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만 정부가 TSMC의 2050년 탄소중립 달성 목표를 지원하기 위해 재생에너지 공급량을 대폭 늘리는 정책을 발표했다. |
[비즈니스포스트] 대만 정부가 자국 최대 반도체기업인 TSMC의 탄소중립 달성을 적극 지원하기 위해 재생에너지 인프라 구축과 공급을 대폭 확대하는 정책을 꺼내들었다.
삼성전자도 탄소중립을 중장기 목표로 내걸고 한국 정부 차원의 노력을 요구하고 있어 대만과 TSMC의 사례를 충분히 참고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9일 대만 타이페이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TSMC는 정기 주주총회에서 “대만 내 재생에너지 부족으로 203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발표를 내놓았다.
TSMC는 2050년까지 전 세계 사업장에서 탄소 배출량을 ‘0’으로 만들겠다는 넷제로 달성 목표를 2021년에 처음 내놓았다. 2025년 이후 연간 배출량을 감소세로 전환해 2030년에는 탄소 배출량을 2020년 수준까지 축소하겠다는 계획도 포함된다.
이듬해 탄소중립 실현 계획을 내놓은 삼성전자와 인텔 등 대형 시스템반도체 제조기업과 비교해 앞선 목표를 제시하며 친환경 분야에서 선두기업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그린피스 등 환경단체는 TSMC가 사업에 필요한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시기를 2030년까지 앞당겨야 한다고 주장하며 압박을 더하고 있다.
TSMC는 현재 대만의 재생에너지 공급량이 반도체공장 가동에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라며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목표라고 언급했다.
재생에너지 공급이 충분한 미국과 중국 사업장은 이미 탄소중립을 달성했는데 대만에서 이를 재현하려면 대만 국영 전력회사(대전)와 정부의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류더인 TSMC 회장은 TSMC 대만 공장에서 사용하는 재생에너지는 전체 전력의 약 10%에 불과하다며 앞으로 대만 내 투자 확대에 따라 에너지 사용량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대만 경제부는 TSMC가 주주총회에서 이런 내용을 언급한 뒤 하루만에 자국의 재생에너지 공급량을 대폭 확대하는 정책을 발표하며 적극적으로 응답했다.
2030년까지 대만 내 재생에너지 공급을 현재의 4배 수준인 900억 kWh(킬로와트시)로 늘리겠다는 계획이 발표됐다.
TSMC의 탄소중립 달성 목표를 정부 차원에서도 그만큼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대만 정부의 재생에너지 정책이 순조롭게 이뤄지면 중장기적으로 TSMC의 사업 측면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시스템반도체 파운드리 핵심 고객사인 애플과 대형 IT기업 등에서 반도체 등 부품을 공급하는 협력사에 탄소중립 달성을 압박하는 사례가 점점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TSMC가 삼성전자와 인텔 등 파운드리 경쟁사보다 선제적으로 탄소중립 달성에 성과를 낸다면 자연히 위탁생산 물량 수주에 더욱 유리한 위치에 놓이게 될 수 있다.
현재 TSMC는 기후변화 재무정보 공개 협의체인 TCFD에 정식으로 가입한 극소수의 반도체기업 가운데 하나다. 가입 시기도 2019년으로 가장 앞선다.
TSMC의 이러한 움직임은 반도체 파운드리 분야에서 최대 경쟁사로 꼽히는 삼성전자에 참고할 만한 사례를 남기고 있다. 대만과 한국의 상황에 유사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2022년 9월 ‘신환경 경영전략’을 발표하고 2050년까지 탄소중립 달성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한국 정부와 시민사회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국은 재생에너지 공급 여건이 상대적으로 좋지 않아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의 전력 사용량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목표 달성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2021년 기준 한국 재생에너지 비중이 7.5%에 불과하다는 점, 가격이 화석연료 기반 전력보다 비싸다는 점을 이유로 들며 정부가 정책적 지원에 힘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2050년까지 국내를 포함한 전 세계 사업장에서 넷제로 달성을 위해 노력하겠다면서도 지금의 여건에서는 불가능한 목표에 그치고 있다는 다소 모호한 태도를 나타낸 셈이다.
다만 TSMC는 대만의 재생에너지 공급 상황이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음에도 적극적으로 탄소중립 목표를 언급하며 강한 의지를 앞세운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TSMC의 탄소중립 달성을 직접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에 속도를 높이고 있는 대만 정부의 노력은 결국 한국 정부에도 교훈을 남기고 있다.
친환경 전문지 클린에너지와이어는 TSMC가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대만보다 해외 투자를 늘려야만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고 바라봤다. 이는 자연히 대만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삼성전자도 이런 상황에 예외가 아닌 만큼 한국 정부도 대만의 정책을 뒤따라 재생에너지 공급 확대에 더 힘을 실으며 탄소중립 달성 지원에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다만 TSMC가 해마다 연 매출의 1~2%를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비용으로 들이는 만큼 정책적 지원 이외에 기업 차원의 노력이 충분히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분석도 고개를 든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