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경제에 진심인 한 남자가 있다. 수소차를 운전하며 출퇴근을 하고 스스로 수소차 홍보모델을 자처한다.
문재인 대통령이다.
문 대통령은 11월11일 APEC CEO서밋 ‘에너지의 미래’ 세션 기조연설에서 ‘수소경제 생태계 구축을 위한 역내 협력’을 거듭 강조했다. 문재인정부의 에너지전환정책의 핵심은 수소경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행히 많은 전문가가 수소경제를 희망적으로 보고 있다. 맥킨지는 2050년 수소시장 규모를 2조5천억 달러로 추정했다. 한국 돈으로 3천조 원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수소경제를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화학자인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는 수소를 안전한 청정연료로 보기 어렵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생산 과정에서 환경오염, 비효율 요인이 많고 활용 과정에서도 여러 난점을 극복하기 어렵다고 본다.
이 교수는 “수소 열기는 미국의 저술가 제레미 리프킨이 2002년에 내놓은 어설픈 수소경제에서 시작됐다”고 비판한다.
수소경제는 정말 돈이 될까?
◆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수소경제
수소의 경제성을 따져 들어가다 보면 회의감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수소의 생산-저장-운반-활용 단계에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사례가 많다.
한무경 국민의힘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수소의 액화·운송비용 측면에서 기존 액화천연가스(LNG)를 수입하는 것보다 비효율적이라고 지적했다. 정부의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따라 수소를 수입하면 액화·운송·저장에만 자그마치 66조 원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왜 이렇게 돈이 많이 들까? 수소가 다루기 까다로운 물질이기 때문이다.
수소는 상온에서 기체로 존재한다. 그래서 압축해서 특수용기에 저장해야 한다.
고압력 기체 수소를 저장해 운반하려면 그에 걸맞은 내구성과 수명을 지닌 소재를 이용해야 하고 그만큼 비용이 많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대용량의 수소를 선박 등으로 장거리로 운반할 때는 그보다 일이 더 까다로워진다. 수소의 부피를 훨씬 더 줄여야 하니까 액체 형태로 만들어 옮겨야 한다.
수소는 섭씨 영하 253도에서 액화된다. 천연가스의 액화 온도는 영하 160.5도다. 수소는 천연가스보다 100도가량 더 낮은 온도를 유지해야 하므로 저장하고 운반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 더 큰 비용이 들어간다.
그러면 수소 생산은 어떨까?
수소의 경제성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수소가 태양에너지나 풍력보다 좋다는 점을 논거로 든다. 태양에너지나 풍력은 날씨와 시간에 따른 전력 수급이 불안정한데 수소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설치에 필요한 면적이 태양광은 1만㎡, 풍력은 2만㎡인 데 반해 수소는 250㎡에 그친다.
그런데 태양에너지나 풍력은 자연에서 발생한 1차 에너지원이지만 수소는 1차 에너지원에서 모종의 과정을 거쳐 생산하는 2차 에너지이다. 그린수소, 그러니까 탄소배출이 없는 수소를 생산하려면 결국 태양에너지나 풍력을 사용해야 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그래서 태양에너지나 풍력과 비교해 수소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현재 그린수소의 생산단가는 화석연료를 활용해 수소를 추출하는 부생수소나 개질수소와 비교해도 적게는 2배, 많게는 5배 비싼 수준이다. 현재로서는 경제성이 없다고 말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다.
수소를 활용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가장 대표적 수소 활용처는 수소차다. 현재로서는 수소차의 에너지효율이 전기차에 못 미쳐 경제성도 낮다는 평가가 많다. 아주 단순하게 비교해도 대표적 수소차인 현대차 넥쏘는 보조금 혜택을 제외하면 7천만 원대이고 최근 출시된 현대차의 아이오닉5는 5천만 원대다. 연간 2만 Km을 기준으로 했을 때 연료비도 180만 원과 30만 원으로 비교가 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몇 가지 사례만 들어봤지만 이 밖에도 수소경제가 궤도에 오르기 위해서는 경제성 면에서 극복할 게 많다. 회의론 내지는 비관론이 나오는 게 어쩌면 무리는 아니다.
◆ 그래도 늘어나는 수소 투자 기업들
그런데도 왜 수소경제를 얘기하는 것일까?
문재인 대통령은 약 3년 전 2019년 1월에 이렇게 말했다.
“수소경제가 태동하기 시작한 지금 세계시장 선점이 중요하다. 벌써 많은 나라가 선두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수소경제는 국가 에너지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면서 신산업과 일자리 등 새 성장동력을 마련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당장 성과가 가시화하지 않더라도 미래를 내다보고 기회를 선점하고자 하는 의지가 엿보인다.
수소경제는 데이터경제와 인공지능과 함께 문재인 정부 혁신성장 3대 전략투자분야 가운데 하나다. 말뿐이 아니라 실제로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뜻이다. 지금 바로 투자하지 않으면 글로벌 경쟁에서 낙오되거나 도태될 수 있는 분야를 선정해 3대 전략투자 대상으로 삼았다고 한다.
지금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수소경제를 선점할 수도, 수소경제 경쟁 대열에서 낙오될 수도 있는 것인 만큼 어느 분야보다 과감하게 정책 드라이브를 걸었다는 해석도 나온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이렇게 말한다.
“현대차그룹이 수소에 투자하는 것은 수익을 창출한다는 생각보다는 가능한 기술적 수단들을 모두 활용해 미래를 지키려는 차원이다.”
이런 말도 했다.
“수소는 사업 난도가 높고 단기간 내 수익으로 이어지지 않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지구적 기후변화 해법을 찾는 것은 우리 세대의 의무다.”
지금 단계에서 경제성을 확보할 방법은 사실상 없다는 의미로 해석할만한 말이다.
그런데 정 회장이 국제기구나 NGO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국내 2위 대기업집단의 수장이란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요즘 ESG경영이 대세라고는 하지만 결국 돈이 되는 일을 하는 게 기업인의 생리다.
심지어 석유기업에서도 수소에 관심을 품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기업 아람코의 아흐마드 알-코웨이터 최고기술책임자(CTO)는 6월 인터뷰에서 “수소는 이제 현실”이라며 “수소기술이 성숙해져 상업적 이용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게 수소시장의 변곡점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이런 배경에는 세계 에너지산업의 주도권이 ‘친환경’ 쪽으로 옮겨가고 있는 현실이 있다.
RE100(Renewable Energy 100) 캠페인이란 게 있다. 2021년 1월 기준 글로벌기업 285개가 여기 참여했다. 2050년까지 탄소에너지 사용을 제로로 하고, 필요한 전력의 100%를 태양광이나 풍력 등 친환경에너지로 바꾸겠다는 약속이다.
예컨대 참여 기업 가운데 하나인 애플은 2020년 7월 자체 제품뿐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 전체에서 탄소배출을 제로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당장 애플에 메모리반도체를 공급하고 있는 SK하이닉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SK하이닉스는 애플과 협력업체 청정에너지 프로그램 협약을 맺고 애플에 공급하는 모든 부품을 친환경방식으로 생산하기로 했다.
LG화학 같은 배터리업체들도 예외가 아니다. 주요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이 RE100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방식으로 배터리를 생산해야 하는 과제가 시급해졌다.
그런데 친환경에너지 가운데 생산·운송·저장 측면에서 그나마 안정성과 활용성이 가장 높게 평가되는 게 수소에너지입니다. 수소경제가 주목을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주요국 정부와 기업들이 친환경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산업구조 위에서 경쟁우위를 차지하려면 수소경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도 있다.
물론 지금껏 탄소를 잔뜩 배출해 왔던 선진국들이 이제 와서 개발도상국 등 후발주자들과 격차를 벌리기 위해 친환경을 들먹인다는 비판은 진작에 나왔다.
그렇다고 우리 기업들이야 넋 놓고 비판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좋든 싫든 이 흐름에 따라갈 수밖에 없다. 산업재편이 불가피하다면 시장에 빨리 들어가는 게 유리하다.
사실 당장 경제성이 없더라도 막대한 투자와 정책적 지원으로 경제성 문제를 극복한 사례는 많다. 천연가스도 그랬다.
천연가스는 화석연료이긴 하지만 석탄과 석유보다 친환경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처음에는 천연가스의 발전단가도 높고 대규모 인프라를 투자해야 하는 것도 부담이었겠지만 어느새 생산비용도 낮아지고 관련 인프라도 확충됐다.
각국 정부가 천연가스에 대한 지원도 늘리면서 지금은 전체 에너지에서 천연가스가 차지하는 비중도 많이 늘었다.
수소경제의 당위성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탄소중립이라는 인류 공통의 과제를 위해서는 결국 수소경제로 갈 수밖에 없다는 필연성이 있다. 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안 하면 인류의 존립을 위협할 수도 있는 사안인 것이다.
◆ 수소경제로 가는 길에 도사린 복병
수소경제가 피할 수 없는 길이긴 해도 갈 길이 너무 멀다. 수소경제가 의미 있는 수준으로 성숙하기까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3천조 원 시장이 된다는 2050년까지는 약 30년을 기다려야 한다. 경제성이 가시화한다는 시점도 10년 뒤인 2030년이다.
먼 미래에 일어날 일이라는 것은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도중에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만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도 있다.
벌써 우리는 변수를 경험했다. 국제적 공감대를 형성해 막 걸음마를 뗀 탄소중립은 이미 에너지 가격 상승과 인플레이션이라는 복병을 만났다. ‘그린플레이션’이란 말도 곳곳에서 듣게 된다. 친환경정책으로 원자재가격이 급등해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현상을 뜻하는 것이다.
모든 일에 성장통이 있기 마련이지만 그 아픔이 너무 커 자칫 탄소중심으로 되돌아가려는 반작용이 커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만은 없다.
수소경제가 각국 정부의 정책적 의지에 의존하는 측면이 큰 만큼 예상치 못한 정치 리스크를 맞을 수도 있다.
2016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며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파리기후협약을 철회하고 신재생에너지로 가려던 미국의 에너지정책을 화석연료 중심으로 되돌렸다.
이런 일이 또 없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최근 민주당 강세지역인 버지니아에서 친트럼프 성향 공화당 주지사후보인 글렌 영킨이 민주당 후보를 꺾는 이변을 연출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4년 대선에 다시 도전할 것이라는 말도 들린다.
이처럼 수소경제는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석탄연료가 수소로 대체되는 수소의 시대는 정말 언제쯤 올까? [채널Who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