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 국힘, '책임정치' 구현 차원서 민주당에 국회 상임위원장 다 넘기는 건 어떤가
이준희 기자 swaggy@businesspost.co.kr2024-04-19 12: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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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일 출구조사가 발표된 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와 국민의힘 지도부의 희비가 교차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국민의힘은 이번 4·10 총선에서 108석을 얻는데 그쳐 개헌 저지선을 겨우 막은 것을 위안으로 삼아야 할 정도로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국민의힘이 가진 108석으론 180석이 넘는 야당의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 진행도 막을 수 없는 형편이다. 이런 판국에 ‘협치’의 첫 걸음이라는 이유로 김기현 전 국민의힘 대표와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 겸 당 대표 권한대행 등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운영위원회 위원장 자리를 여당의 몫으로 넘겨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임기를 한달 조금 더 남긴 21대 국회에서도 ‘협치’라곤 찾아보기 어려웠는데 다가올 22대 국회에서는 '검찰정권 심판'을 내세운 조국혁신당이 원내 3당으로 진입해 여당 견제의 수위는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총선에서 참패한 여당이 법사위를 비롯한 주요 상임위 위원장직을 요구하는 것은 야당의 견제 수위만 올려 국민의 피로도만 높일 공산이 크다.
이에 국민의힘은 법사위원장을 지렛대로 정쟁에 나설 것이 아니라 이번 총선 패배를 당을 쇄신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필요성이 크다.
이런 차원에서 대승적으로 민주당에 모든 상임위원장을 넘겨 국회 전반기 2년 동안 공(功)과 과(過)를 모두 떠안게 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수 있다. 국회 운영의 책임을 한 정당이 오롯이 진 뒤 2026년에 열릴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국민들로부터 다시 ‘심판’을 받아보라는 것이다.
과거 국회 관례에서 국회의장은 1당이, 법사위원장은 2당이 가져가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법사위가 국회의장에 버금갈 정도로 중요하다고 여겨진 것은 각 상임위에서 처리된 법안이 본회의에 회부되기 위해선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를 거쳐야하기 때문이다. 법사위에서는 헌법에 위배되거나 다른 법규에 저촉되지 않는지를 심사한다.
이에 법사위가 본회의에 올라가기 전 최종 문턱의 역할을 해 그 중요성이 강조됐다. 이에 법사위를 놓고 국회의 '상원'이라는 별칭도 붙었다.
하지만 소수당이 법안처리를 의도적으로 막는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2012년 국회법 제85조의2(안건의 신속처리)를 도입한 이후엔 법사위의 중요도가 상대적으로 약해졌다.
물론 법사위를 거치지 않고 각 상임위가 본회의로 법안을 직회부하려면 ‘재적의원의 과반수’가 아닌 ‘재적의원의 5분의 3 이상’으로 요건이 높다. 그런데 야권은 현재 5분의 3이상의 의석을 넉넉하게 확보하고 있어 이 역시 무의미하게 됐다.
국민의힘이 야당과 협력하지 않고선 22대 국회에서 단 하나의 법안도 뜻대로 통과시킬 수 없는 상황에서 또 다시 극단적인 대치를 이어간다면 민주당이 법안을 발의하고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행태가 더 빈번히 발생할 것이 자명해 보인다.
22대 국회 개원을 약 6주 정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당에선 법사위를 야당이 가져와야 한다고 주장이 나온다. 총선 민심에 따라 다수 의석을 맡은 민주당이 국회 운영을 책임져야 한다는 점을 명분으로 삼고 있다.
이에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 겸 당대표 권한대행은 17일 민주당의 독식 의견에 대해 “협치와 의회 정치를 복원하는 데 있어서 법사위원장과 운영위원장을 야당이 차지하겠다는 것은 폭주하겠다는 것”이라며 날을 세웠다.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법사위원장)은 “(민주당이 법사위원장을 가져가면) 국회의장을 내놓아야 한다”고 조건을 내걸었다.
▲ 2022년 10월2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항의하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 사이로 이원석 검찰총장의 선서문이 김도읍 위원장에게 제출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이렇게 정쟁하는 모습을 보이기 보다는 국민의힘이 대승적으로 상임위원장직 모두를 민주당에 양보하고 협치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국민 신뢰를 회복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동기는 다르지만 21대 총선이 끝난 뒤 민주당에서 상임위원장을 대부분 가져간 사례도 있다.
2020년 21대 총선이 끝난 뒤 여야 원 구성 협상 불발로 인해 1988년 13대 총선 이후 처음으로 17개 국회 상임위원회와 상설특위인 예산결산특위 등 위원회 18곳 가운데 정보위를 제외한 17곳의 위원장 자리를 민주당이 모두 가져갔다.
그러나 2021년 7월 여야는 2년씩 법사위원장을 나눠맡는 것으로 협의했고 결국 21대 국회 성적표에 대한 책임을 또 다시 서로에게 돌리는 형국을 맞았다.
국민은 22대 총선에서 결국 21대 국회에 대한 평가보단 윤석열 정부에 대한 평가로 총선 표심을 보였다. 22대 총선에서도 국민의 선택을 받지 못한 국민의힘은 미국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하원 선거에서 한 정당이 한 석이라도 더 많은 의석을 확보하면 대통령제와 마찬가지로 ‘책임정치 구현’을 위해 모든 상임위원회 위원장직을 승자가 독식한다.
미국에서 한 정당이 하원 상임위원장직을 독식하고 있다고 해서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결코 아니다.
상임위 간사는 소수당이 맡아 조율 역할을 하고 상임위 소위원회에서 양당은 적극적인 협상으로 각자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물밑에서 노력한다.
다만 한국과 미국은 선거 기간(term)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난다. 미국은 2년마다 하원의원 선거를 치러 책임성에 따라 빠른 교체가 가능하지만 한국은 4년마다 국회의원 선거를 치르기 때문에 4년이라는 긴 기간을 한 정당에게 모두 맡기엔 리스크가 크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2026년에 지방선거가 2027년 대선에 앞서 기다리고 있다. 국회 중간평가 선거(Midterm Election)의 성격을 띤 지방선거에 국민의 선택을 기다리면 된다.
22대 국회가 열리면 국민의힘은 여느 때와 같이 의정활동을 하면서도 민주당이 단독으로 통과시키려는 쟁점 법안들의 손익계산서를 국민께 분석해서 꾸준히 알려야 할 필요성이 잇다.
아울러 국민의힘 의원들은 쟁점 법안의 통과를 저지하기 필리버스터(Filibuster), 방송 출연 등과 더불어 대통령 거부권을 지렛대로 삼아 꾸준히 민주당과 협상을 이어가면 된다.
다만 1당 견제의 방법으로 법사위원장 권한을 방패삼아 법안 동맥경화를 일으킨다면 여당과 야당, 그리고 국민 모두에게 득이 될 것이 없다. 전향적으로 새로운 접근 방법을 고려해볼 시점으로 보인다. 이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