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재연 대법관이 2월23일 오후 2시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본인을 둘러싼 대장동 녹취록 속 '그 분' 의혹과 관련해 이야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
조재연 대법관이 본인을 둘러싼 대장동 녹취록 속 '그 분'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현직 대법관이 기자회견에 직접 나선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대통령선거 후보들이 날선 공방을 주고받을 만큼 대선 국면을 좌지우지하는 사안에 얽혀있어 더욱 주목을 받는다.
조 대법관은 23일 오후 2시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장동 의혹과 관련된 언론보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온 정치인 발언 인쇄물 등을 들어 보이며 본인의 결백함을 주장했다.
그는 '정영학 녹취록에 등장하는 그 분은 현직 대법관이었다'는 제목의 기사 인쇄물을 보여주며 "전혀 사실무근"이라며 "정치권에서 논쟁이 되는 대장동 의혹 사건에 관해 선거를 목전에 두고 왜 갑자기 이런 의혹 기사가 보도됐나 하는 의문을 가졌다"고 말했다.
대선을 앞둔 시기인 만큼 잠자코 있으려 했으나 관련 의혹이 가라앉지 않아 소상히 밝히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고 직접 기자회견에 나선 이유를 설명했다.
조 대법관은 기자회견에서 본인과 관련된 의혹들을 차근차근 반박했다.
우선 대장동 사건의 핵심 인물인 김만배씨를 포함한 대장동 의혹과 관련된 인물들을 알지 못한다고 했다.
조 대법관은 "저는 김만배씨와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단 한 번도 만난 일이 없고 일면식도, 통화한 적도 없다"며 "김만배씨뿐만 아니라 대장동 사건에 관련된 그 누구와도 일면식, 일 통화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김씨와 성균관대 동문이지만 그게 의심 사유가 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김씨가 본인 소유의 아파트에서 조 대법관의 딸을 거주하게 했다는 의혹도 강하게 부인했다.
첫째 딸과 둘째 딸은 2016년, 2021년에 각각 분가해 서울과 경기 용인에 살고 있고 막내 딸은 본인과 함께 거주하고 있다고 했다.
조 대법관은 사실관계를 딸에게 확인해 봤느냐는 질문을 받고 "당연히 제가 모르는 어떤 사실이 있을까하고 저희 딸 셋에게 혹시 판교 타운하우스에 대해 알거나 무슨 얘기를 들었거나 그 근처에 가본 일이 있냐고 물었는데 전혀 그런 사실이 없다고 했다"고 대답했다.
대장동 사건이 검찰에 접수된 뒤 본인은 단 한 번의 연락, 문의조사 요청도 받은 적이 없다며 필요하다면 즉시 불러달라고 했다. 주민등록등본 등 필요한 자료는 요청하는 즉시 어느 기관에나 공개하겠다며 결백함을 재차 강조했다.
현직 대법관이 직접 나서는 기자회견이 이례적인데
김명수 대법원장 등 다른 대법관과 합의된 것이냐는 질문에는 본인의 단독결정이라고 선을 긋기도 했다.
21일 열린 대선 후보 TV토론 방송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선거 후보가 "화천대유 관련해서 지금 '그 분'이 조재연 대법관이라는 게 확인이 됐다"고 발언한 것을 놓고 유례가 없는 사상 초유의 일이라며 불편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조 대법관은 "현재 대선 시국에서, 대장동 사건과 관련해 여야 간에 공방이 많아 (자신의 실명을 거론한) 대선 후보자의 발언에 대해 제 의견을 말하진 않겠다"면서도 "타인의 명예를 중대하게 훼손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엄정하게 법의 심판을 받는 게 정의의 원칙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아직 법적 조치를 취할지는 검토하고 있는 단계라고 했다.
조 대법관이 이번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의혹은 2021년 처음 제기됐다. 지난해 10월 조 대법관이 대장동 사건에 연루됐다는 익명의 제보가 등장했으나 금세 사그라드는 듯 보였다.
하지만 올해 2월18일 한국일보가 검찰에 제출된 대장동 녹취록(정영학 회계사의 녹취록)을 공개하며 의혹이 다시 부상했다. 녹취록이 작성됐던 2021년 2월 당시 법원행정처장이었던 조 대법관이 '그 분'으로 지목된 것이다.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김씨는 정영학 회계사에게 "저분은 재판에서 처장을 했었고 처장이 재판부에 넣는 게 없다. 그분이 다 해서 내가 원래 50억을 만들어서 빌라를 사드리겠다"며 "아무도 모르지. 그래서 그분 따님이 살아. 계속 그렇게 되는 거지"라고 말했다.
이미 이른바 '50억 클럽' 관련자로 권순일 전 대법관이 수사를 받고 있는 상황이라 조 대법관을 향한 의심의 눈초리도 짙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이 후보가 TV토론에서 실명을 언급하며 논란이 커졌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를 비롯해 국민의힘이 이 후보가 대장동 '그 분'으로 의심된다며 공격한 것을 반박하는 도중에 나왔다.
이재명 후보는 윤 후보를 향해 "대장동 그분이 조재연 대법관이라고 확인돼 보도가 나오고 있다"며 "국민을 속인 것을 사과할 생각이 없느냐"고 따져 물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2일 국회 최고위원회의에서 의혹과 관련해 "법원행정처와 조재연 대법관은 국민 앞에 공식적 입장을 명백히 밝혀주길 바란다"고 말하기도 했다.
조 대법관은 강원도 동해 출신으로 덕수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은행에서 일했다. 은행에서 일하며 학업을 병행해 한국방송통신대 경영학과와 성균관대학교 법률학과를 차례로 졸업했다.
1980년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판사로 일하며 서울민사·형사지방법원,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 서울지방법원 동부지원 등을 거쳤다. 1993년 서울가정법원 근무를 끝으로 사직한 뒤 법무법인 한맥, 법무법인 대륙아주 등에서 변호사로 활동했다.
공정거래위원회 약관심사자문위원,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 경찰청 수사정책자문위원, 방송통신위원회 시청자권익보호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하다 2017년 7월 양승태 대법원장의 임명 제청을 받아 대법관에 올랐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서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