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마이크론이 상무부의 반도체 보조금 심사를 앞두고 투자 축소 계획을 내놓으며 다소 불리한 처지에 놓이고 있다. 이는 삼성전자의 미국 반도체공장 투자 지원금 규모에도 변수가 될 가능성이 있다. 사진은 미국 아이다호주 마이크론 본사. |
[비즈니스포스트] 메모리반도체 전문기업 마이크론이 미국 정부의 반도체 지원법 시행에 따른 보조금 심사를 앞두고 시설투자 및 생산 축소 계획을 내놓으며 불리한 처지에 놓이고 있다.
미국 정부 보조금을 받기 위해 마이크론과 경쟁하고 있는 삼성전자가 텍사스주 반도체공장 건설과 운영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더 많은 지원을 받을 기회를 안게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18일 외국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마이크론이 내년까지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반도체 시설 투자를 예정보다 축소하기로 한 점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이어지고 있다.
마이크론은 내년 메모리반도체 출하량이 당초 예상치를 크게 밑돌 것이라며 반도체 생산량을 약 20% 줄이고 재고 관리에 집중하기 위해 투자 감축 등을 적극 검토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투자전문지 벤징가에 따르면 미즈호증권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경쟁사가 메모리 생산 감축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자 마이크론이 대응에 나선 것이라고 해석했다.
마이크론의 D램과 낸드플래시 시장 점유율이 한국 반도체기업에 뒤처지는 만큼 물량 경쟁이 벌어지면 자연히 실적에 가장 큰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마이크론이 공개적으로 반도체 생산과 투자 축소 계획을 내놓은 시점을 두고 의문의 시선도 나오고 있다.
바이든 정부가 반도체 지원법을 시행하면서 미국 상무부에서 내년 초까지 심사를 거쳐 주요 반도체기업들이 받게 될 보조금과 세제혜택 등 지원 규모를 결정할 계획을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상무부에 따르면 미국에 반도체공장 및 연구센터를 건설하는 기업들에 돌아가는 보조금 규모는 미래 투자 계획과 지속가능성, 지역사회 기여도 등 기준을 두고 평가를 거쳐 결정된다.
삼성전자와 인텔, 대만 TSMC와 마이크론 등 미국에 대규모 반도체공장 투자 계획을 내놓은 기업들이 최대한 많은 보조금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경합을 앞두고 있다.
미국 정부가 반도체기업에 제공하는 금전적 지원 규모는 390억 달러(약 52조 원)에 이른다. 이는 추가로 받게 되는 세금 감면 혜택을 포함하지 않은 금액이다.
자연히 상무부 평가 결과에 따라 지원 규모가 크게 달라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반도체기업들이 미국 경제와 산업에 기여할 것이라는 점을 설득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삼성전자가 텍사스주에 최대 11곳의 추가 반도체공장 건설을 검토 중이라고 밝힌 점과 TSMC가 애리조나주에 추가로 반도체공장 건설을 추진하는 점도 이를 의식한 것으로 분석된다.
마이크론은 미국 뉴욕주에 1천억 달러(약 134조 원)에 이르는 중장기 투자 계획을 내놓으며 주요 반도체기업 가운데 가장 적극적으로 정부 반도체 지원금 확보를 노리고 있다.
그러나 심사를 앞두고 생산 감축 계획을 내놓은 것은 상무부에 부정적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
마이크론이 미래 투자 계획에 확신을 두지 않고 있거나 사업 경쟁력이 약화해 대규모 투자 재원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의미로 읽힐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불리함을 무릅쓰고 마이크론이 공개적으로 투자 축소 계획을 내놓은 데 엇갈린 해석이 나오고 있다.
▲ 삼성전자 텍사스주 오스틴 반도체 파운드리공장 내부. |
마이크론이 이미 바이든 정부의 지원을 확신하고 자신감을 보이며 시장 상황에 맞춰 투자 계획을 유동적으로 조절하고 있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의회를 통과한 반도체 지원법 시행안에 서명하며 마이크론과 인텔 등 미국 반도체기업의 대규모 생산공장 투자를 유치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들과 마찬가지로 미국에 상당한 금액을 들여 반도체 파운드리공장을 신설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TSMC 등 해외 기업에 관련한 내용은 언급되지 않았다.
미국 정부가 반도체 지원법 시행의 근본적 목표를 미국의 반도체 경쟁력 강화에 두고 있는 만큼 반도체 지원금 제공 과정에서 미국 기업에 특혜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전망이 힘을 얻는다.
마이크론이 결국 미국 정부의 지원과 관련해 확신을 두고 있기 때문에 메모리반도체 생산 감축 계획이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만약 미국 정부가 이런 관측대로 마이크론과 인텔 등 자국 기업에 보조금을 몰아준다면 삼성전자는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여 미국 반도체공장 투자 효과를 거두기 어려워질 수 있다.
삼성전자가 미국에서 반도체공장을 운영하며 정부의 대규모 지원을 받지 못한다면 인건비 등 비용 측면에서 상당한 부담을 안게 되기 때문이다.
반면 마이크론이 글로벌 경제 성장 둔화에 따른 심각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어 반도체 지원법 심사를 앞둔 상황에도 투자를 축소하는 일을 피하기 어려웠다는 관측도 나온다.
마이크론은 D램 미세공정과 3D낸드 적층기술 등 메모리반도체 기술 우위에 자신감을 안고 그동안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보다 더 공격적인 투자 기조를 앞세워 왔다.
이 때문에 갑작스런 메모리반도체 업황 악화에 심각한 위기를 느끼고 반도체 지원법 심사에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투자를 줄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고개를 든다.
이런 관측이 사실이라면 삼성전자는 앞으로 상무부 심사 과정에서 마이크론보다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놓여 미국 정부의 보조금 제공 확대를 기대할 수 있다.
결국 마이크론의 과감한 메모리반도체 투자 축소 결정의 배경이 앞으로 삼성전자의 미국 반도체공장 보조금 규모에 상당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는 셈이다.
상무부는 내년 2월 초까지 반도체기업들의 신청서를 받은 뒤 심사를 거쳐 보조금 지급 규모를 결정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보조금 지급은 이르면 내년 봄부터 실행된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