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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지리와 경제] 덕으로 신망얻은 고성 이씨와 400년 역사 종택 임청각(2)

류인학 khcrystal@hanmail.net 2023-06-28 08: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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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지리와 경제] 덕으로 신망얻은 고성 이씨와 400년 역사 종택 임청각(2)
▲ 좋은 명당터 앞이나 옆의 물이 나는 우물을 진응수라고 한다. 사진은 임청각 사랑채. <문화재청>
[비즈니스포스트] 지난번 글에서는 임청각의 주산과 청룡 백호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이번 회엔 안산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임청각 바로 앞에는 낙동강이 흐릅니다. 임청각 중심부와 낙동강 사이의 거리는 60여 미터 밖에 안됩니다. 강 건너편에는 단정하면서도 부드럽게 생긴 산봉우리가 솟아있는데, 이 산이 안산이며 임청각과 안산 사이의 거리는 산 아래 부분이 300여 미터쯤 되고, 정상 부위는 500여 미터쯤 됩니다.

임청각의 안산은 고운 눈썹처럼 생긴 아미문성입니다. 안산이 아미문성인 터에서는 지혜롭고 현명한 사람, 인품이 온화면서도 고매한 사람, 또 의로운 사람들이 나옵니다. 훌륭한 여성들도 많이 배출됩니다.

임청각의 안산은 아미문성이면서 매우 중후하게 생겼습니다. 너부죽한 창고사와 아미문성이 합쳐진 것 같은 형상입니다. 길게 쌓아 놓은 곡식 더미, 노적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창고사와 노적봉은 큰 재물을 불러오니 임청각 터는 대부호가 나올 자리입니다. 바로 앞에 낙동강이 흐르는 데다 반변천까지 앞에서 흘러와 낙동강과 합류하니 아주 큰 재물이 모이게 됩니다.

안산의 오른쪽으로는 안동시 남쪽에 솟아오른 수많은 산줄기와 산봉우리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산줄기들은 부드러운 물결처럼 유장하게 뻗어 있고, 작고 아담한 산봉우리들은 꽃송이를 뿌려놓은 것 같습니다.

험하고 거칠게 생긴 산은 보이지 않고 하나같이 온화하게 생겼습니다. 또, 전망이 매우 넓습니다. 시야가 탁 트여 시원한 느낌을 줍니다.

터와 안산 사이의 거리는 발복 시기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안산이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발복 시기가 빨라집니다. 임청각은 안산이 매우 가까워서 발복이 매우 빨랐을 것입니다.

실제로 임청각을 세운 이명 선생 당대부터 가운이 흥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오래 지나지 않아 대부호가 되었으며 고성 이씨 가문은 안동의 명문가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습니다.

임청각 터는 백호가 가깝고 안산이 아미문성이라서 외손(딸 자손)도 발복하는 터입니다. 임청각의 안산 왼쪽에는 단정하고 아름다운 산봉우리 세 개가 나란히 솟아 있습니다. 이런 형상을 풍수학에선 삼태봉이이라 부릅니다. 또, 앞에 삼태봉이 있으면 뛰어난 인물들이 많이 나옵니다.

예로부터 임청각에서 세 명의 정승이 태어난다는 예언이 전해온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임청각에는 정승 두 명이 태어났습니다. 조선조 중엽의 서성 선생(1558년-1631)과 조선조 말엽의 유후조 선생(1798-1876)이 그들입니다. 두 사람 모두 임청각의 외손으로 모친들이 친정에 와서 이들을 출산했던 것입니다. 

서성 선생의 어머니는 이명 선생의 손녀입니다. 그런데 이 분은 시각장애인었다고 합니다. 서성 선생의 부친은 서해라는 분인데 어려서 부친을 여의어서 숙부가 후견인이 되어 조카의 혼사를 진행했습니다.

숙부는 조카며느리가 될 고성 이씨가 장애인인 걸 나중에 알고 결혼을 극구 반대했습니다. 다른 일가 사람들도 숙부와 함께 결혼을 말렸지만, 서해 선생은 내가 아니면 누가 이 여성과 결혼하겠느냐며 고성 이씨를 아내로 맞았습니다. 당시 선생의 나이 15세, 이씨 부인은 17세였습니다.

서성 선생은 이씨 부인이 23세 되던 해 태어났습니다. 그로부터 2년 뒤엔 아버지 서해 선생이 별세했습니다. 당시 선생 가족의 가장 가까운 혈육인 둘째 큰아버지가 한양(서울)에 살았습니다.

남편이 요절하자 이씨 부인은 어린 아들을 데리고 시아주버니가 사는 한양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지금의 서울역 부근에서 살며 약과와 약식, 약주 등을 만들어 팔아 아들을 뒷바라지 하고 재산을 많이 모았습니다. 이씨 부인으로 인해 약식과 약과가 널리 사랑받는 음식이 되었다고 합니다.

부인은 재산이 많아지자 경기도 포천의 어느 명당터가 있는 땅을 구입하여 거기로 시부모와 남편의 묘를 옮겼습니다. 그 뒤로 서성 선생은 28세 때 과거에 급제하여 3조의 판서와 5도의 관찰사, 도승지 등을 역임했습니다. 사후에는 영의정을 추증받았습니다.

또, 선생의 자손들 가운데는 3대에 걸쳐 정승과 대제학이 나왔고 수많은 학자와 관리들이 배출됐습니다. 이에 서씨 가문은 조선조 최고의 명문가 중 하나가 되었으니 이는 이씨 부인이 외손도 발복하는 임청각의 큰 정기를 받아 가문을 일으킨 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성 선생의 출생지에 대해서는 임청각이 아니고 이씨 부인이 출가하여 남편과 함께 살았던 안동시 일직면의 소호헌이란 설도 있습니다. 소호헌에는 서성 선생의 태실도 있습니다. 그런데, 조선시대엔 친정에 가서 아기를 출산하는 일이 많았으니, 이씨 부인 또한 소호헌에서 아기를 갖고 임청각에 가서 출산한 게 아닌가 합니다.

임청각 안채에는 우물이 있습니다. 좋은 명당터 앞이나 옆의 물이 나는 우물을 진응수라 합니다. 진응수는 명당터의 빼어난 정기로 솟아나는 물이라 해서 매우 귀하게 여기는 물입니다. 임청각의 우물 바로 윗쪽에 영실이란 방이 있습니다. 이 영실이 아기를 출산하는 방이며 서성 선생과 유후조 선생도 여기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유후조 선생은 서성 선생보다 240년 뒤에 태어났습니다. 선생은 사색 당파 중 남인이라 크게 중용받지 못했는데, 고종이 왕위에 오르고 대원군이 섭정하면서 우의정과 좌의정을 역임했습니다. 대원군은 오랫 동안 득세했던 노론 세력과 세도정치로 국정을 전횡했던 안동 김씨 세력을 축출하기 위해 선생 같은 남인을 중용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임청각 영실에서 태어난 외손들이 좌의정도 되고 영의정을 추증 받기도 했지만, 정작 임청각에서 나고 자란 고성 이씨 자손들은 관직과 벼슬에 뜻이 없었습니다.

학문을 닦는 데 힘쓰고, 문학과 예술과 아름다운 자연을 사랑하며 은거하는 생활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이명 선생의 손자 대 이후로는 관직에 오른 이가 병조 정랑을 지낸 이후영 선생 한 사람 뿐이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임청각은 안동지방 최고의 명문가 중 하나로 명성이 높았고 많은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안동지방 사람들이 지녔던 특별한 가치관 때문이었습니다. 안동지방 사람들은 부귀공명보다 학문과 인간의 도리를 훨씬 더 귀하게 여겼습니다. 학문이 깊고 의로우며 덕망이 높은 사람을 크게 존경했습니다.

조선시대 안동지방 사람들이 정승 판서보다 더 명예롭게 여기는 소임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도산서원의 전교와 유향소의 유향좌수였습니다. 전교는 서원의 총 책임자 서원장의 직책명이었습니다. 유향소란 선비 양반들의 자치기구였고 좌수는 유향소의 대표였습니다.

전교와 좌수 모두 학문과 덕망이 특별하게 높은 사람들이 추대받기 때문에 안동의 사대부들은 도산서원 전교나 유향좌수가 되는 것을 최고의 명예로 여겼다 합니다. 이에 대해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유성룡 선생이 영의정 직책을 맡고 있을 때였습니다. 하루는 선조가 선생을 만났는데 선생이 전에 없이 환하게 웃으며 신나고 좋아 어쩔 줄 몰라 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에 임금이 선생에게 무슨 일로 그렇게 좋아하는지 물어보자, 선생은 자기가 안동의 유향좌수로 추대 받아 너무 기쁘다고 대답했습니다. 임금은 신기해하며 안동 유향좌수가 영의정보다 좋으냐고 물었습니다. 선생은 안동에선 유향좌수가 영의정보다 더 영광스런 자리라고 대답했습니다.

여러 조의 판서와 대사헌, 대제학,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 등 나라의 최고 요직을 두루 맡았던 천하의 유성룡 선생이 유향좌수로 추대 받고 임금 앞에서도 기쁨을 감출 수 없었으니 안동 사람들이 얼마나 존경하고 영예롭게 여기는 소임이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안동 사람들한테는 영의정보다 더 영광스런 자리인 유향좌수와 도산서원 전교를 가장 많이 배출한 가문이 임청각이었습니다. 그러니 임청각은 안동 최고의 명가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또, 임청각이 그리 된 데에는 임청각 터의 빼어난 정기에 힘입은 바가 매우 크다고 봅니다. 류인학/자유기고가, '문화일보'에 한국의 명산을 답사하며 쓴 글 ‘배달의 산하’, 구도소설 ‘자하도를 찾아서’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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