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도영 기자 doyoung@businesspost.co.kr2022-09-23 16:33:01
확대축소
공유하기
[비즈니스포스트] 윤석열 대통령의 영국·미국 순방에서 수습하기 쉽지 않은 ‘외교 참사’가 발생하면서 외교·안보라인에 문책이 뒤따라야한다는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한미 통화 안정 대책, 북한 핵 확장 억제 정책,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대한 우려 등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무능력을 드러낸 외교·안보 컨트롤타워에 과감한 쇄신을 감행해 경각심을 제고하고 재발을 막아야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를 마친 뒤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23일 정치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은 윤 대통령 순방 논란과 관련해 외교안보라인을 대대적으로 쇄신해야 한다며 집중 포화를 쏟아붓고 있다.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23일 브리핑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이번 순방은 총체적 외교무능과 외교참사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며 "국민에게 사과하고 박진 외교부 장관 등 외교라인을 전면 교체하기 바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임오경 더불어민주당 대변인도 같은날 "외국방문을 다녀오면 국정 지지도가 오르던 전임 대통령과 달리 오히려 윤석열 대통령은 지지도가 내려가고 있다"며 "더 늦기 전에 뼈를 깎는 심정으로 전방위적인 인사쇄신과 국정기조 전환을 단행하라"고 촉구했다.
하루 전날인 22일에는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이 외교참사를 주장하며 “김성한 국가안보실장과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을 즉각 경질하고 박진 외교부 장관도 교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윤 대통령의 해외 순방에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참배 불발, 48초 인사에 그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만남, 30분 약식 '대화'로 치러진 한일 정상회담 등 외교적으로 발생하기 어려운 일들이 잇따라 터져나왔다. 사전 조율 과정부터 꼬이면서 외교 실책이 이어져 참모진이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많다.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23일 YTN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에 출연해 “4개월 밖에 되지 않은 대통령이 해외 순방을 두 번 해서 다 ‘똥볼’을 찼다”며 “인적 개편을 해야 기강이 서는데 거기에 대한 책임을 안 물으니까 또 이런 일이 생긴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 전 원장은 “외교라는 것은 사전에 외교부와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등에서 다 조율을 해서 현안을 전하고 정상들이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그것을 발표하는 것”이라며 “그래야 성공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국가안보실이 성과를 내는 데 급급한 나머지 한미·한일정상회담 등을 무리하게 추진하다 ‘굴종 외교’ 논란을 낳고 국격을 실추시켰다는 비판이 거세다.
실세 참모로 꼽히던 김태효 차장을 향한 책임론이 가장 거세게 일고 있는 이유다. 박 전 원장은 "김태효 1차장은 반드시 책임을 물어서 해임을 하라"고 콕 집어 요구하기도 했다.
김 차장은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의 순방 계획을 사전설명하면서 “윤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한미정상회담과 한일정상회담을 하기로 합의해 시간을 조율하고 있다”며 양자회담이 순방 준비과정에서 일찌감치 결정됐다고 발표했다.
대통령실은 특히 2년10개월 만에 열리는 한일정상회담을 두고 “일본 측이 흔쾌히 합의했다”고 말해 기대감을 부풀렸다. 그러나 일본은 해당 발표 직후 이를 부인했고 결국 윤 대통령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를 찾아가 겨우 만나는 모습을 보인 끝에 ‘약식’ 회담이 치러지며 ‘저자세 외교’ 비난의 빌미를 제공했다.
윤 대통령이 미국 의회를 겨냥해 욕설을 하는 장면이 포착돼 논란을 낳은 것도 한미정상회담 호언장담이 낳은 결과로 보는 시각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21일 바이든 대통령이 주최한 ‘글로벌펀드 재정공약회의’를 마치고 회의장을 나서며 박진 장관에게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이 쪽팔려서 어떡하나”고 말하는 장면이 영상에 찍혔다.
이에 대해 바이든 대통령을 만났지만 ‘48초 회담’ 뒤 돌아서는 상황이 되자 아쉬움에 참모들 앞에서 면을 세우기 위해 허세성 발언을 했다는 해석이 존재한다.
김은혜 홍보수석은 이후 해명에서 “(한국) 국회에서 승인 안 해주고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라고 돼있다”며 바이든 대통령이 아닌 우리나라 야당을 욕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논란에 기름만 붓는 결과로 이어졌다.
김희서 정의당 대변인은 22일 논평에서 “대통령의 외교순방 중 공식회의장 안에서 국가 수장의 사적발언이 어디 있나”며 “해외순방 하루하루가 국격 마이너스에 총체적 걱정외교다”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해 박진 장관도 빈손 외교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박 장관은 윤 대통령보다 앞서 미국에 도착해 사전에 한일 외교장관 회담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정상회담의 사전조율 성격이 강한 외교장관 회담 이후에 약식회담 형태로 한일 정상회담이 열리면서 박 장관이 제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한미 정상회담 무산 역시 '미국통' 박 장관의 체면을 구기는 일이다. 지난 문재인 전 대통령 때는 유엔총회를 계기로 한미 정상회담이 빠짐없이 열렸다.
박 장관은 외무부 출신 4선 국회의원 경력을 지녔고 미국 유력 정치인들과 교류가 깊은 베테랑 외교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존재감이 줄고 대통령실과 불협화음이 발생해 외교 실책이 이어지고 있다는 시선도 존재한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2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번 순방과 관련해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 오류와 참사로 대한민국의 국격을 심각하게 훼손한 박진 외교부장관의 무능은 돌이키기 어려운 수준이다"며 "바로 경질하지 않는다면 국회에서 반드시 그 책임을 묻겠다"고 박 장관을 정조준했다.
최근 북한의 핵무력 정책법 제정과 7차 핵실험 임박 관측 속에서 역대 대통령들 가운데 최초로 북한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아 논란이 된 UN 기조연설문과 관련해선 외교·안보 컨트롤타워인 김성한 실장이 뭇매를 맞는다. 김 실장은 19일 사전브리핑에서 기조연설의 핵심 내용은 자유와 연대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실장은 6월 윤 대통령의 첫 외교 행보였던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 때 동행하지 않아 비판을 받기도 했다. 당시 김 실장 대신 김태효 차장이 윤 대통령을 수행하면서 ‘실세 김태효, 허세 김성한’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외교 실책은 국격 문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국익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윤 대통령이 순방을 마치고 돌아오면 외교라인을 경질하고 외교전략을 다시 세워야한다는 목소리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빈손 귀국에 대한 야당의 공세도 예상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순방을 앞둔 14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따른 한국산 전기차 차별 문제와 관련해 “‘펠로시 패싱’ 이 ‘전기차 패싱’을 불렀다”며 외교 실패 문제가 경제 실패로까지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8월 미국 권력 서열 3위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의 방한 당시 공항에 의전 관계자가 아무도 나가지 않는 등 ‘의전 홀대’, ‘외교 미숙’ 논란을 직격한 것이었다.
이 대표는 당시 이번 윤 대통령의 순방 일정에 대해 “기존 실수에서 발생한 한국 전기차 패싱을 꼭 시정하는 성과를 만들어올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임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