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새로운 삼성’을 향한 절실함을 사장단 인사로 내보였다.
7일 재계에서는 삼성전자가 기존 대표이사 3명을 모두 교체한 것을 두고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의 변화를 위한 승부수를 던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전자는 이날
경계현 삼성전기 대표이사 사장이 DS부문 대표이사 사장에,
한종희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장 사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해 IM(IT&모바일)부문과 CE(소비자가전)부문을 합친 CE(소비자가전)부문 대표이사에 오르는 사장단 인사를 실시했다.
애초 삼성전자가 기존
김기남 DS부문 대표이사 부회장,
고동진 IM부문 대표이사 사장,
김현석 CE부문 대표이사 사장의 3인 대표이사체제를 유지하면서 사업부장 이하 임원들을 교체하는 ‘안정 속 쇄신’의 기조로 내년을 준비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이런 예상과 달리 조직개편과 함께 대표이사를 모두 바꾼 것에 대해 재계에서는
이재용 부회장의 위기의식이 작용했다는 시선이 많다.
이 부회장은 앞서 11월24일 미국 출장길에서 돌아와 기자들에게 “현장의 처절한 목소리들과 시장의 냉혹한 현실을 직접 듣고 보게 되니 마음이 무거웠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실적에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삼성전자는 올해 연결기준 매출 277조7천억 원, 영업이익 52조8천억 원을 거둬 지난해보다 매출은 17.3%, 영업이익은 46.7%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실적과 별개로 삼성전자는 사업별 전략이나 계획이 모두 변화를 요구하는 위기상황을 마주하고 있다.
DS부문의 반도체사업에서는 2030년 글로벌 시스템반도체 1위 회사가 되겠다는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이 흔들리고 있다.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은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의 미래를 걸었다고도 볼 수 있는 중대 목표다.
비전 달성의 핵심 사업인 파운드리(시스템반도체 위탁생산)사업은 세계 1위인 대만 TSMC와 격차를 쉽사리 좁히지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170억 달러(20조 원가량)를 투자해 파운드리 신공장을 짓는 투자를 확정 발표하는 등 TSMC를 따라잡기 위한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그러나 반도체업계에서는 TSMC가 삼성전자보다 설비투자에 더 적극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TSMC 역시 미국 애리조나에 파운드리공장을 짓는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본 파운드리공장 투자를 확정했고 동시에 유럽 투자계획도 추진한다.
심지어 인텔도 올해 들어 파운드리시장 재진입을 선언하고 미국과 유럽에서 대규모 투자를 준비하고 있다.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은 ‘샌드위치’ 형세에 놓이게 됐다.
삼성전자는 세트부문의 주요 사업인 스마트폰과 TV 역시 기존과는 다른 시장 대응전략을 요구받고 있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스마트폰시장에서 판매량 1위를 지키고는 있으나 2위 애플은 삼성전자와의 격차를 조금씩 좁히고 있다.
심지어 삼성전자는 앞으로 애플뿐만 아니라 중국의 신흥 스마트폰 3대 제조사인 ‘OVX(오포, 비보, 샤오미)’의 사업전략에도 대응해야 한다. OVX는 모두 기존 중국산 스마트폰의 ‘중저가 전문’ 꼬리표를 떼고 프리미엄 5G스마트폰시장을 지속해서 두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내년 퀀텀닷올레드(QD-OLED)TV를 내놓고 프리미엄 TV 라인업을 재편할 준비도 하고 있다.
퀀텀닷올레드TV는
이재용 부회장이 글로벌 TV시장의 변화 속에서 삼성전자가 시장 리더십을 지켜나가기 위해 점찍은 미래 먹거리로 실패해서는 안 될 사업이다.
그런 점에서 삼성전자의 대표이사 교체에는 단순한 세대교체를 넘어 눈앞의 위기를 넘어서야 한다는 이 부회장의 절실함이 담겨있는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기와 삼성SDI 등 대표이사가 바뀐 다른 삼성 계열사들도 변화가 필요하기는 마찬가지다.
삼성전기는 주력사업인 적층세라믹커패시터(MLCC)에서 높은 기술력이 필요한 전장용 제품의 시장 점유율을 확대해야 한다. 그만큼 대표이사의 기술적 리더십이 중요해진다고 볼 수 있다.
삼성SDI는 미국에서 대규모 투자를 통해 현지 생산설비 구축을 추진해야 하는 만큼 앞으로 세심한 재무관리가 요구된다.
장덕현 신임 삼성전기 대표이사 사장은 삼성전자 시스템반도체사업에서 기술을 중시하는 면모를 보여 왔고
최윤호 신임 삼성SDI 대표이사 사장은 삼성전자 최고재무책임자(CFO)로서 재무능력을 입증했다.
두 사람 해당 계열사에 필요한 역량을 갖춘 경영자라고 볼 수 있는 셈이다.
애초 재계에서는 삼성전자를 시작으로 삼성 전자계열사들이 12월 첫 주에 사장단 인사를 실시한 뒤 계열사별로 임원인사 밎 조직개편을 통해 경영진을 확정하고 내년 사업계획을 일찌감치 준비할 것으로 봐 왔다.
인사가 늦어진 것은
이재용 부회장이 새로운 삼성의 기조를 앞세워 지각변동 수준의 인사를 요구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이에 앞서 10월 이 부회장은
이건희 전 삼성전자 회장의 1주기를 맞아 “고인은 한계에 굴하지 않는 도전으로 오늘의 삼성을 일궈 냈다”며 “이제는 겸허한 마음으로 새로운 삼성을 만들기 위해 우리 모두 함께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번 인사를 통해 불확실한 경영환경을 극복하는 것은 물론이고 미래준비에 집중해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초일류 100년 기업으로 새롭게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