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가 러시아, 우크라이나와 어떤 관계를 어느 정도로 맺고 있는가? 군사적 위기와 긴장의 파급력은 어떻게 될까?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에 따르면 러시아는 우리나라 수출의 약 1.6%, 수입의 2.8% 를 차지한다. 지난해 기준으로 우리와 10번째로 교역을 많이 한 나라다.
우크라이나는 우리와 68번째로 교역을 많이 하는 나라다. 교역 규모가 연간 약 9억 달러 수준으로 큰 편은 아니다.
교역 규모만 놓고 보면 우크라이나 사태가 미칠 영향은 무시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치명적이라 보기는 어렵다. 경제 전문가들이나 증권업계도 교역이나 금융 분야에서 우크라이나 사태가 미칠 직접적 영향력은 낮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교역량의 절대 액수만으로 경제적 파급력을 전부 설명할 수는 없다. 러시아나 우크라이나가 우리나라와 글로벌 공급망에 미치는 영향력과 한국 경제의 특수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러시아는 원유와 천연가스 등의 매장량이 높은 에너지 부국이다. 한국은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가 꽤 높다. 나프타는 25%, 원유는 24%, 유연탄은 13%, 천연가스는 10% 의존하고 있다.
러시아를 향한 경제제재로 달러결제가 금지되면 우리도 러시아로부터 에너지를 공급받기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러시아가 세계 에너지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사태 악화는 유가 등 에너지 원가를 급격히 높일 수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은 원유 의존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E) 국가 중 가장 높은 곳이다. 국제유가가 100달러를 유지하면 소비자물가는 1.1%포인트 상승하게 되고 경제성장률은 0.3%포인트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경상수지는 305억 달러 악화될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경제는 생산과 수출 측면에서는 반도체 의존도가 높다는 특징도 있다. 지난해 전체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한 비중은 20%에 육박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그런데 우크라이나는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희귀 가스 매장량이 높은 곳이다. 각 희귀 가스당 우리나라의 우크라이나 의존도를 살펴보면 네온 23%, 트립톤 30.7%, 크세논 17.8% 등입니다. 러시아 의존도도 네온 5%, 크립톤 17%, 크세논 31%로 높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악화되고 장기화됐을 때 한국경제의 떠받치는 반도체산업에서 생산 차질과 원가 상승 등의 악영향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이밖에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광물자원 부국이다. 니켈과 알루미늄 등 배터리 핵심 원료의 수급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영향은 산업용 원자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농업대국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는 유럽의 빵공장이라 불릴 만큼 밀과 옥수수 등 곡물 생산량이 많다. 이 때문에 이번 사태가 글로벌 식량난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산업과 일상생활에 필수적 품목들의 공급난이 벌어진다면 지난해부터 이어졌던 인플레이션을 더 가중시킬 공산이 크다. 경기는 안 좋은데 물가는 올라 기업과 가계 모두 이중고를 겪게 될 가능성도 커 보인다.
국내 기업들의 현지 사업은 당연히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현대차와 기아차, 삼성전자, LG전자, 포스코, 아모레퍼시픽, 오리온 등 한국기업 40여 곳이 러시아에 진출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 가운데 현대차는 2020년 12월 GM의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을 올해부터 본격 가동해 주력모델 생산에 나서려고 했는데 이번 사태 탓에 일을 시작하려는 순간 사업에 차질을 빚게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자동차산업협회는 국지전 발생 때 현대차의 내수판매 규모가 10% 줄고 전면전으로 확대되면 29% 감소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현상황에서 러시아를 향한 강도 높은 경제제재가 불가피해 보입니다. 앞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가 침공한다면 전례 없는 제재를 가하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국제 금융 통신망을 차단하는 초강력 제재가 이미 가해지고 있다.
현재 국제 금융거래는 국제은행간통신협회, 즉 스위프트 망을 이용해 이뤄진다. 금융사들은 스위프트 코드를 받아 다른 금융사와 국제 거래를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퇴출되면 외화 거래 자체가 불가능해져 국제 금융거래를 못하게 되는 처지에 놓인다.
앞서 이란과 북한이 스위프트 망에서 퇴출돼 금융거래에 제한을 받고 있다.
이밖에 반도체 등 산업에 필요한 전략 물자들을 통제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미국이 동맹국들과 얼마나 공조체제를 잘 유지하는지도 경제제재의 효과와 직결되는 문제다. 동맹국들과 함께 러시아를 포위하며 경제적 압박을 가해 더 아프게 해야 제재가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사태가 장기화될수록 러시아 경제제재에 대한 미국과 유럽의 입장 차이가 표면화될 것으로 보기도 한다. 유럽은 천연가스를 상당 부분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의 맹주인 독일의 러시아 의존도는 49%, 이탈리아는 46%다. 심지어 북마케도니아는 100%, 핀란드도 94%나 의존하고 있다. 러시아가 천연가스 공급을 통제한다면 피해는 미국이 아닌 유럽 몫이다.
이런 갈등 상황이 미국과 러시아 모두에게 그리 나쁘진 않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 사태의 장기화 전망도 나온다.
다음 시간에는 상황들을 더욱 면밀하게 알기 위해 필요한 우크라이나의 지정학적 가치와 이번 사태의 근본적 원인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시간을 마련해 본다. [채널Who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