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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부동산 정책도 공급보다 규제 방점, 크기 제한부터 다주택 단속까지

김홍준 기자 hjkim@businesspost.co.kr 2024-09-08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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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정부가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공급을 확대하는 한편 금융권에서 부동산 대출을 강하게 옥죄는 규제 정책을 동시에 펼치고 있다.

부동산 시장이 공급 부족과 집값 상승이라는 양대 위기에 빠져 혼돈에 빠진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조선시대에 어떤 부동산 관련 규제 정책을 펼쳤고 그 결과는 어떻게 됐는지를 알아보는 것이 오늘날에도 의미가 있는 이유다.
 
조선시대 부동산 정책도 공급보다 규제 방점, 크기 제한부터 다주택 단속까지
▲ 금융당국 및 금융권에서 전세자금 대출과 관련해 강력한 규제를 내놓으면서 서울 강동구 둔촌동 올림픽파크포레온 입주자들이 전전긍긍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 강동구 둔촌동 올림픽파크포레온 공사현장의 모습. <연합뉴스>

8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 사업’으로 꼽히는 둔촌주공 ‘올림픽파크포레온’의 입주를 앞두고 금융권에서 전세자금대출 규제를 강화하는 조치가 발표되면서 부동산 시장은 혼란을 겪고 있다.

금융당국의 규제 강화로 KB국민·우리·NH농협은행이 조건부 전세자금 대출을 사실상 막아버림에 따라 입주를 앞두고 자금 마련에 빨간불이 켜졌기 때문이다.

우리은행은 조건부 전세자금 대출은 물론 1주택 이상 보유자를 대상으로 한 전세자금 대출을 아예 막았다.

KB국민은행은 10월까지 시한부로 조건부 전세자금 대출을 취급하지 않는다. 둔촌주공의 입주가 11월 말인 만큼 둔촌주공 입주민들이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없진 않다. 그러나 KB국민은행이 규제 기간을 한 달이라도 늘리게 된다면 둔촌주공 주민들은 KB국민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길이 막힌다.

NH농협은행 대출 실행일 전까지 임대인이 분양 대금을 완납한 사실이 확인되면 임차인에게 전세자금 대출을 내준다는 예외 조건을 걸기는 했지만 임차인의 전세보증금으로 분양 대금을 완납했다는 의심이 든다면 이를 갭 투자성으로 판단해 대출을 거부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정부가 8·8 부동산 대책을 통해 수요에 부합하는 공급을 해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으나 여전히 '영끌' 등 과열 조짐이 나타나자 금융 규제로 부동산 가격 상승세를 통제하려는 것으로 파악된다.

조선시대에도 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해 여러 모로 고민한 흔적이 엿보인다. 당시 부동산 정책을 살펴보면 성저십리 개발 등 일부 공급 확대를 시도하기는 했으나 대부분은 규제에 방점이 찍혀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부동산 규제 정책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집터 규제’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4년(1395년) 기록을 살펴보면 장지화라는 신하는 새롭게 도읍으로 정한 한양 땅이 비좁다며 신분에 따른 집터의 규모를 새롭게 정해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다.

태조 이성계가 이를 받아들여 정1품의 집터를 35부로 정하고 한 품에 5부씩 내려 6품까지 10부를 주도록 결정했다. 이에 더해 일반 서민에게도 2부의 땅이 주어졌다.

1부는 조선시대 면적의 단위로 지금의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133㎡ 정도에 해당한다. 이를 기준으로 계산을 해보면 정1품은 약 4655㎡, 서민은 약 266㎡ 규모의 집터를 받을 수 있다.
조선시대 부동산 정책도 공급보다 규제 방점, 크기 제한부터 다주택 단속까지
▲ 2024년 1월 촬영된 서울 강동구 둔촌동 '올림픽파크포레온' 공사 현장의 모습. <연합뉴스>


현재 이른바 국민평형이라고 불리는 아파트의 크기가 전용면적 84㎡ 규모인 것을 고려하면 매우 크기가 큰 것으로 보인다. 다만 마당이 반드시 포함되는 한옥의 구조를 생각하면 실제 서민 주거의 ‘전용면적’은 이보다는 작았다고 봐야 한다.

이로부터 약 60년 뒤인 예종 시절에 편찬된 경국대전에서는 규정이 약간 바뀌어 전체적으로 규제가 강화됐다. 대군과 공주 30부, 왕자와 옹주는 25부로 정하고 1품·2품 15부, 3품·4품 10부, 5품·6품 8부, 이하 품계는 4부로 낮췄으며 서민은 2부를 유지했다.

조선시대는 집터를 확보해 놓고도 실제로 집을 짓지 않는다면 이를 규제하는 정책도 있었다. 권리를 다른 사람에게 이관하는 식으로 일종의 인허가 취소가 이뤄진 것이다.

세종 11년(1429년) 한성부가 “빈 땅에 집을 짓겠다고 청원을 한 자가 여러 달이 되어도 허가한 문서를 받지 않고 있다가 다른 사람이 다시 청원함에 미쳐서는 대개가 먼저 신고를 냈다고 말을 한다”며 “청컨대 지금부터는 청원한 후 3개월이 지난 자는 집을 짓지 않는 것으로 인정하는 예에 따라 다른 사람에게 옮겨 주게 해 달라”고 요청하자 세종이 이를 그대로 따랐다.

집터 크기를 제한하듯 신분에 따라 주택의 규모를 정하고 장식을 규제하는 정책이 시작된 것도 세종 때의 일이다.

세종은 1431년 주택의 규모를 놓고 왕의 형제인 대군의 집은 60간(間), 왕자와 공주의 집은 50간, 2품 이상은 40간, 3품 이하는 30간, 서민은 10간을 넘지 못하도록 정했다. 아울러 주춧돌 말고는 다듬은 돌을 쓰지 못하도록 했으며 단청 등 비싼 색칠을 하지 못하게 했다.

세종은 이후로도 주택의 규모 외에도 주택을 구성하는 건물들의 구성 및 총량마저 규제하는 정책을 내놓으며 신분에 따른 엄격한 주택 규제 정책을 선보였다.

조선시대에는 다주택을 규제하는 정책이 나오기도 했다. 자녀대에 세대분리가 이뤄지기 전에는 1가구 1주택만 허용하도록 한 것이다.

성종은 재임한 지 12년째 된 1481년에 주택을 여러 채 보유하기 위해 산맥을 파거나 집을 짓는 사람들의 주택을 철거하라는 어명을 내렸다.

그는 “듣건대 소격서 앞에 정효상의 집이 두 채나 있으며 재상들이 서로 다투어 두 채씩 짓기 때문에 백성들이 성안에서 살 수가 없다고 하니 폐단이 적지 않다”며 “한 채만 지어서 살다가 적장자에게 전해 주면 충분할 터이고 둘째 아들부터는 장가들어 스스로 집을 짓게 해야 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이외에도 도성 근처에 있는 북악산, 남산, 인왕산, 낙산 등을 출입 금지지역인 금산(禁山)으로 설정하고 소나무 벌목, 토지 경작, 채석 등을 막은 사산금표는 조선시대의 대표적 부동산 개발 규제 정책으로 꼽힌다.

다만 풍수지리적 이유와 함께 소나무 육성, 도성 수재해 예방, 치안 유지, 쾌적한 환경 제공 등을 위해 개발을 막았던 사산금표는 인구가 늘어나고 수목 자원 소모량이 늘었던 조선 후기로 갈수록 지켜지지 못했다.

영국의 지리학자이자 여행작가인 이사벨라 비숍은 1894년 조선을 방문한 뒤 남긴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이라는 책에서 서울의 풍경을 보고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여기저기에 소나무 그늘이 있으나 거의 벌거벗었다”고 기록했다. 김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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