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미국 트럼프 정부에서 삼성전자가 반도체 투자에 정부 보조금 및 세제혜택을 받는 조건이 매우 까다로워지며 한국 투자를 늘리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미국의 반도체 관세 압박은 고민거리로 남게 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삼성전자가 이런 정책 변화로 직접적 영향권에 든 만큼 과감히 미국에 시설 투자를 늘리거나 지원금을 포기하고 한국 내 투자에 집중해야 하는 선택의 기로에 놓일 수 있다.
8일 블룸버그와 로이터 등 외신을 종합하면 미국 정부가 삼성전자와 TSMC, SK하이닉스와 인텔 등 반도체 제조사에 약속한 지원금을 그대로 집행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최근 미국 상원 청문회에서 TSMC의 투자 확대 사례를 참조해 지원 대상 기업들과 보조금 및 세제혜택 제공 조건을 다시 협상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바이든 정부의 지원 결정은 지나치게 관대해 보인다”며 “다행히 우리는 더 나은 조건으로 논의를 다시 진행할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반도체 보조금 집행을 담당하는 상무부는 이미 일부 기업들과 협상을 진행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정부 기조에 맞춰 미국에 더 큰 이득을 안겨주는 방향으로 압박이 이뤄질 공산이 크다.
특히 러트닉 상무장관이 TSMC를 예시로 든 것은 미국 정부가 매우 높은 기준점을 잡고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TSMC는 당초 650억 달러(약 88조3천억 원) 규모 투자를 계획하고 있었으나 트럼프 정부가 출범한 뒤 추가로 1천억 달러(약 135조9천억 원)를 들이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로이터는 결국 일부 기업에는 보조금이 삭감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예측하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인텔과 마이크론 등 지원 대상에 포함된 기업들을 언급했다.
충분한 투자금 증액 여력을 갖추고 있는 반도체 제조사들을 중심으로 트럼프 정부가 TSMC 수준의 설비 투자 확대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삼성전자는 이미 트럼프 정부가 출범하기 전 미국에 계획하고 있던 반도체 시설 투자금을 170억 달러(약 23조1천억 원)에서 440억 달러(약 59조8천억 원)까지 늘렸다.
하지만 TSMC가 미국 정부의 투자 압박에 기준점으로 자리잡는다면 얼마나 더 많은 금액을 들여야 한다는 요구가 나올지 예측하기 쉽지 않다.
삼성전자는 이미 반도체 파운드리 사업에서 고객사 확보 부진과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 등 영향을 반영해 미국에 신설한 테일러 공장의 가동 시점도 늦췄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정부 압박 때문에 무리하게 투자를 늘린다면 고객 기반이 부족한 상태에서 공장 가동률이 향후에도 낮은 수준에 그칠 위험이 있다.

▲ 삼성전자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 파운드리 공장 건설현장 사진.
결국 삼성전자가 현실을 고려해 미국 정부의 보조금 삭감을 감수하더라도 투자를 크게 늘리지 않고 기존의 공장 건설 프로젝트를 안정화하는 데 집중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삼성전자가 이를 계기로 한국 내 투자 확대에 더 적극적 태도로 돌아설 가능성도 떠오른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뒤 ‘1호 공약’으로 앞세웠던 반도체 산업 지원 정책이 구체화되면서 삼성전자의 국내 설비 투자에 후한 인센티브가 적용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정부와 여당은 반도체 제조사의 세액공제와 인력양성 등 내용을 담은 반도체 특별법을 추진하고 관련 산업 전반에 대대적 지원으로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목표를 두고 있다.
한국에서 이러한 정책적 효과로 반도체 생산에 세제혜택 등이 도입되고 제조 협력사 생태계도 더욱 활성화된다면 삼성전자가 투자를 늘릴 충분한 유인책이 마련될 수 있다.
보조금 및 세제혜택을 빌미로 다소 무리한 투자 확대 요구를 내놓을 가능성이 유력한 트럼프 정부와 달리 한국에서는 삼성전자에 더 유리한 환경이 펼쳐지는 셈이다.
삼성전자가 미국에 대규모 투자 기조를 선회하고 한국 내 산업 생태계 구축에 힘을 쏟는 전략이 추진된다면 한국 경제와 고용 측면에서도 긍정적 효과가 예상된다.
다만 삼성전자가 미국에 충분한 반도체 생산 설비를 확보하지 않으면 트럼프 정부의 관세 부과 위협에 더욱 취약해질 수 있다는 약점이 자리잡고 있다.
TSMC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만에서 수입하는 반도체에 고율 관세 부과 가능성을 시사한 데 대응해 대규모 투자 증액을 발표한 뒤 관세 면제를 요청했다.
삼성전자도 미국 고객사가 실적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한국산 반도체에 관세가 매겨질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이는 한국과 미국의 무역협상에도 중요한 의제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큰 만큼 이재명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AP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은 반도체와 같은 한국의 주요 수출품에 관세 부과를 추진하고 있다”며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직후부터 쉽지 않은 상황을 맞이하게 된 셈”이라고 분석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