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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지리와 경제] 최고 명당 유부자댁 구례 운조루와 타인능해 뒤주(1)

류인학 khcrystal@hanmail.net 2023-02-08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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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지리와 경제] 최고 명당 유부자댁 구례 운조루와 타인능해 뒤주(1)
▲ 중요민속문화재 제8호로 지정된 전남 구례군 운조루. < 구례군청 >
[비즈니스포스트] 경상도에 부자 명가 경주의 최부자댁이 있다면, 전라도엔 구례의 운조루 유씨 가문이 있습니다.

유부자댁은 최부자댁처럼 이백 년 가까이 대대로 유복하게 지내며, 많은 선행으로 덕망이 높았습니다. 유부자댁인 운조루는 고택 명소가 되어 해마다 많은 관람객이 방문하는데 지금도 유씨 가문 종손이 여기서 살고 있습니다.

운조루(雲鳥樓)는 원래 사랑채 당호였는데 지금은 유부자댁 전체를 가리킵니다.

호남지방에는 예로부터 호남 3대 길지로 널리 알려진 양택명당(집터 명당) 세 곳이 있습니다.

담양의 만물시생지, 구례의 금환낙지, 정읍의 평사낙안이 유명한 3대 양택명당입니다. 운조루는 금환낙지에 자리잡았다고 알려진 문화 유씨 가문의 고택입니다. 운조루 터를 호남지방 뿐 아니라 우리나라 최고의 양택 명당이라고 극찬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운조루를 세운 이는 낙안군수와 삼수부사를 지낸 유이주 선생입니다.

선생의 고향은 대구입니다. 선생은 본래 무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올랐는데, 풍수학에도 조예가 깊어 관직에서 물러나면 좋은 길지를 찾아 가솔들과 함께 은거할 뜻이 있었습니다. 선생은 자손들이 세상의 거친 풍파에 휩쓸리지 않고 오래 오래 평화로이 유복하게 살 수 있는 복지를 구하려고 애썼습니다. 

당시 경상도 지방에는 좋은 길지에 터를 잡고 수백 년에 걸쳐 자손 대대로 복을 누리는 명문가의 집성촌들이 많았습니다. 그들 중에는 영남지방 4대 명당 길지로 알려진 안동 하회 마을, 안동 내앞 마을, 봉화 닭실 마을, 경주 양동 마을이 가장 유명했습니다.

하회 마을은 풍산 류씨, 내앞 마을은 의성 김씨, 닭실 마을은 안동 권씨, 양동 마을은 월송 손씨와 여강 이씨의 집성촌입니다. 이 가문들은 대대로 큰 복덕과 명예를 누렸고 또, 많은 존경을 받으며 대대로 명문세가의 맥을 이었습니다. 선생은 자신의 가문도 이런 명문가가 되길 바라며 빼어난 명당 길지를 구하려고 노력했을 것입니다.

그런 선생의 마음이 크게 이끌린 곳이 지리산 서쪽 끝자락인 구례군 토지면 일대였습니다. 선생은 먼저 가솔들을 토지면 파도리로 이주시킨 다음 집터를 구했습니다. 당시 운조루터는 선생의 양자인 유덕호 선생의 처가댁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은 뒷산에서 산사태가 날 위험이 있는데다 바위가 많아서 아무도 여기를 좋은 집터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 터의 진가를 모르고 황무지처럼 방치한 땅이었습니다. 

풍수학에 조예가 깊었던 유이주 선생은 이곳이 빼어난 명당 길지임을 알아보고 사돈댁으로부터 이 땅을 매입했습니다. 땅을 구한 뒤, 선생은 감격에 겨워 5촌 조카이자 양자인 유덕호 선생에게 `하늘이 아무도 모르게 숨겨 놓으셨다 나에게 주셨구나` 라고 말했답니다.

옛날부터 토지면에는 뛰어난 명당 세 곳이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그 세 명당은 거북이가 진흙 속으로 들어가는 형국인 금귀몰니형, 선녀가 하늘로 오르다 땅에 떨어뜨린 금가락지 형국인 금환낙지형, 다섯 가지 보석이 모여 있는 오보교취형입니다.

혹자는 운조루 터가 금환낙지형이라 하고, 혹자는 금귀몰니형이라고 합니다. 

운조루를 지으려고 터를 닦을 때 땅 속에서 거북이처럼 생긴 돌이 나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운조루 터를 금귀몰니형으로 보는 분들이 있습니다. 금귀형은 들판 한가운데나 물가에 있으며, 흡사 거북이처럼 생긴 동산이나 둔덕입니다.

필자의 견해로는 은조루 터를 금귀형으로 보긴 어렵습니다. 금환낙지형이 맞다고 봅니다. 운조루의 주산인 뒷산의 정상 부위엔 금가락지처럼 동그랗게 생긴 봉우리가 있습니다. 또, 운조루에서는 안 보이나 동그란 봉우리 위로는 선녀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형상의 산봉우리가 있습니다. 

멀리 우리 배달겨레의 성산인 백두산에서부터 힘차게 뻗어온 백두대간은 배달 땅 남녘 끝자락에 크나큰 정기로 지리산을 빚어 올렸습니다. 이 지리산 주능선 서쪽 끝인 노고단에서 산맥 두 개가 갈라져 남쪽으로 뻗어 나왔습니다.

그 중 서쪽 산줄기는 형제봉 월령봉을 솟아 올린 다음, 오미리 들판과 만나는 곳에 운조루 주산을 빚어놓고, 계속 남진하여 섬진강에 이릅니다. 노고단에서 갈라져 나온 또 하나의 산맥은 왕실봉 왕시루봉 등을 빚어 올리며 섬진강에 이릅니다.

이 산줄기가 운조루의 청룡입니다. 운조루 주산을 지나 섬진강까지 뻗어간 산줄기는 백호가 됩니다. 

운조루 앞, 청룡과 백호 사이엔 드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습니다. 들판 앞으로는 섬진강이 보입니다. 섬진강은 운조루 앞 들판을 다정하게 감싸주듯 살짝 굽이치며 유유히 흐릅니다.

섬진강 건너편에는 오봉산 다섯 봉우리가 길게 늘어서 있습니다. 이 오봉산이 운조루의 안산입니다. 오봉산 뒤에는 계족산의 주봉과 지봉들이 높이 솟아있으며, 그 형상이 흡사 장막을 펼쳐 놓은 것 같습니다. 이 계족산이 운조루의 조산입니다.

오봉산과 계족산 오른쪽에는 퉁주리봉과 자래봉이 드높이 솟아있고, 또 그 오른 쪽에는 멀리 별봉산, 봉두산, 갈미봉, 천왕봉 등이 보입니다. 오봉산과 계족산 왼쪽에는 백운산의 여러 산줄기와 봉우리들이 겹겹이 늘어서 있습니다.

운조루에서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공허하게 비어있는 곳이 하나도 없습니다. 수많은 산줄기와 산봉우리들이 병풍을 둘러친 듯 운조루를 감싸고 바람을 막아줍니다. 게다가 그 많은 산 중에 흉하게 생긴 산이 하나도 없습니다. 거의 모든 산들이 단아하고 수려하게 생겼습니다.

운조루처럼 많은 산에 둘러싸인 터에 흉하게 생긴 산이 안 보이는 곳은 매우 드뭅니다. 참으로 귀한 복지 중의 복지입니다. 이런 복지는 특별한 덕을 쌓은 사람이라야 얻을 수 있습니다. 재산이 많다고 아무나 쉽게 차지할 수 있는 터가 아닙니다.

뒤에 더 자세히 언급하겠지만, 유이주 선생은 인품이 고매하고 많은 덕을 베푼 분이라 이 터와 인연이 닿았던 것입니다.

운조루의 주산은 정상 부분엔 동그란 금성의 작은 봉우리 두 개가 있고 약간 아래 부분은 토성, 목성, 금성이 합쳐진 형태입니다. 주산이 이런 형상인 터에서는 부유하면서도 지혜롭고 후덕한 사람들이 나옵니다.

안산인 오봉산에는 작은 노적 같은 봉우리 다섯 개와 창고처럼 생긴 봉우리가 나란히 있습니다. 오봉산 오른쪽, 섬진강 강물이 흘러오는 입구에 솟아오른 자래봉도 거대한 노적처럼 생겼습니다.

오봉산 왼쪽, 강물이 흘러나가는 출구에도 거대한 노적처럼 생긴 봉우리가 우람한 자태로 높이 솟아있습니다. 운조루 왼쪽 청룡에도 거대한 노적봉이 있는데 이 봉우리가 가장 가까이 있는 노적봉입니다. 오른쪽 백호에는 창고처럼 생긴 봉우리가 있습니다.

이렇게 노적봉과 창고 형상의 봉우리들이 사방을 호위하고, 섬진강이 다정하게 보호해주니 대부호가 나올 곳입니다. 또, 그 복덕이 오래 유지될 명당입니다. 게다가 사방의 산세가 수려하여 재물로 덕을 베풀어 많은 사랑을 받게 되는 정말 귀한 복지입니다.

운조루 바로 앞에는 농수로가 지나갑니다. 바깥채에서 불과 6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데, 문수골 계곡에서 흘러온 맑은 물이 사시사철 동쪽에서 서쪽으로 운조루 앞을 가로질러 흐릅니다.

이 물의 좋은 기운이 또 운조루에 많은 복을 가져다줍니다. 지혜, 건강, 재복 등 많은 행운을 불러오는데, 아주 가까이 있기 때문에 좋은 영향을 매우 빨리 받습니다.

운조루 터는 섬진강과 안산인 오봉산이 좀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좀 아쉬운 데 이 농수로가 훌륭하게 보완해줍니다. 또, 섬진강 물은 서쪽에서 흘러와 동쪽으로 빠져나가고, 농수로의 물은 반대로 동에서 서로 흐르는 것도 풍수학에선 매우 길하게 봅니다.

유이주 선생은 집터를 구입한 다음, 바로 집을 지을 계획을 세웁니다. 토목과 건축 설계는 본인이 직접 했습니다. 1776년, 설계를 마치고 토목공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선생의 신변에 큰 변화가 왔습니다.

당시 선생은 세손이었던 정조를 지지하는 세력과 가까웠는데 세손의 반대세력에 의해 관직에서 물러나 있었습니다. 1776년 3월, 영조가 승하하여 정조가 왕위에 올랐고, 그 얼마 후 선생은 용천부사로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집을 짓기 시작하자 경사가 생겼으니 모두들 운조루 터가 특별한 명당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선생이 멀리 떠나자 양자인 유덕호 선생이 운조루 건축을 총괄했습니다. 유이주 선생은 임지로 떠나면서 양아들에게 당신이 설계한 그 대로 한 치도 착오 없이 지으라고 일렀습니다.

운조루는 그로부터 6년 뒤인 1782년에 완공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까지 240년 동안 호남 최고의 명당 복지를 지키고 있습니다.

운조루에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많이 전해지는 데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글이 쓰인 뒤주 이야기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이 뒤주 얘기는 다음번 글을 통해 전해드리겠습니다. 류인학/자유기고가, '문화일보'에 한국의 명산을 답사하며 쓴 글 ‘배달의 산하’, 구도소설 ‘자하도를 찾아서’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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