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위원장이 취임 후 강조한 '동료시민' 정신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감수하게 될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동훈 위원장은 10일 경남도당 신년인사회 뒤 기자들과 만나 전날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된 이태원 참사 특별법안을 두고 부정적 견해를 내비쳤다.
한 위원장은 “특별법 자체에 반대한 것이 아니라 공정하고 국론 분열이 안되면서도 피해자와 유족을 추모·위로하고 보상을 강화할 특별법을 원한 것”이라며 “민주당이 단독으로 통과시킨 특별법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 위원장은 이태원 참사 특별법안에 담긴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구성을 문제 삼았다. 야당과 유가족이 추천한 인사가 특조위 다수를 차지하는 데 동의할 수 없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전날 통과된 이태원 참사 특별법안에 따르면 이태원 참사 진상 재조사를 위한 특조위는 상임위원 3명을 포함해 11명으로 구성된다.
특조위원은 국회의장이 유가족 등 관련 단체와 협의해 3명을 추천하고 여당(대통령이 소속되거나 소속됐던 정당)이 4명, 야당이 4명 추천한 뒤 대통령이 임명한다. 상임위원은 국회의장과 여당, 야당이 각각 1명씩 추천하도록 했다. 위원장은 상임위원 가운데 1명을 의결로 선출한다.
한 위원장은 “특조위를 야당이 장악하고 압수수색·출국금지·동행명령까지도 할 수 있다”며 “야당 주도의 특조위가 사실상 검찰 수준의 조사를 1년 반 동안 한다면 국론이 분열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그는윤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할 것인지 질문에 “원내에서 여러 가지로 신중하게 논의해볼 것으로 안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앞서 쌍특검법을 두고 국민을 위해 거부권 행사가 당연하다고 말했던 것과 다소 온도 차이를 나타냈다.
대통령실은 전날 이태원 참사 특별법안 통과와 관련해 ‘당’과 ‘관련부처’의 의견을 종합해 입장을 밝히겠다고 했다. 한 위원장이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는 쪽으로 당론을 모을지 관심이 모이는 까닭이다.
▲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시민대책회의가 1월9일 국회 본관 앞에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 본회의 통과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고 독립적 조사 기구 설립으로 진상을 규명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실은 여야 합의 없이 강행 처리된 점에 유감을 나타냈지만 ‘거부권 행사’를 언급하지 않았다. 쌍특검 법안은 통과된 뒤에는 즉시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란 입장을 나타냈다.
대통령실의 입장을 두고 여론을 의식했다는 해석이 적지 않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안은 대통령 영부인 김건희 여사를 수사하는 내용이 담긴 쌍특검 법안과 달리 이태원 참사의 진상규명이 핵심 내용이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총선을 앞두고 여론이 악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 쌍특검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또 다시 거부권을 행사하는 점도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운 대목으로 여겨진다.
특히 유가족들이 전날 본회의에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안 의결 과정을 지켜보며 반대 토론에 나선 이만희 국민의힘 의원을 향해 비판을 쏟아낸 점은 민주당이 강행처리를 했음에도 정부여당을 압박할 수 있는 명분이 될 수 있다.
국민의힘 소속으로 유일하게 이태원 참사 특별법안 반대 토론에 나선 이만희 국민의힘 의원은 “세월호 참사와 달리 이태원 참사는 더 숨기는 사실도, 더 숨겨야할 사실도 없다”고 말하자 방청석에 앉아있던 유가족들은 “조사를 안 하지 않았느냐”며 오열했다.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위원장은 전날 국회 본관 앞에서 “정부가 참사 이후 해왔단 행태를 국민의힘이 보이며 유가족에 상처를 줬다”고 표결에 불참한 국민의힘을 비판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을 향해 “절대 거부권을 행사해선 안 된다는 말씀을 다시 한 번 드린다”고 강조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 위원장이 먼저 거부권 행사를 건의한다면 그만큼 대통령실은 부담을 덜 수 있지만 한 위원장의 부담은 커질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 위원장은 앞서 쌍특검 법안을 '총선용 악법'이라고 주장했지만 이태원 참사 특별법안과 관련해서는 같은 주장을 펼치기 쉽지 않다. 민주당이 김진표 국회의장의 중재안을 대폭 수용해 통과시켰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