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업후 상환하는 학자금 대출 무이자 혜택을 확대하는 법안을 두고 여야가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5월16일 열린 국회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여당 의원들의 불참 속에 취업 후 학자금 상환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의결되고 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국회에서 학자금 상환 특별법 개정안이 여야간 새로운 쟁점법안으로 급부상했다.
더불어민주당은 학자금 상환 특별법안이 '청년지원'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국민의힘은 거대야당의 ‘포퓰리즘’이라 맞서고 있다.
여야 견해차가 큰데다 법안 추진 과정이 양곡관리법 개정안이나 간호법제정안 등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전례들과 비슷한 만큼 향후 다시 한 번 거부권 정국을 초래할 불씨가 될 가능성이 떠오른다.
18일 정치권에 따르면 여야는 취업 후 상환하는 학자금 대출에 일부 무이자 혜택을 주는 '취업 후 학자금 상환 특별법 개정안'을 놓고 갑론을박을 이어가고 있다.
취업 후 상환 학자금 대출은 대학생이 학교에 다닐 때 대출받았던 학자금의 원금과 이자(원리금)를 졸업한 뒤 취업 등으로 소득이 생기면 갚게 하는 제도다.
민주당은 경기침체로 청년층이 어려움이 가중되는 상황인 만큼 학자금 대출이자 면제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주당이 16일 단독으로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의결한 개정안에는 일정 소득을 올리기 전, 즉 취직 전이라 상환이 시작되지 않은 기간에 발생한 이자를 면제해준다는 내용이 담겼다.
현행 학자금 대출 상환 제도는 원리금 상환이 시작되기 전에 붙는 이자도 모두 갚도록 돼있다. 대학생 학자금 대출 이자율은 2020년 1학기 기준 2%에서 2021년 1학기 1.7%로 내린 뒤 올해는 동결됐다.
국민의힘은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청년 및 여타 취약계층과의 형평성, 재정 부담, 도덕적 해이 등을 이유로 개정안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법안이 상임위를 통과하자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한정된 자원인 국민의 혈세로 집행하는 국가정책은 우선순위가 있어야 한다"며 "무분별한 세금 살포가 아닌 맞춤형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국민의힘은 가구소득이 월 1천만 원을 넘는 소득 8분위 학생들에게 이자를 면제해 주는 것은 과도한 지원이라고 보고 있다.
취업 후 학자금 대출 상환은 학부생 기준으로 소득인정액 10구간 가운데 8구간(월 소득인정액 1080만 원)까지 신청할 수 있다. 소득인정액은 가족이 버는 모든 소득은 물론 보유한 자택, 토지, 현금·보험, 자동차 등을 합해 산정한 금액이다.
교육위원회 국민의힘 간사인 이태규 의원은 16일 교육위원회 회의에서 “고졸 이하 청년은 아예 대출 혜택 자체가 없다”며 “서민 소액대출도 이자율이 3∼4%임을 감안하면 학자금대출 이자 1.7%를 중산층 청년까지 면제해주자는 것은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다만 국민의힘이 ‘소득 8분위’ 지원을 이유로 학자금 이자 지원이 과도하다며 반대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윤 대통령은 지난 대선과정에서 대학생만 혜택을 보던 ‘취업 후 상환 학자금·생활비 대출 제도’를 취업준비생까지 확대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의 공약 역시 ‘소득 8분위 이하 20대 취업준비생'에게 연 500만 원까지 최대 1천만 원 한도 안에서 학자금과 생활비를 대출해주고 취업 후 장기 분할 상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었다.
민주당은 학자금 상환 개정안에 따르더라도 청년들에게 1년에 11~12만 원의 지원금을 주는 정도라 포퓰리즘이라는 평가는 무리라고 반박하고 있다.
교육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김영호 의원은 “학자금 대출 이자 1.7%를 면제해 주면 한 달에 만 원 정도 혜택이 생기는데 만 원 이자 지원이 포퓰리즘은 아니다"고 말했다.
정부여당과 민주당은 학자금 상환 개정안에 따른 재정소요 규모를 두고도 서로 다른 분석을 내놓고 있다.
교육부는 교육위원회에 제출한 재정 추계자료에서 민주당의 학자금 상환 개정안대로 취업 전 기간 동안 학자금 대출 이자를 면제한다면 올해 844억 원을 시작으로 2032년까지 10년간 모두 8321억 원의 예산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했다.
반면 민주당은 교육부가 잘못된 근거에 기초한 재정추계로 재정 부담을 부풀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동용 민주당 의원은 11일 정책조정회의에서 “정부는 대출 금리를 1%포인트 낮추면 (학자금 대출) 수요자가 약 7만 명 더 발생한다는 추계를 제시했는데 그 근거가 되는 연구용역 자료는 2010년 발표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학자금 대출과 관련한 상황이 2010년과 비교해 많이 바뀌었는데 교육부 재정추계에는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 2012년부터 국가장학금이 지급되면서 학자금 대출 수요가 줄어든 것으로 분석된다. 취업 후 상환 학자금 대출 규모는 2010년 8455억 원에서 2022년 8264억 원으로 오히려 줄었다.
학자금 상환 특별법 개정안의 논의 과정을 고려할 때 민주당이 본회의에 직회부해 통과시키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일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야당 단독으로 처리된 법안에 관해 거부권을 행사한다는 뜻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개정안에 계속 반대하자 4월17일 교육위원회 안건조정위원회에 당시 무소속이었던 민형배 의원을 포함시켜 처리했다. 이를 통해 최장 90일의 숙려기간을 무력화하고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단독으로 의결한 것이다.
이재명 대표는 4월22일 페이스북에서 “대학생 학자금 이자 감면, 일방 처리해서라도 꼭 관철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통과 의지가 강한 만큼 국민의힘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법사위를 건너 뛰고 본회의에 올릴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윤 대통령은 2030세대에서 낮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어 청년 지원을 확대하는 학자금 상환 특별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에 국민의힘은 민주당에 법안 폐기를 압박하는 한편 대안을 마련하는 데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박대출 정책위의장은 페이스북에서 조속히 구체적 대안을 마련하겠다며 여러 방안을 언급했다.
그는 "기초·차상위 학생들은 등록금 전액을 국가 장학금으로 지원하고 저소득 학생 지원 금액을 확대하는 방안을 고려해봐야 한다"며 "수요가 많은 근로장학금도 확대하고 대학생 생활비 대출 한도 상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대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