 이전에도 있었다. 인터넷 대란까지 겪었다. 대부분 곧바로 수습됐다.
 
[김재섭의 뒤집어보기] '낙하산 CEO'와 '탈통신'의 역풍? "통신업계 맏이 KT에서 통신망 전문가가 사라졌다"

김영섭 KT 대표이사 사장(가운데)이 11일 서울 KT 광화문 웨스트 사옥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무단 소액결제 사태와 관련해 사과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국외 통신장비 업체 엔지니어들을 깜짝 놀라게 만든 일화가 있다. 전화를 자동 연결하는 전전자교환기에서 장애가 발생했다. 해당 교환기를 납품한 미국 업체 개발자들까지 전화로 연결돼 대책회의를 했지만 원인이 찾아지지 않았다.

가입자들은 전화 연결이 안된다며 난리를 쳤고, 정부 쪽의 복구 재촉도 심했다.

직급이 낮아 대책회의에 참석할 자격조차 얻지 못한 현장 시설관리 직원이 씨익 웃으며 교환기 전원 스위치를 내렸다 올렸다. 곧바로 뭔 일 있었느냐는 듯 장애가 말끔히 해결됐다.

미국 교환기 납품업체 개발자들이 주저앉으며 '오 마이 갓'을 외칠 법 하다. 

'원래 KT'(KT 출신·외부 낙하산 출신들은 '올레 KT'라고 구분해 표현)로 KT 차기 CEO 공모에 응모할 준비를 하고 있는 전직 고위임원은 비즈니스포스트와 만나 이 얘기를 전하며 "무모한 게 아니다. 미국 나사에서도 막 쏘아올린 위성체와 통신 연결이 안돼 난리였을 때 한 개발자가 통신 안테나 전원을 껐다 켜서 해결한 사례가 있다고 하지 않냐. 교환기와 통신망 작동 원리는 물론이고 전원을 껐다 켰을 때 어떤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지를 훤히 꿰고 있어야 갸능한 행동이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2018년 11월24일 일어난 KT 아현지사 지하 통신구 화재 때는 이런 '순발력'이 발휘되지 못했다.

서울 강북과 고양시 등 수도권 북서부 지역의 KT 통신망을 사용하는 인터넷, 유선전화, 휴대전화, IPTV, ATM, 신용카드 단말기 등 다양한 서비스가 마비된 상태가 일주일이나 이어지며, 가입자들이 엄청난 혼란과 불편을 겪었다. 

화재는 10시간 만에 진압됐으나 통신망이 복구되지 못했다. 화재 원인도 밝혀지지 않았다. 통신구 관리 소홀 등 관리 부실이 일부 확인됐으나 통신구 내부 전소로 과학적 검증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났다.

KT 출신 임직원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른바 '낙하산 CEO'가 이어지고 탈통신이 강조되며 KT에서 통신망 전문가들이 사라진 결과다.

CEO가 탈통신을 외치는 사이, 수십년 통신망 설계와 관리와 점검을 해와 어느 통신구를 거친 통신망이 어디를 거쳐 어느 지역을 커버하고 있는지를 훤히 꿰고, 지상에서 지하 통신구 케이블에서 나는 바람소리까지 듣는다는 현장 전문가들이 홀대를 당하며 회사를 떠났다는 것이다.

아현지사 통신구 화재 때는 담당 임직원들을 포함해 회사 내부에 통신망 전문가가 없어 퇴직자를 수소문해 도움을 받기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낙하산 CEO들의 탈통신 강조 과정에서 KT 직원들의 자부심과 소명 의식이 크게 훼손된 것도 이유로 꼽힌다.

인건비를 줄여 실적을 내자는 심산으로 인력 구조조정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다. 당연히 오랜 경력 탓에 급여가 높은 고참 직원들이 우선순위로 구조조정 대상에 올랐다.

옥석을 가리지 않고 토끼몰이식 구조조정을 하는 과정에서 급여를 올려서라도 붙잡아야 할 전문가들까지 대거 내몰렸다. 희망퇴직은 일상이 됐고, 통신망 관리 업무가 통채로 자회사로 분리되거나 외주화하기도 했다.

부부 사원 중 한명은 그만두게 하고, 서울 사는 직원을 강원도 내지 삼천포(경남 사천)로 발령을 내고, 사무실 직원을 오지 통신망 관리 담당으로 발령내 전봇대에 오르게 하는 무리수까지 동원됐다.

그 결과 KT 임직원이 민영화 전 6만8천여명에서 1만8천여명으로 줄었다.

끊어진 통신망을 조금이라고 일찍 이어 가입자 불편과 사회적 혼란을 줄여보겠다며, 열기가 식지 않은 통신구에 자발적으로 몸을 들이밀고, 다리가 끊어진 개울을 건너고 산등성이를 넘게 만드는 소명 의식이나 자부심이 남아날리 없다.

사장 직속으로 무려 90명이나 되는 대규모 전담반을 꾸리고도 우왕좌왕하는 지금 모습 역시 그 여파로 보는 시각이 많다. 쌓인 노하우가 적다 보니 사태 발생 원인과 경로를 짐작하는 것조차 어렵고, 가입자들의 피해와 불편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과 통신 전문가로써의 자부심이 없다 보니 선뜻 나서려고 하지 않는다.

이번 사태 발생 초기 KT 관계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통해 가입자들에게 주의를 당부하고 피해 예방 요령을 알려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누구도 대표한테 보고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답이 돌아왔다.  

당연히 직을 걸고 교환기 스위치를 내렸다 올리는 정도의 용기를 부리는 임직원도 없다.

하긴 KT에 그런 직원들이 있었다면, 통신망을 미상의 기지국이 침투할 수 있는 상태로 방치하지도 않았고, '미상의 기지국이 발견됐다'는 무식한 발표를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사회와 가입자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불안감이 커지는 게 대표적이다.

KT 차기 CEO 도전을 준비 중인 또다른 KT 전직 고위임원은 "통신사는 '늘 새롭고 고도화된 통신망을 준비해 국가 경제와 산업 발전과 국민 삶에 기여해야 한다'는 미션이 주어져 있다. 탈통신을 외치는 것은 본분을 망각하는 것이다. KT는 물론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 최고경영자도 명심해야 할 대목"이라고 강조했다.

곧 시작될 KT 차기 CEO 후보 선임 과정에서 중요한 잣대로 삼아져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다. 문제는 KT 차기 CEO 후보를 선임하는 사외이사들 역시 통신 문외한이다. 김재섭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