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원식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이 17일 국회에서 열린 예결위 제1차 2023년도예산안등조정소위원회에서 여야 의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여야가 국회에서 '예산 대전'을 앞두고 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윤석열 정부의 첫 예산을 최대한 원안에 가깝게 통과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은 불요불급한 예산을 대폭 줄이는 대신 이른바 민생예산을 대폭 늘리려 한다.
국민의힘과 민주당 모두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상대 당의 협조가 필요하다. 하지만 지난 5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여야는 줄곧 대립의 평행선을 달려왔을 뿐 실질적 타협이 이러진 적이 없다는 점에서 일정 기간 파행이 불가피해 보인다.
게다가 민주당은 검찰의 전방위적 수사에 대해 강경한 대응을 이어가고 있어 '예산안 처리'라는 사실상 마지막 남은 카드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17일 예산안 조정소위원회 회의에 들어간다. 예결위 조정소위는 국회 예산심사의 최종관문이다. 예결위 예산소위는 세부 심의를 거쳐 정부 사업별 예산의 감액과 증액 여부를 결정한다.
그동안 각 상임위 별로 예산 심사를 진행하면서 예산 전쟁 1라운드를 치렀라고 한다면 이제 2라운드가 시작된 셈이다.
민주당은 여야 사이에 논란이 되고 있는 쟁점예산을 깎고 민생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예산안 협의의 주도권을 놓지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이재명 대표는 전날(16일) 예결위 조정소위를 두고 “정부의 비정한 특권 예산을 민주당이 국민의 삶을 지키는 따뜻한 민생예산으로 탈바꿈 시키겠다”며 “금융취약계층과 주거취약계층, 소상공인 자영업자 등 3대 영역에 대해서 긴급 민생회복 프로그램을 예산안에 반영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사실 앞서 펼쳐진 상임위 별 예산전쟁 1라운드는 민주당의 ‘우세승’이라는 평가가 많다.
전날 국토교통위원회는 민주당 소속 의원들 주도로 ‘용산공원 조성 사업’ 예산 303억 원을 전액 삭감하기로 했다. 용산공원 부지로 쓰일 미군 반환 부지 정화 작업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사실상 대통령실 이전과 연관이 있는 사업으로 인식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운영위원회에서도 민주당은 대통령실 이전관리 예산의 일부인 29억 원의 삭감을 의결했으며 기획재정위원회에서도 대통령실 이전에 따른 영빈관 신축예산 409억 원 삭감하려 하고 있다.
이 밖에 문화관광체육위에서
윤석열 정부의 청와대 개방 활용예산을 40억 원 감액했으며 ‘여성가족부 폐지’ 로드맵을 만드는 여성가족부 전략추진단 예산 6400만 원도 전액 삭감했다.
반면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이 중점을 두고 있는 사업은 예산을 대폭 증액했다. 지역사랑 상품권 발행 지원 예산 7050억 원을 복구시켰고 정부가 삭감한 임대주택 예산 6조3840억 원을 증액했다. 또 신재생에너지 예산 1668억 원, 청년내일채움공제사업 관련 예산 302억 원, 장애인 고용관리지원 사업 예산 274억 원, 고용유지지원금 사업 예산 493억 원도 증액했다.
국민의힘은 외교위원회 등 여당 의원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상임위에서 정부 원안대로 예산안을 처리하며 민주당의 예산 수정을 막았다. 외교위에서 민주당이 영빈관 설치 예산(21억7400만원)을 잘라냈지만 국민의힘 소속 윤재옥 위원장이 의결을 유보하면서 외교부 원안이 통과됐다.
국회의 예산안 심사는 상임위 권한이 강해 민주당이 1라운드의 승세가 당분간 유지될 공산이 크다.
상임위 예산안 예비심사 단계에서 감액된 채 예결위로 넘어간 사업을 되살리려면 소관 상임위에서 재의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상임위에서 삭감된 예산을 되살리기가 쉽지 않다.
예결특위 조정소위 위원 15명도 민주당 9명, 국민의힘 6명으로 구성돼 있어 국민의힘의 발언권은 제한적이다.
정치권에서는 예산안에 관한 여야의 시각차가 큰 만큼 예산안 합의의 법정시한인 12월2일을 넘길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일각에서는 ‘준예산’ 편성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여야가 11월30일까지 예산안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 12월1일 정부의 원안대로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다. 본회의에서 다수당인 민주당이 정부의 예산 원안을 부결시키고 12월31일까지도 여야의 예산안 합의가 불발되면 전년도 정부 예산에 준하여 ‘준예산’이 집행된다.
다만 민주당이 강조하고 있는 민생예산 증액을 위해서는 정부여당의 동의가 필요한 만큼 여야가 연말에 극적으로 타협에 성공할 것이라는 시선이 고개를 든다. 헌법 제57조에 따라 국회는 정부가 감액한 예산을 증액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게다가 민주당이
윤석열 정부의 예산안을 계속 가로막으면 국정 발목잡기라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실제 이날 국회 행정안전위는 더불어민주당이 전액 삭감을 주장했던 행정안전부의 경찰국 운영 예산을 1억 원만 삭감해 의결했다. 앞서
이재명표 예산으로 분류되는 지역사랑상품권 발행예산 역시 7050억 원을 증액했으나 이날 2050억 원 감액된 5000억 원으로 수정해 의결했다. 민주당 쪽에서 보면 정부안에서 애초 0원이었나 여야 합의로 5000억 원 확보한 셈이다.
이날 예결위 조정 소위에서 여야 예결위 간사는 양측의 의견을 모두 반영하기 위해 노력할 뜻을 밝혔다.
박정 더불어민주당 예결위 간사는 “필요한 예산은 예산대로 불필요한 예산은 반추 삼아 정부가 이야기한 24조 원 지출 구조조정도 해가면서 필요한 예산이 만들어지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철규 국민의힘 간사도 “불필요한 예산은 걷어내고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예산안이 통과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화답했다.
현재 상황으로 보면 여야가 강경 대치를 이어가면서도 주고받기를 통해 각자 꼭 필요한 예산을 일정 수준 확보해가는 모양새다. 하지만 예산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는 또 다른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검찰이 민주당을 향한 전방위 수사를 펴고 있는 만큼 그 예봉을 무디게 하기 위해 예산안 처리를 카드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명분은 다른 데서 찾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민주당이 마냥 예산안 처리를 미루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경제 상황이 날로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민생 발목잡기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대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