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현지시각 2022년 8월9일 백악관에서 반도체 지원 법안에 서명하고 있다. < UPI > |
[비즈니스포스트] 미국 상무부가 2월 중 바이든 정부의 반도체 지원법 시행에 따른 보조금 제공 계획과 가이드라인, 지원이 이뤄지는 시기 등을 자세히 설명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반도체기업이 받는 보조금 규모가 상무부 판단 기준에 따라 결정되는 만큼 삼성전자가 TSMC와 인텔 등 경쟁사에 맞서 추가 투자 계획을 내놓을 가능성이 떠오른다.
8일 월스트리트저널 보도에 따르면 상무부는 2월 하순에 세계 반도체기업을 대상으로 미국 정부 보조금을 신청하기 위한 절차와 지급 시기 등을 발표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이 직접 이런 내용을 발표하며 지원 대상 기업을 선정하는 기준과 평가 요소 등에 관련해 자세한 설명을 내놓는다.
미국 정부는 반도체 지원법 시행에 따라 현지에 반도체 생산공장 및 연구개발 센터를 설립하는 기업에 모두 527억 달러(약 66조 원)에 이르는 지원금과 추가 세제혜택을 제공한다.
삼성전자와 인텔, 마이크론과 대만 TSMC 등 지난해부터 미국에 반도체공장 투자 절차를 진행하고 있는 기업들이 최대한 많은 보조금을 확보하기 위해 경쟁을 벌이게 됐다.
미국에 반도체 생산공장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것은 현재 전 세계 공장이 대부분 위치한 아시아 국가에 투자하는 것과 비교해 인력 확보와 비용 등 측면에서 부담이 크다.
따라서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일이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필수요소로 꼽힌다.
삼성전자는 정부 보조금을 노려 지난해부터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170억 달러(약 21조 원)를 들여 반도체 파운드리공장을 신설하고 있다.
그러나 투자 규모가 주요 경쟁사와 비교해 적은 수준인 만큼 지원을 받기 다소 불리한 상황에 놓이고 있다.
마이크론은 미국 뉴욕주에 메모리반도체 생산공장 등을 설립하는 데 1천억 달러를 들이겠다는 공격적 계획을 제시했다. 인텔은 200억 달러를 들여 오하이오주에 공장을 신설한다.
TSMC는 당초 미국 애리조나주에 120억 달러를 들이기로 했지만 투자 규모를 400억 달러로 대폭 늘리며 3나노 등 첨단 반도체 공정기술을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최근 제시했다.
미국 정부가 반도체기업에 지원금을 제공하는 주요 목적은 반도체 자급체제를 구축해 아시아 국가에 의존을 낮추고 중국과 기술 패권 경쟁에서 우위를 갖추기 위한 것이다.
자연히 더 많은 규모의 투자를 벌여 이런 목표 달성에 크게 기여하는 반도체기업이 주요 수혜 대상으로 자리잡게 될 공산이 크다.
삼성전자가 경쟁사들의 투자 공세에 밀려 소규모 보조금을 받는 데 그친다면 미국 반도체공장 건설이 중장기적으로 운영 비용 등 측면에서 오히려 손해로 돌아올 수도 있는 셈이다.
▲ 미국 정부가 반도체 지원법 시행에 따른 보조금 제공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며 삼성전자의 추가 투자를 유도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삼성전자 텍사스주 오스틴 파운드리공장 내부. |
그러나 삼성전자도 최근에는 미국 반도체 투자 경쟁에 더욱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상무부의 지원 신청서 접수를 앞두고 이전과 달라진 태도를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2022년 4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을 통해 “미국 테일러 반도체공장에서 2024년 하반기부터 4나노 공정 제품을 양산하겠다”고 밝혔다.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공장에 어떤 공정을 도입할 지 확정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더 구체화된 계획을 제시한 셈이다.
삼성전자가 미국에서 4나노 반도체를 생산하는 시기는 TSMC가 4나노 공정을 도입해 운영하겠다고 밝힌 시점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TSMC보다 미국 반도체공장 투자를 비교적 늦게 시작했지만 첨단 공정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보조금 확보에 장점을 안고 고객사 수주 경쟁에도 활발히 뛰어들겠다는 의지를 보인 셈이다.
삼성전자는 더 나아가 미국에 시스템반도체 파운드리공장뿐 아니라 메모리반도체 공장 건설을 추진할 수 있다는 점도 시사했다.
최근 컨퍼런스콜에서 삼성전자는 “미국 테일러에 메모리반도체 생산시설 구축은 지금 시점에서 명확하게 답하기 어렵다”면서도 “다양한 조건과 가능성을 열어 놓고 검토하겠다”고 전했다.
삼성전자는 현재 텍사스주에 앞으로 20년 동안 반도체공장 11곳을 신설하는 방안을 제시하며 지방정부에서 제공하는 세금 감면 등 인센티브를 신청해 승인을 받았다. 투자 계획이 모두 실현된다면 2천억 달러를 넘는 규모다.
미국 상무부의 보조금 심사가 진행될 때 삼성전자가 이런 투자 계획을 더 구체화해 내놓는다면 TSMC와 마이크론, 인텔 등 경쟁사를 제치고 더 많은 지원금을 확보할 수 있는 강력한 승부수가 될 수 있다.
다만 미국 정부의 반도체 지원을 받는 기업은 중국 투자에 제약이 걸리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중국에 낸드플래시 생산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삼성전자가 불이익을 안게 될 가능성이 충분한 만큼 무리하게 보조금을 확보하려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미국에서 반도체 보조금을 받는 기업은 앞으로 자사주 매입이나 현금배당 등 주주환원 정책에도 제한을 받게 될 수 있다.
결국 삼성전자가 경영상 의사결정 측면의 자율성과 실익을 지켜내기 위해 미국 정부의 반도체 지원법에 따른 수혜를 적극적으로 노리지 않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