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정부의 업무개시명령과 함께 화물연대가 총파업 철회를 결정하면서 석유화학업계는 가동중지라는 최악의 상황을 면하게 됐다.
수천억 원대에 달하는 생산 피해는 막을 수 있게 됐지만 업황 악화 기조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아 석유화학 기업들의 고민은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 9일 화물연대의 총파업 철회에 따라 석유화학업계가 '가동중지'라는 최악의 상황은 면하게 됐다. 다만 내년에도 석유화학업황 부진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에 기업들은 여전히 고민이 깊을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LG화학 충남 대산공장 전경. < LG화학 >
9일 민주노총 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산하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가 전체 조합원을 대상으로 총파업 철회 여부를 놓고 찬반투표를 진행한 결과, 찬성률 61.82%로 총파업 철회가 결정됐다.
화물연대는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와 품목 확대를 요구하며 11월24일부터 총파업에 돌입한 지 16일 만에 파업을 종료하고 현장으로 복귀한다.
특히 석유화학업계는 8일 석유화학 분야 화물 운송자에 내려진 업무개시명령에 이어 총파업까지 완전 마무리되면서 한시름을 덜게 됐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화물연대 파업 기간 석유화학제품 출하량은 평시와 비교해 20% 수준에 그쳤고 1조3천억 원 규모가 넘는 출하 차질이 발생했다.
화물연대의 파업이 지속되면 3~4일 안에 공장의 생산을 중단해야 하는 상황까지 발생할 수 있었는데 총파업 철회로 가동중지는 피할 수 있게 됐다.
석유화학공장의 가동을 중지하면 공장 재가동까지 최소 15일이 소요되고 이 기간 하루 평균 1200억 원이 넘는 규모의 생산 피해가 예상됐다.
또 자동차 등 연관 산업으로도 피해가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 역시 큰 상황이었다.
그러나 출하 정상화에도 불구하고 업황 악화라는 악재는 장기화할 것이란 예상이 여전히 많아 석유화학 기업들은 내년에도 고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석유화학업계는 올해 내내 ‘3중고’를 겪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심화한 인플레이션 탓에 원자재 가격 변동이 심해졌고 중국을 중심으로 확대된 석유화학제품 신규 증설 물량이 올해 본격적으로 시장에 공급되면서 공급과잉 현상이 나타났다.
여기에 최대 수요 시장인 중국이 코로나19 영향으로 강력한 봉쇄정책을 추진하면서 수요도 크게 감소했다.
신용평가업계와 증권업계에서는 부진한 석유화학업황이 최소 내년 상반기까지 지속되고 이후에도 가파른 반등이 어렵다는 시선이 우세하다.
김성진 나이스신용평가 연구원은 “2023년 석유화학산업의 실적은 수익성이 크게 하락한 2022년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며 “2023년 하반기 업황 개선의 가능성이 존재하지만 개선 수준은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대신증권은 ‘2023년 산업전망’ 보고서에서 화학산업을 ‘빙하기’로 정의했다. 특히 증설에 따른 공급과잉이 석유화학업황 개선을 막는 핵심 요소라고 봤다.
‘석유화학의 쌀’로 불리는 에틸렌의 글로벌 생산능력은 올해 2억1600만 톤으로 지난해보다 4.9% 증가했는데 이는 2015~2019년 평균 증가율 3.2%를 웃도는 것이다.
또 지난해와 올해 에틸렌 증설 물량은 중국을 중심으로 동북아시아 지역에 집중됐다. 올해 동북아 에틸렌 생산능력은 11.6%나 늘어났다.
주요 석유화학 품목인 폴리에틸렌(PE) 역시 에틸렌과 비슷한 흐름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위정원 대신증권 연구원은 “주요 석유화학제품 스프레드(제품 가격에서 원가를 뺀 수익성 지표)는 올해 8월을 저점으로 4분기 소폭 회복세를 보였지만 이는 원재료비 하락에 따른 것으로 업황 개선은 무관하다”며 “공급과잉 사이클이 시작될 것이다”고 말했다.***
올해 국내 주요 석유화학기업 실적에는 업황 악화가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LG화학은 양극재 등 배터리소재를 앞세운 첨단소재 부문에서 호조를 보였지만 올해 석유화학 부문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LG화학 석유화학 사업부문은 올해 1~3분기 영업이익 1조2404억 원을 거뒀는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3% 줄어든 것이다.
석유화학사업 비중이 가장 높은 롯데케미칼은 업황 악화의 직격탄을 맞았다. 롯데케미칼은 2분기 연결기준기준으로 2020년 1분기 이후 9개 분기 만에 적자로 전환했고 3분기에는 영업손실 폭이 4천억 원 이상으로 확대됐다.
금호석유화학은 1~3분기 연결기준 영업이익 1조335억 원을 냈는데 지난해 1~3분기와 비교해 48% 감소한 것이다. 지난해 역대 최대 실적(연간 영업이익 2조4천억 원)을 거둔데 따른 ‘역기저 효과’ 등을 고려하면 선방했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나쁜 업황에 따른 실적 부담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석유화학업계 한 관계자는 “올해 석유화학기업들의 실적 부진은 역대급 실적을 거둔 지난해와 비교해서 더욱 부각되는 측면이 강하다”며 “다만 신증설 물량 유입은 계속되는 가운데 수요 개선은 더딜 것으로 예상돼 향후 업황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상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