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텔의 독일 반도체공장 예상 조감도. <인텔> |
[비즈니스포스트] 유럽연합(EU)이 반도체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대형 반도체기업들의 유럽 생산공장을 적극적으로 유치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지만 아직까지 실질적 성과는 크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대만 TSMC가 유럽 반도체공장 신설 여부를 신중하게 저울질하는 사이 삼성전자가 과감한 투자 결정으로 자동차용 반도체 등 분야에서 성장 기회를 노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블룸버그는 6일 “유럽의 반도체 자급 목표에 TSMC의 부재는 ‘조각이 빠진 퍼즐’과 같다”며 “유럽연합의 공격적 목표에 회의적 시각이 퍼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유럽연합은 현재 9% 수준에 불과한 반도체 자급률을 2030년까지 20%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내놓고 지난해부터 적극적으로 해외 대형 반도체기업들의 공장 투자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세계 반도체시장 성장 전망을 고려할 때 반도체 자급률 20%를 달성하려면 여러 곳의 대형 반도체기업이 유럽 국가에 신규 생산공장을 건설하도록 유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텔이 올해 초 독일에 대형 파운드리공장 및 연구개발센터 신설 계획을, 세계 5위 파운드리업체인 글로벌파운드리가 프랑스 생산공장 투자 계획을 내놓으면서 이런 목표가 어느 정도 이뤄졌다.
그러나 블룸버그는 유럽연합이 TSMC의 투자 약속을 받아내지 못 한 점이 반도체 자급률 목표 달성에 큰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바라봤다.
TSMC가 세계 반도체 파운드리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고려하면 가장 중요한 대상으로 꼽히는데 유럽 공장 투자계획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TSMC 임원은 6월 네덜란드에서 열린 반도체 심포지엄을 통해 유럽 반도체공장 건설과 관련한 구체적 계획을 세우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TSMC의 투자 결정은 현재 고객사 수요보다 미래의 시장 전망에 따라 이뤄진다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TSMC가 지난해 7월부터 1년 가까이 독일 정부와 반도체공장 투자를 협의해 왔음에도 이런 발언을 내놓은 점을 볼 때 공장 건설 계획이 완전히 무산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TSMC가 유럽 투자 계획에 소극적 태도로 돌아선 점을 두고 재무상황 등 현실적 문제를 고려한 데 따른 결정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미 미국과 대만, 중국, 일본에서 동시에 대규모 시설투자를 벌이고 있는 TSMC가 유럽 반도체공장 투자까지 속도를 내기에는 자금 여력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최소한 내년까지 전 세계 경기불황과 수요 부진으로 반도체업황이 악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점도 TSMC가 과감하게 투자에 나서기 어려운 배경으로 꼽힌다.
그러나 유럽연합은 반도체 자급체제 구축을 미국 등 다른 지역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TSMC와 협상을 지속하려 하거나 대안을 활발히 찾아나설 공산이 크다.
삼성전자가 이런 과정에서 유럽 반도체공장 투자에 러브콜을 받을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힌다.
▲ 삼성전자 반도체 파운드리공장 내부. <삼성전자> |
삼성전자는 TSMC에 이은 반도체 파운드리 2위 기업으로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대규모 반도체공장 투자 및 운영 경험이나 고객사와 관계 측면에서 모두 장점을 갖추고 있다.
현재 파운드리공장 투자도 한국과 미국에서만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TSMC나 인텔을 뒤따라 생산 거점을 다른 국가로 더 다변화하려 할 가능성도 크다.
삼성전자가 최근 세계 최초로 3나노 반도체 양산에 성공하며 파운드리시장에서 확실한 기술 선두를 차지한 점도 추가 시설투자에 자신감을 찾을 만한 배경으로 분석된다.
시스템반도체 파운드리뿐 아니라 유럽 현지 고객사들의 수요를 고려해 자동차용 메모리반도체 등을 생산하는 공장 투자를 추진하게 될 수도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유럽에서 운영되는 반도체공장의 고객사는 주로 현지 자동차기업들이 큰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동차용 반도체는 삼성전자의 신성장사업인 전장부품 및 전기차 배터리사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고객사 확보 측면에서 다른 사업부와 시너지를 추진할 수 있는 여지도 크다.
TSMC가 유럽 반도체공장 투자를 결정하지 못하는 사이 삼성전자가 빈자리를 차지하며 반도체 고객사 기반을 확장하고 시장 점유율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할 수 있는 셈이다.
유럽연합은 현지 반도체공장을 건설하는 기업들에 대규모 투자 지원금도 제공하고 있다. 인텔은 독일 반도체공장 건설 과정에서 약 9조 원에 이르는 지원을 약속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가 과감하게 유럽 반도체공장 투자에 속도를 낸다면 유럽연합 차원의 지원을 통해 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블룸버그는 “유럽연합의 반도체 자급 목표를 자극했던 글로벌 공급부족 사태가 완화할 조심이 나타나고 있다”며 “반도체 수요 부진 전망도 큰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고 바라봤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