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재계에 따르면 이재용 회장이 지난 한 달 동안 만난 사람들 가운데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인물은 역시 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17일 한국에 방문해 이재용 회장과 면담을 나눴는데 이 자리에서 미래도시 ‘네옴시티’ 건설과 관련한 추가 협력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 윤석열 대통령(왼쪽 두 번째)이 2022년 11월1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마크루터 네덜란드 총리(왼쪽 첫 번째)와 정상회담에 앞서 양국 반도체 기업인들과 차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이날 차담회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오른쪽 두 번쨰), 최태원 SK그룹 회장(오른쪽 첫 번쨰) 등 국내 기업인들이 배석했다. <대통령실>
삼성그룹 계열사인 삼성물산은 이미 현대건설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네옴시티 지하에 고속철도 터널을 뚫는 ‘더 라인’ 공사를 수주했는데 여기에 더해 삼성전자의 5G와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이 회장은 무함마드 왕세자와 꾸준히 교류하며 친분을 쌓아왔는데 이를 통해 추가적인 대형 수주를 따낼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이 회장은 17일 마크 루터 네덜란드 총리, 피터 베닝크 ASML 최고경영자(CEO)도 함께 만났다. 네덜란드 ASML은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생산하는 유일하게 기업이기 때문에 이 회장에게는 이 만남이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 회담보다 더 중요했을 수도 있다.
이 회장은 베닝크 최고경영자와도 개인적인 대화를 나눌 만큼 친밀한 관계인데 올해 6월에도 네덜란드 ASML 본사를 방문해 베닝크 최고경영자에게 EUV 장비를 요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용 회장이 이처럼 다양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출 수 있었던 것은 그룹 후계자라는 배경도 있었지만 이 회장의 특유의 친화력 좋은 성격 덕분인 것으로 평가된다.
이 회장은 상대방을 편안하게 하는 분위기를 이끌어내며 좋은 관계를 잘 맺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의사소통 능력이 중요한 현대사회에서 중요한 경영자질로 꼽힌다.
일각에서는 이재용 회장이 카리스마는 선대회장과 비교해 부족하지만 친밀감을 무기로 한 관계 형성과 이를 통한 사업 수완은 선대회장보다도 낫다는 시선이 나오기도 한다.
이 회장의 이런 능력은 지금처럼 글로벌 경제 위기가 확산되는 시기에 더욱 유용할 수 있다.
북미에서 생산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주는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달리 반도체지원법이 한국기업들을 배제하지 않았던 것도 이 회장을 비롯한 삼성전자 경영진들이 미국 정부, 기업체 관계자들과 끊임없는 의사소통을 통해 지속적으로 조율을 진행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재계에서는 이 회장이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대형 인수합병(M&A)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최근 삼성전자가 반도체 설계자산업체 ARM을 인수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됐던 것도 이 회장과 손정의(마사요시 손)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의 친분관계 영향이 컸다. 이 회장은 삼성 경영에 본격적으로 참여한 뒤 손 회장과 공식 회동을 포함해 여러 차례 만나면서 각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 회장이 스킨십 경영을 통해 대형 수주를 따낸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삼성전자가 올해 초 미국 통신업체 디시네트워크로부터 1조 원 규모의 5G 통신장비 수주 계약을 받아낸 것은 이재용 회장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2021년 8월 한국을 방문한 찰리 에르겐 디시네트워크 회장의 취미가 산악등반인 것을 알고 5시 시간 넘게 북한산을 같이 오르며 개인적인 이야기와 함께 협력방안도 논의했고 결국 수주 약속까지 받아낸 것이다.
이 회장의 최근 행보를 살펴보면 협력사나 중소기업, 사회적 약자와 상생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 회장은 10월27일 회장 취임 다음날인 10월28일 협력사인 광주 ‘디케이’를 깜짝 방문했다. 회장 취임 뒤 첫 방문지가 그룹 계열사가 아닌 협력사라는 것은 이 회장이 추구하는 경영철학이 ‘미래동행’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행보였다.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022년 11월8일 삼성전자로부터 스마트공장 구축 지원을 받은 부산 강서구 소재 중소기업 '동아플레이팅'을 방문해 제조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삼성전자>
디케이는 28년 동안 삼성전자의 협력사인 곳으로 공기 가전제품, 생활가전 부품, 자동차 외장부품 등을 생산하고 있다.
이 회장은 11월8일 스마트공장 구축 지원사업 대상인 부산 도금업체 ‘동아플레이팅’를 방문하기도 했다.
동아플레이팅은 도금업체로 삼성전자 협력사는 아니다. 하지만 삼성전자 ‘스마트공장 구축’ 지원 대상으로 2018년 11월부터 세 차례에 걸쳐 스마트공장 노하우를 전수받았고 이를 통해 생산성이 37% 올라가고 불량률은 77% 줄어들어 현재는 강소기업으로 분류되고 있다.
삼성의 경영철학은 총수가 바뀌면서 조금씩 변화해왔다.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회장은 ‘사업보국(사업을 통해 나라를 이롭게 한다)’을 경영철학으로 내걸었고 이건희 선대회장은 사업보국 차원을 넘어선 ‘인류공헌’을 제시했다.
이건희 선대회장은 2003년 “20년 전에서 10년 전에는 우리가 장사를 했고 10년 전에서 5년까지는 장사를 하면서 사업보국을 했고 5년 전에서 지금을 지나 앞으로 5년 내지 10년은 기업도 하면서 사업보국 차원을 넘어 인류에 공헌을 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현재 삼성전자 반도체는 이건희 선대회장의 꿈을 어느 정도 이루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삼성이 인류발전에 공헌을 했음에도 여전히 삼성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끊이지 않고 있다.
인류공헌이라는 목표를 성취하는 과정에서 여러 탈법적인 일이 있었고 중소 협력사나 비정규직 노동자 등의 사회적 약자들의 희생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삼성에 요구하는 국민적인 기대치가 매우 높아졌고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과거와 같은 성장제일주의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회장이 최근 ‘뉴삼성’의 핵심 키워드로 ‘미래동행’을 제시하고 어느 때보다도 적극적으로 상생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도 이러한 시대의 변화에 발맞춘 행보로 풀이된다.
이 회장은 소외된 이웃을 돕는 시설에 개인적으로도 조용한 기부를 이어오고 있으며 신임 임원들에게는 임원 개인명의로 된 기부카드를 선물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같이 나누고 함께 성장하는 것이 세계 최고를 향한 길이라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미래동행 철학에 기반해 기존 사회적책임(CSR) 프로그램도 전면 재정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