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채널Who] LG그룹에서 분리된 기업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회사, 50여 명의 오너일가가 별 탈없이 가족경영을 이어가고 있는 회사, 바로 GS그룹이다.
GS그룹은 2004년 LG그룹에서 떼어져 나온 뒤 매출 규모가 5배 이상 늘어나면서 재계 순위 8위 기업으로 성장했다.
GS그룹의 꾸준한 성장 속에서도 변하지 않은 게 있다. 바로 사업 포트폴리오다.
출범 당시 LG그룹에서 떼어내 가져온 사업이 정유, 유통, 건설이었는데 지금도 이 사업구조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 그만큼 주력사업을 안정적으로 잘 키워냈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지만 최근 GS그룹의 실적을 보면 이 포트폴리오가 오히려 위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GS그룹은 2021년에서 2022년, 유가 상승 바람을 타고 2년 연속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했지만 2023년 상반기에는 영업이익이 2022년 같은 기간보다 36.5% 감소했다. 유가, 정제마진 하락이 원인이었다.
그룹 매출 포트폴리오에서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는 정유사업의 업황에 따라 그룹 전체 실적이 요동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허태수 회장은 이런 GS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에 변화의 물꼬를 튼 인물이다.
허태수 회장은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진 경영자는 아니다. 언론 노출을 꺼리기도 하고 회사는 실무자들이 돋보여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허태수 회장은 조용하지만 강하게 GS그룹의 혁신을 이끌고 있다.
취임 후 바이오, 배터리 같은 미래 신사업에 과감한 투자를 이어가고 있는 건 물론이고 친환경, 인공지능 등 다양한 스타트업 발굴에도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허태수 회장은 사업 다각화를 통해 GS그룹의 새로운 도약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오늘은 재계순위 8위 GS그룹 허태수 회장의 리더십을 분석해보겠다.
◆ ‘증권맨’ 허태수, GS홈쇼핑을 업계 1위 회사로 끌어올리다
허태수 회장은 GS그룹의 오너일가 3세 가운데 유일한 증권업계 출신이다. 미국계 은행과 LG증권 국제금융본부장 등을 거치면서 글로벌 투자 감각을 키워왔다.
허 회장의 경영 행보는 2007년 GS홈쇼핑을 맡으면서 시작됐다.
허 회장은 당시 케이블 SO방송(종합유선방송)을 매각하고 그 돈을 모바일 쇼핑에 투자했다. 당시에는 좋은 채널 번호가 좋은 매출을 보장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케이블 SO방송을 매각하는 것은 스스로 경쟁력을 남에게 넘기는 행위라는 우려가 많았다.
하지만 허 회장의 전략은 제대로 통했다. 모바일 쇼핑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GS홈쇼핑은 업계 1위로 도약하고 매년 최대 실적을 갈아치우는 회사가 됐다.
스마트폰 확산 트렌드를 재빠르게 읽고 선제 투자를 감행한 허 회장의 선구안이 적중했던 것이다. 이후 허태수 회장은 GS홈쇼핑의 해외 진출은 물론 인공지능, 클라우드 등 최신 IT기술을 전파하면서 그룹 내에서 ‘디지털 전도사’ 이런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허 회장은 2019년 큰 형인 허창수 회장의 뒤를 이어 GS그룹 회장이 됐다.
허태수 회장의 취임 당시 GS그룹 안에서는 위기감이 팽배하던 때였다. GS는 한화가 사업을 다각화하는 동안 정체돼있었고, 결국 한화그룹에게 재계 7위 자리까지 내주고 말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GS그룹을 짊어지게 된 허 회장에게는 디지털 리더십과 글로벌 감각을 발휘해서 GS 그룹을 혁신해야 한다는 과제가 주어졌다. 과연 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허 회장의 승부수는 무엇이었을까?
◆ 허태수의 ‘뉴 투 빅’ 전략, 바이오 폐배터리 그리고 스타트업 투자
허태수 회장의 전략은 새로운 사업을 주력 사업으로 키워내겠다는 ‘뉴 투 빅’ 전략을 내세웠다. 그리고 그 구체적 실현 방안으로 인수합병(M&A)을 선택했다.
허태수 회장은 2021년 보톡스 국내 1위 기업인 휴젤을 인수했다. 그리고 휴젤의 2022년 매출은 2021년보다 20% 정도 늘어난 2816억 원을 기록했다.
이후 허 회장은 알츠하이머 치료제 개발기업, 싱가포르 백신 개발기업 등에 잇따라 투자하면서 바이오 시장에서 적극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GS그룹 도약을 위한 허태수 회장의 두번째 승부수는 바로 친환경, 순환경제 사업으로의 전환이다.
이런 전략의 일환으로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것은 바로 폐배터리 사업이다.
GS에너지는 포스코홀딩스와 합작법인을 설립해 폐배터리 재활용 생산 라인을 구축했으며 GS글로벌은 폐배터리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신사업에 뛰어들었다. 또한 GS건설은 자회사를 통해 배터리 재활용 공장을 짓고 있으며 GS퓨처스는 배터리 진단, 관리 기업에 투자를 단행했다.
GS그룹이 배터리 관련 사업을 추진했던 것은 이 때가 처음이 아니다. GS그룹은 2010년 양극재 생산업체를 설립했다가 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LG화학에 팔아버린 경험이 있다. 당시 매각한 양극재 사업부는 현재 LG그룹의 핵심 먹거리가 됐다.
허태수 회장이 계열사를 총동원해서 배터리 수직계열화를 이뤄낸 것도 과거의 패착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다짐에서 나온 셈이다.
허태수 회장의 세번째 승부수는 바로 벤처 스타트업을 통한 미래먹거리 발굴이다.
허태수 회장은 미국에 설립한 벤처투자법인 GS퓨처스, 국내 지주사 최초의 기업형 벤처캐피털 GS벤처스를 중심으로 스타트업 발굴에 온 힘을 다하고 있다.
주목할 건 허태수 회장 취임 후 투자기업을 고르는 기준이 확 달라졌다는 것이다.
과거 GS가 당장 사업실적에 도움이 되는 매물을 눈여겨봤다면 허태수 회장은 규모는 작더라도 미래 잠재력이 있는 스타트업에 투자한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분야 역시 다양해졌다. 인공지능, 콘텐츠, 전기차 충전, 블록체인 플랫폼, 산업바이오 등 GS그룹의 투자영역은 계속 넓어지고 있다.
한 분야에 올인하기보다는 다양한 분야에 그물을 던져놓고 물고기는 잡겠다는 경영 전략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 GS그룹에 새 바람 몰고오는 허태수, 변화가 느린 GS그룹의 체질 이겨낼 수 있을까
허태수 회장이 변화에 더디고 보수적이었던 GS그룹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건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그룹의 체질을 확 바꾸기에는 여전히 소극적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휴젤 인수 후 대규모 빅딜이 없는 데다가 스타트업 투자 규모 역시 재계 8위 그룹의 사이즈와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소극적 행보가 오너 일가 50여명이 지분을 나눠 갖고 있는 GS그룹의 특수성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때도 가문 사람들과 회의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과감한 행보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허태수 회장이 이런 한계를 뛰어넘어 공격적인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느냐가 성장의 중요한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전통의 정유 기업에서 친환경, 탄소중립 기업으로 나아가고있는 GS그룹이 과연 허태수 회장이 뿌린 신사업 씨앗의 열매를 누릴 수 있게 될지 궁금하다. [기획제작 : 성현모, 서지영, 강윤이 / 촬영 : 김원유, 김여진 / 진행 : 윤연아 / 출연 : 장상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