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상의가 27일 국내 온실가스 다배출기업 400곳을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기업의 68.8%가 탄소중립 추진이 기업 경쟁력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설문조사를 기획한 이시형 대한상의 탄소중립실 과장은 “공급망 등 해외 납품사들의 탄소중립 요구가 급증하자 국내 기업 인식도 크게 달라졌다”고 말했다. |
[비즈니스포스트] 탄소중립 관련, 한국 기업들의 인식이 달라졌다. 경쟁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쪽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쪽으로 180도 태도가 바뀌었다.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회장 최태원)가 27일 국내 온실가스 다배출기업 400곳을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기업의 68.8%가 탄소중립 추진이 기업 경쟁력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평가했다.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응답은 31.2%였다.
같은 기업들을 대상으로 지난해 조사했을 때엔 ‘부정적’이라는 응답이 65.2%, ‘긍정적’이란 응답이 34.8%였다. 1년 사이에 기업들의 인식이 뒤집어진 셈이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 설문조사를 기획한 이시형 대한상의 탄소중립실 과장(이학 박사)은 “1년 전만 해도 기업들이 탄소중립을 정부 규제라고 인식했는데, 그동안 공급망 등 해외 납품사들의 탄소중립 요구가 급증하자 국내 기업 인식도 크게 달라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내 제조분야 대기업 10곳 중 3곳은 해외 고객사로부터 탄소중립을 요구 받았다는 조사 결과도 있었다. 지난해 8월 대한상의가 대기업 80곳, 중견기업 220곳의 제조기업들 조사한 결과였다. 대기업은 28.8%, 중견기업은 9.5%가 재생에너지 사용을 요구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인식 변화가 실제로 기업 경쟁력 강화로 연결되려면 넘어야 할 장벽이 많다. 재생에너지 발전량 확보, 전기차 등 기존 산업의 전기화, 탄소중립을 위한 혁신 기술 개발 등등.
이 과장은 특히 "산업의 탄소중립과 관련 가장 큰 문제는 (기존 기술의) 대체수단이 별로 없다는 데에 있다"며 "혁신 기술 개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비즈니스포스트는 24일 이 과장을 만나 탄소중립을 기업의 경쟁력 강화 기회로 만들기 위한 해법을 물었다. 그는 환경부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 정책심의위원이자 한국기후변화학회·한국에너지기후변화학회 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 올해 2월 설문조사를 보면 탄소중립에 대한 기업들의 인식이 지난해와는 크게 달라졌다. 원인은?
“투자 불확실성이 사라진 게 가장 큰 요인이다.
최근 정부는 온실가스 감축 설비 투자에 대한 지원을 확대했다. 탄소차액계약제도 도입이 한 예다. 정부가 기업의 탄소 감축 실적을 고정가격으로 선매입해 혹시 나중에 탄소배출권 가격이 떨어지더라도 온실가스 감축시설에 투자한 기업이 손해를 보지 않도록 보전해주는 제도다.
제4차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기본계획을 당초 계획보다 1년 앞당겨 조기 수립한 것도 기업들에는 긍정적인 신호였다. 온실가스 감축이 중장기적 정책 기조라는 신호를 기업들이 분명하게 받아들이고 대비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마련했다.”
-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유럽연합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도입으로 국제 시장 분위기도 달라졌다.
“그렇다. 1년 전만 해도 탄소중립이라고 하면 기업들이 정부 규제라고 인식했는데, 공급망 등 해외 납품사들이 탄소중립을 요구하자 국내 기업 인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RE100(재생에너지 100%)에 가입한 글로벌 대기업들이 재생에너지 사용 실적을 요구하는 사례가 급증했다. 지난해 대한상의 설문조사를 보면 제조업 대기업 10곳 중 3곳이 재생에너지 사용을 요구 받았다.”
- 탄소중립이 실제로 기업의 경쟁력 강화 기회로 이어지려면 어떤 지원이 필요할까.
“산업의 탄소중립과 관련 가장 큰 문제는 대체 수단이 별로 없다는 데에 있다. 발전 부문은 재생에너지나 원전, 수송 부문은 전기차 등 대체수단이 있지만 다른 산업 부문에는 아직 없다.
제조업은 아무리 에너지 효율을 높여도 제품의 매출이 늘면 탄소 배출량이 는다. 예를 들어, 제조업에선 아무리 에너지효율을 최대로 높여놔도 볼펜 하나라도 더 생산하면 탄소배출이 늘어난다. 이걸 탄소배출권을 사서 해결하려 하면 비용이 는다.
산업 특히 제조업 분야에선 탄소중립을 이행할 수 있게 해주는 분야별 혁신기술 개발이 가장 필요하다. 철강 부문만 봐도 수소환원제철이 대체수단이라 하지만 아직 기술 개발이 되지 않았다. 이 기술을 개발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 정부는 지난 22일 2030년까지 9352억 원을 투자해 화학, 철강, 시멘트, 반도체 등 탄소다배출 4대 산업 부문의 탄소저감 기술을 개발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해외와 투자 규모 차이가 크다. 마이크로소프트 한 개사만 봐도 2030년까지 10억 달러, 약 1조3천억여 원을 탄소저감기술에 투자한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기업이 경쟁력을 가지려면?
“기술이 필요하고 해서 기업이 반드시 직접 개발할 필요는 없다. 다른 기업이 개발한 것을 갖다 쓸 수도 있다. 한국이 모든 기술을 다 개발할 순 없다. 기술개발은 해외와도 경쟁 중이다.
게다가 에너지기술이나 탄소중립 기술은 개발 기간, 투자 회수 기간이 길어 장기적 관점으로 꾸준히 투자하고 노력해야 한다. 긴 투자를 위해선 정부 지원이 확대되어야 한다.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 우리가 상용화 가능한 기술, 경제성 있는 기술을 선택해 지원을 집중해야 한다.” 이경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