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가지 않은 길.’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950년 한국은행 창립 이후 지금껏 누구도 가본 적이 없는 길을 갈 준비를 하고 있다.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 올리는 ‘빅스텝’ 얘기다. 시장에서는 이 총재가 7월에 이어 8월에도 연달아 빅스텝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은 경기침체를 부추길 수 있다. ‘인플레이션 파이터(inflation fighter)’인 한국은행을 이끄는 이 총재의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
10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한국은행은 13일 열리는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이변이 없는 한 사상 처음으로 빅스텝을 단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행의 사상 첫 빅스텝이 기정사실로 여겨지는 것은 누구도 예상 못한 고물가 때문이다.
6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 24년 만에 가장 높은 6%대로 치솟았다.
이같은 물가상승 흐름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따른 원자재 가격 급등과 글로벌 공급망 위축 등으로 7월 이후에도 당분간 진정되기 힘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는 한국은행이 8월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도 빅스텝을 선택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안예하 키움증권 연구원은 “높은 물가를 감안할 때 8월에도 한국은행의 추가 금리인상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기대 인플레이션이 쉽게 약화하지 않는다면 8월 또 다시 0.5%포인트를 인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바라봤다.
임재균 KB증권 연구원도 “한국 소비자물가는 공공요금 상승으로 하반기에 더 높아질 수 있다”며 “이 경우 7월에 이은 8월 빅스텝 가능성을 키우면서 금리 변동성을 재차 높일 것이다”고 내다봤다.
이 총재는 취임 초부터 물가를 중심에 둔 통화정책을 지속해서 강조해왔다.
지난 4월19일 열린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이 총재는 “인기가 없더라도 시그널을 줘서 물가가 더 크게 오르지 않도록 전념하겠다”고 말했다.
6월21일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관련 기자간담회에서도 “가파른 물가상승 추세가 바뀔 때까지 물가 중심으로 통화정책을 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한국은행도 최근 보고서에서 물가 상승 장기화에 대응해 선제적으로 금리인상을 올려 나갈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국은행은 6월 발표한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1970년대 독일의 통화정책을 예로 들며 독일이 석유파동 당시 금리인상 등의 선제적 조치를 통해 물가 불안을 조기에 차단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7월과 8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사이에 열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준)의 금리인상 결정도 한국은행의 8월 빅스텝 가능성을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
연준이 7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6월에 이어 다시 한 번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 0.75% 인상)을 단행한다면 이 총재는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격차 유지를 위해서도 8월 금통위에서 금리인상 폭을 높이는 선택을 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 기준금리는 6월 0.75%포인트 오르면서 기존 0.75~1.00%에서 1.50~1.75% 수준으로 높아졌고 한국과 기준금리 격차도 0.00∼0.25%포인트로 줄었다.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역전이 일어나고 격차가 벌어지면 국내에 들어온 외국인투자자의 자금이 대거 빠져나갈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다만 빅스텝을 연달아 단행할 때 경기침체 우려가 커지고 이자부담 증가로 여론이 악화할 수 있다는 점은 이 총재가 연달아 빅스텝을 선택할 가능성을 낮추는 요인으로 꼽힌다.
강민주 ING은행 서울지점 수석이코노미스트는 4일 보고서에서 물가 상승세가 한국은행의 빅스텝 가능성을 높였지만 동시에 금리상승에 따른 경제둔화 우려도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금리 인상은 소비 회복을 억제할 수 있다”며 “이에 한국은행이 7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만 인상할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다”고 예상했다. 조승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