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 개막식 연설을 진행하고 있는 술탄 아흐메드 알 자베르 의장. < COP28 공식 유튜브 > |
[비즈니스포스트] 술탄 아흐메드 알 자베르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 의장이 이번 총회를 사익에 이용하려 했다는 주요 언론 보도를 강력히 부인했지만 의심의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있다.
결국 자베르 의장은 이번 총회가 끝나는 이달 12일 전에 화석연료 기업과 산유국들이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이라는 전 세계적 목표에 동참하고 실제로 기후위기 해결에 기여하도록 이끌어내야 이러한 의심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1일 주요 외신 보도와 COP28 개막식 소식을 종합하면 자베르 의장의 기후총회를 향한 진정성을 놓고 의혹이 이어지고 있다.
BBC와 기후보고센터에서 27일(현지시각) 입수한 COP28 주최 측 내부문건에 따르면 아부다비 국영석유회사(ADNOC)과 마스다르(MASDAR) 등 아랍에미리트 국영 에너지 기업들이 이번 기후총회를 사업 확장의 기회로 삼으려는 계획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두 기업 모두 자베르 의장이 최고경영자(CEO)로 앉아 있거나 고위경영진을 겸임하고 있다.
이에 자베르 의장은 29일(현지시각) 가디언과 파이낸셜타임스 등이 참가한 기자회견에서 “이번 혐의는 사실이 아니고 잘못된 데다 매우 부정확하다”며 “COP28 의장의 권위를 훼손하기 위한 획책”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당신들이 보기에 나와 아랍에미리트가 COP나 의장직을 악용해 사업을 확장해야 할 정도로 사업 소질이 없는 것 같냐”며 “아랍에미리트는 지난 50년 동안 성공적으로 사업을 진행해오며 각국과 협력 관계를 구축했다”고 덧붙였다.
COP28 주최 측도 내부문건 보도가 나온 날 곧바로 “해당 문건은 COP에서 활용될 문서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 사메 수크리 이집트 외무장관 겸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 의장으로부터 의사봉을 건네받는 술탄 알 자베르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 의장. < COP28 공식 유튜브 > |
국제 인권단체 앰네스티와 그린피스 등 환경단체들은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에 자베르의 의장직 박탈을 촉구했다.
앨리스 해리슨 글로벌 위트니스 화석연료 캠페인 대표는 가디언을 통해 “화석연료 업계가 국제적 기후위기 해결 프로세스를 강탈(hijack)했다”며 “이번 내부문건 유출 사태는 화석연료 기업이 기후위기 해결에 기여할 수 있다는 관념을 완전히 파괴했다”고 말했다.
국제 환경단체 글로벌 위트니스는 기후총회가 개막하기 직전까지도 자베르 의장이 사퇴해야 한다는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자베르 의장이 이러한 의심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이번 회담을 통해 '화석연료 기업들도 기후목표를 위해 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을 증명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자베르 의장은 개막식 연설에서 “이번 총회에서 진행되는 전 지구적 이행점검(GST) 결과에 힘입어 기후위기 해결을 향한 새로운 길이 열릴 것”이라며 “이번 점검 결과를 통해 2030년 목표로 가는 길에 놓인 잘못을 고치고 더욱 속도를 내서 ‘1.5도 목표’를 지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1.5도 목표란 2015년 파리협정에서 합의된 것으로 산업화 이전 시대와 비교해 세계의 평균 기온상승을 1.5도 아래로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그는 “화석연료 기업들이 이러한 공개 협의에 포함되는 것에 부정적인 시각이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그럼에도 화석연료를 이러한 논의에서 배제하면 안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랍에미리트는 현장에 참석한 산유국과 화석연료 기업들이 주도적으로 기후목표에 참여할 수 있도록 권했다”며 “이것이 성과를 거둬 이번 COP에서 사상 최초로 화석연료 기업들 대다수가 2050년 탄소중립 목표 동참에 약속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어떤 나라와 기업들이 탄소중립에 동참하는지 등 구체적 내용은 아직 상세히 밝혀진 것이 없다.
▲ 오스트리아 빈에 위치한 석유수출국기구(OPEC) 본부. <연합뉴스> |
최근 국제적 여건을 고려해봐도 자베르 의장의 발언처럼 화석연료 기업들이 탄소중립 목표에 동참해 구체적 성과를 내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세계 주요 산유국들이 원유 생산량과 관련해서도 의견 일치를 시키지 못할 정도로 이해관계가 각자 다른 상황이기 때문이다.
COP28 개막식과 같은 날 열린 석유수출국기구 플러스(OPEC+) 장관급 회의에서 산유국들은 석유 시장의 안정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원유 추가 감산을 결정했다. 2024년 1분기까지 회원국들이 일 생산량 220만 배럴 규모의 자발적 감산을 이어간다는 내용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를 비롯한 중동국가들과 러시아는 감산에 동참하는 반면 나이지리아와 앙골라를 비롯한 아프리카 산유국들은 불참을 선언했다.
개발도상국의 위치에 있는 이들의 경제적 여건상 국가 총생산에 큰 영향을 미치는 원유 생산 감축에 쉽사리 동의하기 어려운 입장에 있다.
특히 앙골라는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원유 판매에서 국내 총생산 15%를 얻는다. 수출의 90%도 원유와 석유화학제품에 의존한다.
에스테바오 페드로 앙골라측 석유수출국기구 대사는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석유수출국기구에서 정한 것보다 높은 원유 생산량을 유지할 것"이라며 "이것은 석유수출국기구의 결정에 불복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상황을 반영한 것이며 석유수출국기구는 이를 고려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앙골라 정부는 석유수출국기구에서 정해준 할당량 일 110만 배럴을 넘어 118만 배럴로 원유 생산량을 상향할 것이라는 입장을 발표했다.
이처럼 국가·기업별로 규모는 달라도 모두 화석연료에 수익을 의존하는 만큼 자베르 의장이 이들의 합의를 이끌어내 기후위기 해결에 동참시키는 과제는 쉽사리 달성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