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체계 개편 최대 전장된 금감원, 이찬진 리더십 첫 시험대 올랐다

▲ 금융감독원이 금융감독체계 개편안의 최대 전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대통령실이 합의한 금융감독체계 개편안을 놓고 금융감독원이 최대 전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취임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
 
금융감독원 노조는 9일 서울 여의도 본원 로비에서 정부여당의 금융감독체계 개편안과 관련한 첫 반대 집회를 열고 ‘금융소비자보호원 분리 철회’ ‘공공기관 지정 철회’ 등 요구사항 관철을 위해 이찬진 원장과 대화를 지속적으로 요청하기로 했다.

금감원 한 직원은 자유발언 시간 이찬진 원장을 향해 “외부 은행, 보험, 증권사 최고경영자(CEO)를 만날 때처럼 저희도 한번 만나 달라”며 “내부 목소리를 한번만 들어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금감원 조직원들은 결국 현재 갈등 상황을 풀어낼 역할이 이재명 대통령의 측근이자 실세로 평가되는 이찬진 원장에게 있다고 보는 것이다.

지난 정부 금감원의 위상이 어느 때보다 높았던 점을 고려하면 이번 정부여당 개편안에 따른 금감원 조직원들의 허탈감은 더 큰 것으로 여겨진다.

금감원은 지난 윤석열정부에서도 대통령의 측근이자 실세로 평가됐던 이복현 전 원장 아래서 3년을 보냈다.

당시 금감원은 상급기관인 금융위원회와 월권 논란이 수시로 일 정도로 막강한 힘을 과시했는데 이번에는 조직 개편으로 힘이 크게 빠질 상황에 놓였다.
 
금융감독체계 개편 최대 전장된 금감원, 이찬진 리더십 첫 시험대 올랐다

▲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본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이날 금감원 노조는 본원 로비에서 금융감독체계 개편 반대 집회를 열었다. <연합뉴스> 


정부여당의 금융감독체계 개편안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금융소비자보호 기능을 금융소비자보호원으로 분리하고 공공기관으로 새롭게 지정된다.

이렇게 되면 기존 금감원은 역할이 축소될 뿐더러 공공기관 지정으로 자율성도 줄어든다.

금감원 노조는 비효율성 증가에 따른 금융소비자 보호 약화와 정치적 개입 등 감독 독립성 훼손을 이유로 금소원 분리와 공공기관 지정을 반대하고 있다.

이찬진 원장의 고민이 클 수밖에 없다.

7일 정부여당의 금융감독체계 개편안이 확정된 뒤 집단행동에 나선 것은 금감원 노조가 처음이다. 금융감독체계 개편 관련 논쟁이 금감원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모양새인데 이 원장은 금감원에 온 지 한 달도 채 안 돼 조직 장악은커녕 이제 조직과 업무를 파악하고 있다.

더군다나 이 원장은 금융권 출신이 아닌 변호사 출신이다.

이 원장이 이재명정부의 인수위원회 역할을 한 국정기획위원회에서 일한 만큼 새 정부의 정책 이해도가 높다지만 이때도 금융이 아닌 고용노동부 등을 담당하는 사회1분과장을 맡았다.

금융당국을 비롯한 금융산업 전반의 이해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상황에서 임기 초반 조직 분리와 함께 조직원의 강한 반발을 마주한 것이다.

정부여당의 이번 금소원 분리안은 이 원장 개인적으로도 큰 부담일 수 있다.

이 원장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부회장과 참여연대 집행위원장 등을 지낸 시민사회 출신이다. 금융감독분야에서도 그나마 금융소비자 보호 쪽에 좀 더 전문성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향후 이 부문을 떼어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 원장은 8월14일 취임 뒤 지금껏 은행, 보험, 저축은행, 금융투자업계 CEO를 만나 새 정부의 금융감독 기조를 전했는데 이때마다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를 제1과제로 제시했다.

이 원장은 금융감독체계 개편 논의 과정에서 금소원 분리에 반대 의견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결국 당정협의를 거쳐 최종안이 나온 만큼 결정에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 원장은 전날 직원들에게 보내는 내부 공지를 통해 “감독체계 개편이 합리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과적으로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금감원과 금소원의 인사교류, 직원처우 개선 등을 통해 걱정을 최소화하겠다”고 말했다.

결국 임기 초기 내부 직원들의 반발을 최소화하며 안정적으로 조직을 분리해야 하는 무거운 과제를 안은 것이다.
 
금융감독체계 개편 최대 전장된 금감원, 이찬진 리더십 첫 시험대 올랐다

▲ 금융감독원 노조가 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본원 로비에서 정부여당의 금융감독체계 개편안과 관련한 첫 반대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노조에 따르면 이날 오전 금융감독체계 개편 반대 집회에는 600명 이상이 모였다. 전날 오후 갑작스러운 집회 공지에도 금감원 전체 직원의 4분의1 이상이 모인 것인데 향후 집회 인원은 더욱 늘어날 수 있다.

노조가 7월 국정기획위원회에 금소원 분리 반대 호소문을 전달할 때 금감원 직원 1539명이 함께했다.

조직원의 절반을 훌쩍 넘는 이들이 현재 개편안에 반대하는 만큼 이 원장이 설득 과정 없이 이번 사안을 밀어붙인다면 향후 조직 장악력은 그만큼 약해질 수밖에 없다.

이 원장은 현재 조직 개편안과 관련해 내부 공지를 낸 것을 제외하고는 침묵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 원장은 전날 금융투자사 CEO를 만난 자리에서도, 이날 오전 출근길에서도 개편안과 관련한 의견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이 원장의 침묵이 그리 오래 가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금감원이 지닌 무게감 때문이다. 금감원은 국내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확보하고 금융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설립된 기관이다. 지금과 같은 내부갈등이 지속된다면 국내 금융산업 경쟁력 후퇴와 금융소비자 보호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이 원장이 노조의 요구에 따라 노조를 만나 이야기를 나눌 가능성도 있다. 이 원장은 취임 이후 지속해서 소통을 강조해왔다.

이 원장은 8월 취임식 당일 기자실을 찾아 “저는 의외로 과격한 사람이 아니다”며 “살아온 환경 자체가 독자적으로 결정하는 사람이 아니고 토론 과정을 거쳐 합의되면 그때 표현하는 것에 익숙하다”고 말했다.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