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철근누락’ 아파트 사태가 벌어진 뒤 방대한 조직의 축소, 사업권한 분산 등 기능개편 논의가 지속돼 왔다. 이번 혁신안이 3기 신도시 개발사업에도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린다.
▲ 정부가 한국토지주택공사 혁신방안을 조만간 발표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3기 신도시 개발사업에도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린다.
5일 정치권 안팎에 따르면 이번 한국토지주택공사 혁신안은 전관예우 차단 강화와 철근누락 등 부실공사 재발방지 대책, 조직 비효율성 문제 개선 등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토지주택공사의 설계·시공·감리 관련 업무를 비롯해 도시개발과 공공주택공급 등 업무 권한의 일부를 분리, 이관하는 등 방안도 유력하게 검토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혁신안 내용에 따라 지방자치단체나 지방 주택공사 등 다른 공기업들이 3기 신도시 사업에 역할을 늘리는 방안에 힘이 실릴 가능성이 있다는 시선이 나온다.
현재 3기 신도시 조성사업은 이미 서울주택도시공사(SH), 경기주택도시공사(GH) 등 지방 주택공사들이 적극적으로 사업 참여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또 최근 건설부동산시장 위축으로 주택공급 부족 전망이 나오고 있다는 점에서도 3기 신도시 사업의 정상적 추진은 중요한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박상우 국토부장관 후보자는 5일 인사청문회 준비를 위해 정부과천청사 사무실로 출근하는 길에 기자들과 만나 “조만간 주택공급 부족현상이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많다”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3기 신도시를 조기에 착수해 빨리 공급한다든지 규제완화 등과 더불어 공급형태 다양화를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는 앞서 9월 토지주택공사 혁신안과 별도로 서울주택도시공사의 3기 신도시 사업참여 문제와 관련 행정안전부에 지방공기업법, 지방자치법 등 유권해석을 의뢰한 것으로 파악된다.
3기 신도시 사업권한 분산방안을 실제 무게 있게 검토하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김헌동 서울주택도시공사 사장은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철근누락 아파트 사태로 사업운영에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자 3기 신도시 사업 기회를 나눠달라고 적극적으로 요청하고 있다.
서울주택도시공사는 최근 3기 신도시 개발과 구리토평2지구 등 신규 공공주택지구 사업참여를 국토부에 공식적으로 건의하면서 행보를 더 본격화하고 있다.
서울주택도시공사는 앞서 10월 광명시흥, 과천과천, 남양주왕숙2, 하남교산 등 4개 지구 사업시행자 참여를 원한다고 국토부에 제안했다. 주민보상 문제 등으로 지연되고 있는 지구를 맡아 빠르게 사업을 추진해보이겠다는 것이다.
김 사장은 11월15일 서울 중구에서 진행한 취임 2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전 정부가 13곳에 3기 신도시를 조성하겠다고 했지만 6곳만 보상이 이뤄졌고 7곳은 시작도 하지 못하고 있다”며 “서울주택도시공사가 보유한 재원을 바탕으로 이런 지역에서 개발에 나서겠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9월 공공주택의 사회적 기여도 관련 기자간담회에서도 “경기도민과 나아가 서울시민을 위해 3기 신도시에 적극 참여하고 싶다”며 “서울시에 더 큰 사업기회를 주면 경기도 지자체장들과 상의해 우량한 시스템을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경기주택도시공사도 이번 기회에 3기 신도시 사업지분 확대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내보이고 있다.
김세용 경기주택도시공사 사장은 최근 공식석상에서의 발언과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3기 신도시 개발에 속도를 내려면 한국토지주택공사 지분을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사장은 11월23일 YTN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지금 경기도 신도시 현장을 보면 경기주택도시공사(GH)가 맡은 구간은 큰 문제없이 쭉 가고 있는데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맡은 구간들은 좀 차질이 생기고 있다”며 “현장에서 보면 주민들이 한국토지주택공사에 관한 불신, 그러니까 우리 동네는 ‘순살 아파트’ 짓기 싫다 뭐 이런 안전에 관한 문제가 있다”고 언급했다.
경기주택도시공사는 3기 신도시 공공주택지구 90%가 경기도지역인데 서울주택도시공사가 참여를 욕심내는 것도 사안을 잘못보고 있는 것이라고 짚었다. 우선 현행법으로도 불가능할 뿐 아니라 지역 주민들도 개발이익이 다른 지역으로 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 사장은 11월14일 경기도의회의 행정사무감사 자리에서도 “서울주택도시공사가 3기 신도시에 끼어 들 명분도 없고 이해도 안 된다”며 “주택도시기금법 시행령 개정 등에 힘쓰며 자본금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말했다.
3기 신도시 조성사업은 한국토지주택공사의 핵심 정책사업이다.
토지주택공사는 3기 신도시 5개 지구 조성사업에 평균 지분 70~80%를 보유하고 사업을 주도하고 있다. 경기주택도시공사는 경기도와 함께 남양주왕숙2지구 사업시행 지분 20%, 남양주왕숙지구 지분 20%, 고양창릉지구 지분 20%, 하남교산지구 지분 30% 등을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토지주택공사가 철근누락 공공아파트 무더기 적발 등 부실시공 문제로 대대적 혁신 등 내부개혁 과제를 앞두면서 3기 신도시 사업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3기 신도시 각 지구는 지금도 최초 입주시기가 평균 1~2년 넘게 연기된 것으로 나타났다.
▲ 3기 신도시 위치도. <3기 신도시 공식홈페이지>
다만 일각에서는 한국토지주택공사 혁신의 하나로 권한축소와 이양 등이 나온다고 해도 3기 신도시 사업을 지방 주택공사가 맡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견해도 나온다.
서울주택도시공사는 지방공기업법 등에 따라 서울이 아닌 경기도 개발사업 참여가 불가능하다. 또 개발사업에는 개발이익 환수문제, 사업 손실 발생 때 교차보전 문제 등 여러 복잡한 문제가 걸려 있다.
경기주택도시공사는 3기 신도시 사업지분을 높이기 위해서는 공사채 발행 때 부채비율 제한 등의 완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신도시 건설은 토지주택공사와 지자체 도시공사들이 지분참여 방식의 협약을 통해 진행한다. 참여 지분율에 맞춰 사업비를 투자한 뒤 개발이익을 나눠 받는 방식이다.
3기 신도시 사업은 5개 지구만도 16만9천 세대 주택을 공급하는 대형 사업이다. 기타 공공주택지구로 선정한 지구들까지 더하면 규모는 더욱 커진다.
현재 사업시행을 주도하고 있는 한국토지주택공사는 2022년 기준 자본총계 규모가 67조316억 원에 이른다. 반면 서울주택도시공사는 9조7938억 원, 경기주택도시공사 자본총계는 4조9262억 원이다.
3기 신도시는 수도권 주택시장 및 서민주거 안정을 위해 공공주택특별법에 근거해 계획한 공공주택지구다.
남양주왕숙(5만2천 호)·왕숙2(1만3천 호), 하남교산(3만3천 호), 인천계양(1만7천 호), 고양창릉(3만5천 호), 부천대장(1만9천 호) 등 5개 지구에서 모두 공공주택 16만9천 세대를 조성해 공급한다.
정부는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방안에서 3기 신도시 외에도 과천과천, 안산장상, 인천구월2, 화성봉담3, 광명시흥, 의왕군포안산, 화성진안 등 기타 공공주택지구를 지정해 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4일 대통령실 개각발표 뒤 정부세종청사에서 진행한 기자간담회에서 토지주택공사 혁신안을 다음주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원 장관은 “토지주택공사 혁신안은 부처협의에 시간이 걸렸지만 큰 줄기는 대통령에 보고했다”며 “후임자에 넘길 일은 아니다”고 말했다.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