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2년 9월9일 인텔 오하이오 반도체공장 착공식에서 투자 결정을 환영하는 내용의 연설을 진행하고 있다. <인텔> |
[비즈니스포스트] 인텔이 미국 정부의 반도체 지원법에 담긴 초과이익 공유와 근로자 복지 강화, 노조활동 지원 등 세부 정책을 두고 환영하는 뜻을 나타냈다.
삼성전자와 TSMC 등 미국에 반도체공장을 건설하는 해외 기업들이 다소 난색을 보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인텔이 대규모 보조금 등 인센티브를 확보하는 데 더 유리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원은 현지시각으로 5일 바이든 정부의 반도체 지원법이 미국 경제에 불러올 긍정적 영향에 관련해 소개하는 공식 설명자료를 냈다.
펠로시는 “반도체 지원법은 미국에 10만 명 가까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며 “다수의 반도체기업이 전 세계에서 미국의 시장 지배력을 높일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텔과 마이크론 등 미국 업체는 물론 삼성전자와 TSMC를 비롯한 글로벌 기업도 반도체 지원법에 수혜를 노려 현지 공장 건설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을 언급한 것이다.
펠로시는 반도체 생산공장뿐 아니라 연구센터를 건설하는 기업도 보조금과 세제혜택 등 인센티브 제공 대상에 해당한다며 여러 기업들이 지원을 신청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인텔의 팻 겔싱어 CEO는 펠로시의 언급과 관련해 “반도체 지원법은 미국의 기술 리더십과 경제, 안보 향상에 기여할 것”이라며 “미국 반도체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겔싱어는 인텔이 미국에 첨단 반도체 생산 설비를 도입할 수 있게 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반도체 지원법에 관련해 적극적으로 환영하는 뜻을 나타냈다.
그가 미국 반도체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조한 배경은 정부 지원금이 해외 업체보다 인텔과 같은 현지 업체에 집중되어야 한다는 점을 주장하기 위한 목적으로 분석된다.
인텔은 미국 정부가 반도체 지원법을 처음 추진할 때부터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뜻을 나타냈다. 바이든 정부의 정책에 인텔이 최대 수혜기업으로 꼽혔기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도 인텔의 오하이오 반도체공장 착공식에 직접 참석할 정도로 정부 차원의 지원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인텔은 현재 미국 오하이오 및 애리조나주에 각각 200억 달러 규모의 생산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중장기적으로 예상하고 있는 미국 내 투자 규모는 1천억 달러에 이른다.
▲ 인텔 미국 애리조나주 반도체공장 건설 현장. |
겔싱어가 반도체 지원법에 환영의 뜻을 나타낸 시점은 미국 상무부가 지원금과 관련해 까다로운 세부 조건을 제시한 뒤 나왔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상무부는 최근 발표한 반도체 지원법 세부 시행안에서 정부 지원을 받는 기업이 세부 사업계획서를 제출하고 공장 근로자를 위한 복지 증진이나 노조활동을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는 등 조건을 달았다.
사업계획서에 밝힌 내용보다 많은 이익을 거둔 기업은 초과이익을 미국 정부에 일부 반환해야 하고 정부 지원금 사용처를 제한해 자사주 매입 등 주주환원 활동을 제약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반도체 보조금을 받은 기업의 중국 내 신규 투자나 첨단 기술 투자도 금지된다.
바이든 정부가 과거에 도입을 시도했지만 의회 동의를 받지 못해 시행될 수 없던 정책을 반도체 지원법의 세부 조항에 추가하는 방식으로 ‘꼼수’를 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삼성전자와 TSMC 등 반도체 지원법에 수혜를 기대하던 기업은 중국 투자 제한이나 초과이익을 미국 정부에 공유하는 등 조건 때문에 미국 내 투자에 더 신중한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다.
이들 기업이 결국에는 미국 투자 규모를 축소하거나 공장 건설을 늦추게 될 수 있다는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반면 인텔은 미국 정부의 이러한 정책에도 공개적으로 지지 의사를 표명하며 상반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만큼 정부 보조금 확보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논평에서 “인텔이 반도체 지원법과 관련해 초과이익을 공유하고 노조활동을 유도하는 등 정책에는 동의하기 않았기를 바란다”며 “인텔에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반도체 보조금을 노려 미국 정부의 무리한 정책에도 적극 따르겠다는 태도를 앞세우는 일은 부정적 선례를 남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인텔의 이러한 움직임이 결국 삼성전자와 TSMC 등 경쟁사를 제치고 훨씬 더 많은 지원금을 확보하는 데 기여하게 될 공산이 크다는 관측이 힘을 얻는다.
미국 정부가 인텔의 지지를 바탕으로 해외 반도체 기업에 상대적으로 불리한 정책을 밀어붙인다면 인텔이 삼성전자와 TSMC의 투자 축소 등으로 큰 반사이익을 거두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전부터 공식 석상에서 인텔의 반도체 투자와 관련해 여러 차례 언급한 반면 삼성전자와 TSMC는 거의 언급하지 않아 인텔을 눈에 띄게 밀어주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상무부가 이번에 공개한 반도체 지원법의 여러 독소조항으로 이런 태도가 더욱 뚜렷해졌다. 해외 기업들은 미국 정부에 초과이익을 공유하거나 미국 국민의 복지혜택을 강화하는 데 돈을 쓰는 일을 꺼리게 될 수밖에 없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논평을 내고 “미국 정부는 반도체 지원법을 통해 너무 많은 목표를 달성하려 하고 있다”며 “이러한 시도는 결국 모두에게 손해를 끼치는 선택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