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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45년후' '계춘할망', 노년을 바라보는 여러 시선

김수정 기자 hallow21@businesspost.co.kr 2016-05-27 17:3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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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45년후' '계춘할망', 노년을 바라보는 여러 시선  
▲ 영화 '45년 후'의 한 장면.

늙어간다는 것은 참 쓸쓸하고 서글픈 일이다.

그러나 어쩌랴. 어떤 식으로 의미부여하려 한들, 어떻게든 피해보려 한들 다 부질없는 일이다. 누구나 언젠가는 맞닥뜨려야 하는 현실일 테니 말이다.

최근 극장가에서 노년을 다룬 여러 작품들이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당장은 나의 현실이 아닐지라도 다양한 노년의 얼굴들 속에서 어쩌면 수십년 후의 내 얼굴을 미리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

‘45년 후’는 노부부의 평온한 일상에 뜻밖의 사건이 터지면서 벌어지는 갈등을 다룬 영국영화다. 45주년 결혼기념일을 앞두고 한통의 편지가 날아든다. 남편의 첫사랑이었던 여인이 알프스의 산속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는 내용이다.

45년을 함께 살아왔지만 남편에게 첫사랑의 연인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던 아내 케이트는 충격에 빠진다. 배신, 질투, 욕망, 환멸 같은 사랑에 수반되는 온갖 심리적 갈등을 겪는 것이다.

줄거리만으론 공감하기 어려울 수 있다. 노인에 대한 오해와 편견 때문이다. 다 늙어서, 그것도 45년이나 함께 살아온, 역시 다 늙어빠진 남편에게 무슨 애정이 남아 있어 사랑타령이냐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노년의 사랑은 청춘의 사랑보다 어찌보면 더 혹독한 싸움을 치러야 한다.

늙어가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반추, 지나간 세월을 돌이킬 수 없음에 대한 절망, 다 안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에 대한 배신감, 45년의 시간으로도 극복할 수 없는 타자관계에 대한 허무, 심지어 젊음을 간직한 채 죽은 남편의 연인과도 싸워야 하니 말이다.

영국 출신 감독 앤드류 헤이의 섬세한 연출이 돋보이며 노부부 역할을 맡은 샬롯 램플링, 톰 커트니의 연기도 출중하다. 두 사람은 이 영화로 지난해 베를린영화제에서 남녀주연상을 나란히 독차지했다.

개봉 3주차에 접어들면서 입소문을 타고 아직까지 높은 좌석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27일 기준 다양성영화부문 주말박스오피스 4위에 이름을 올리며 누적관객 3만 명을 넘어섰고 평점도 높다.

한국영화 ‘계춘할망’은 가족관계 속에서 ‘할머니’의 모습을 그린다. 

  영화 '45년후' '계춘할망', 노년을 바라보는 여러 시선  
▲ 영화 '계춘할망' 포스터.
관록의 연기파 배우 윤여정씨가 맡은 계춘은 제주도에서 평생을 물질로 살아온 해녀 할머니다.
 
6살 손녀 혜지를 시장 한복판에서 잃어버린 뒤 10년 넘게 찾아다니며 손녀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린다. 마침내 12년 후 실종됐던 손녀가 돌아오지만 두 사람 사이는 서먹하기만 하다.

영화는 두 사람이 서로의 마음을 열기까지 과정을 자잘한 에피소드와 따뜻한 시선으로 담았다.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광과 감칠맛 나는 제주도 방언은 덤이다.

다소 보편적이지 않은 가족관계 속에 펼쳐지는 이야기지만 다분히 한국적인 정서가 깔려있다. 손주새끼 밥숟가락에 반찬을 얹어주는 한국적 할머니의 전형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계춘할망은 손녀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네 편 해줄테니 너는 네 원대로 살라.” 늙어서도 모성을 잃지 않는 희생적 여성성이 오롯이 드러난다.

너무도 익숙한 한국 할머니의 모습이지만, 그래서 더욱 ‘우리 할머니’를 떠올리게 만든다. 극적 장치가 다소 밋밋하고 신파스러운 몇몇 장면만 견뎌낼 수 있다면 따뜻한 감동을 맛볼 수 있는 영화다. 대작들과 경쟁 속에 관객 30만 명을 돌파하며 선전하고 있다. 

45년 후와 계춘할망은 노년기 여성의 서로 다른 얼굴을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을 듯하다. 노년에 이른 남성의 얼굴이 궁금하다면? 새 영화 ‘미스터 홈즈’와 ‘오베라는 남자’를 추천한다.

미스터 홈즈는 셜록 홈즈가 93살이 됐다는 독특한 설정의 영화다. 오베라는 남자는 스웨덴의 베스트셀러를 영화로 만든 것인데 깐깐한 고집불통 영감 오베가 주인공이다.

노인이 되면 희노애락에 초연하고 지혜로워지며 이성애에 무감하고 타인에게 희생적일 것이란 오해와 편견을 깡그리 부숴줄 영화들이다. 그러니 지하철에서 경로석 자리다툼을 하는 어르신들을 만나도 너그러이 이해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노년에도 여전히 타인의 사랑에 갈망하고 때로 상처받으며 이기적인 것이 인간이란 존재다. 언젠가 '나'의 모습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죽어야 철이 든다’, 아니 ‘철이 들면 죽는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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