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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Who] SK 이사회에서는 오너 최태원도 한 표, 재벌에 변화 만들까

남희헌 기자 gypsies87@businesspost.co.kr 2021-10-05 10: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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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회장이 SK그룹의 경영 투명성 높이기에 앞장 서고 있다.

최 회장은 왜 이사회 중심 경영을 강조할까? 한국 재벌집단의 변화도 이끌어낼까?

◆ SK그룹의 변화, 최태원의 이사회 권한 강화

최태원 회장은 재계에서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경영에 가장 앞장서는 오너경영인이다.

ESG 가운데 G는 거버넌스를 뜻하는 것으로 흔히 ‘지배구조’로 번역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기업이 오너나 주주를 넘어 이해관계자를 위한 의사결정구조를 어떻게 구성하고 운영할 것인지와 더 관련이 깊다.

최 회장은 거버넌스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만들지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 핵심은 기업경영의 최상단에 있는 이사회가 총수의 눈치를 보지 않고 독립적 운영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최 회장은 각 계열사가 이사회 중심 경영체제를 강화할 것을 주문하며 그 의미를 계속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최 회장의 의지는 단순히 선언에 그치는 게 아니라 행동으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SK 이사회에서 이런 변화의 흐름이 엿보인다.

SK는 8월20일 제11차 정기 이사회를 열었다. 모두 5개의 안건이 올라왔는데 이 가운데 ‘H사 추가 투자’라는 안건이 있었다.

최 회장은 SK의 대표이사로서 이 안건에 반대했다. 이찬근 사외이사도 반대표를 던졌다. 하지만 이사회 구성원 9명 가운데 나머지 7명은 이 안건에 찬성했다. 결국 SK가 H사에 추가로 투자하는 방안은 가결됐다.

총수가 반대하더라도 이사회의 나머지 구성원들이 찬성하면 다수결에 따라 SK 투자를 지속하는 ‘독립된 이사회’가 구현된 것이다.

이사회 권한 강화는 다른 계열사에서도 관찰된다.

SK이노베이션이 7월1일 공시한 ‘중장기 전략방향 및 투자계획’을 보면 ‘이사회 권한 강화를 통한 선진 지배구조 구축’이라는 항목이 있다.

SK이노베이션은 “ESG경영 가속화를 위해 글로벌 수준의 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하고 이사회의 실질적 권한과 역할 강화를 통해 ‘이사회 중심 책임경영 실행 의지’를 천명한다”고 목적을 설명했다.

가장 눈에 띄는 내용은 이사회 내 인사위원회를 인사평가보상위원회로 바꾸면서 권한을 더 부여하기로 한 것이다.

인사평가보상위원회는 최고경영자(CEO)의 평가 정책을 수립해 평가를 확정하고 관련한 보상기준과 수준도 결정한다. 또 CEO 재선임 여부도 결정하고 차기 CEO후보군을 선발하고 육성해 최종 선발하는 모든 과정 전반에 걸쳐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최태원은 왜 이사회의 권한을 강화하려고 하나

과거만 해도 이사회 권한 강화는 보통 오너의 경영권을 약화하는 것으로 여겨왔다. 이사회가 독립적 권한을 지니고 총수의 입김에서 자유로워지면 자칫 회사를 일구고 키워낸 대주주의 발언권이 약해질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통상 국내 대부분의 재벌집단은 오너라 불리는 대주주들이 직접 경영에 참여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이사회를 통한 경영진 견제와 감시의 기능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사실상 이사회의 운영이 형식에 그친 사례가 대다수다.

재벌오너에 종속된 이사회 운영은 대주주와 대주주의 지지를 받는 소수 경영자의 이익만을 극대화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회사에
투자한 소액주주, 즉 개인 투자자들의 이익은 외면받는 것이 당연시됐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대규모 기업실패와 회계부정 등이 일어난 배경에도 모두 이사회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SK그룹도 이런 실패에서 자유롭지 않다.

최 회장은 2013년 SK그룹의 계열사 출자금 465억 원을 국외에서 불법적으로 쓴 혐의(횡령)로 징역 4년의 유죄판결을 받고 법정구속되기도 했다. 최 회장은 구속된 지 2년 반 넘는 수감생활 끝에 특별사면을 받고 출소했다.

모두 대주주나 경영진을 감시하는 이사회가 정상적으로 작동했다면 벌어질 수 없었던 일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사회 권한 강화는 궁극적으로 각 계열사의 경영과 의사결정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는 일이다. 회사의 이익을 회사의 주인인 여러 주주와 공유하는 선순환체제를 갖추는 결과와 이어질 수도 있다.

남상구 전 한국기업지배구조개선지원센터 원장도 과거 ‘좋은 기업지배구조는 이사회로부터 시작된다’는 글에서 “주주와 경영자를 이어주는 기구로서의 이사회의 역할은 기업지배구조의 핵심”이라며 “잘 기능하는 활발하고 독립적 이사회를 지닌 회사는 그렇지 않은 회사보다 훨씬 성과가 좋다는 조사결과가 이를 잘 증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 전 원장은 “오늘날의 투자자들은 개인이든 기관이든 개별적으로 기업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하기에는 많은 제약이 있다“며 ”경영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독립적이고 강력한 이사회, 활발히 일하는 이사회, 업무에 정통한 이사회“라고 덧붙였다.

최태원, 한국 재벌집단의 변화 이끌어낼까

최 회장의 이사회 권한 강화 행보는 한국 대기업집단에 많은 의미를 던져준다.

국내 대부분의 재벌은 모두 대주주(오너)의 뜻에 따라 회사 전체의 방향을 결정해왔다. 대표이사와 사내이사, 사외이사로 구성된 이사회는 그저 오너의 의중을 미리 헤아려 수행하는 형식적 기구에 불과했다.

전문성을 갖춘 이들을 사외이사로 선임한다고 해도 사외이사들은 그들에게 부여된 감시 기능을 적극적으로 행사하지 않았다. ‘거수기’에 불과하다는 무용론이 나온 이유다.

그 결과 국내 재벌그룹들은 대부분 오너리스크를 한두 차례 경험했다.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 등 국내 1, 2위의 대기업집단도 총수의 경영비리로 오너가 구속된 적이 있다. 그룹에서는 총수의 부재를 ‘경영공백’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오너 리스크가 그룹을 잠시 휘청이게 하는 정도로 그치면 다행이었다. 하지만 극단적으로 그룹의 명운을 기울게 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표적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과거 재계서열 순위 7위까지 오른 국내 대기업집단이었으나 오너2세인 박삼구 회장의 독단적 경영으로 무리한 인수합병에 나서면서 뒷감당을 하지 못해 결국 그룹이 거의 해체되는 수준에 이르렀다.

최 회장이 강조하는 효율적 거버넌스가 SK그룹 계열사 전반에 뿌리내린다면 과거 잘못된 관행으로 벌어진 좋지 않은 선례를 끊어내고 미래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 만들어질 수 있다.

물론 최 회장은 이사회 중심 경영을 통한 기업의 투명성 제고가 회사의 미래를 담보하는 궁극적 정답이 아닐 수 있다는 고민도 동시에 하고 있다.

최 회장은 7월9일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자격으로 참여한 오디오 라이브 토크쇼에서 “대기업 가족경영에 대한 논란이 많지만 전문경영인체제 또한 무조건 옳은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전문경영인체제와 오너경영인체제의 장단점을 놓고 한 말이지만 이사회 중심의 경영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그는 SK그룹 사업의 한 축인 반도체사업을 놓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최 회장은 “과거 일본 도시바 내부에 문제가 생기고 회사 매각이슈가 발생해 일본 정부 역시 관여했지만 일본 기업 중 어느 곳도 이를 운영할 곳이 없었다”며 “운이 좋게 SK하이닉스가 글로벌 파이낸셜 투자자와 손을 잡고 투자할 수 있었고 이는 반도체 경영이라는 것이 그만큼 리스크를 감당해야 할 사업이고 일본의 전문경영인은 이를 감당할 수 없다고 봤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사회 중심 경영은 분명 총수의 눈치를 보지 않는 독립적 경영을 통해 기업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

하지만 이사회 구성원 대부분의 임기가 정해져 있다 보니 단기적 성과에 몰두하는 폐해가 나타날 수 있고 수조 원이 투입되는 대규모 투자에는 선뜻 나서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한국에 총수의 역할론이 항상 힘을 받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계열사 이사회가 결정하기 어려운 사안을 놓고 총수가 장기적 시각으로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최 회장은 “이들은 오히려 한국을 부러워하고 있고 한국에선 반대로 이런 식의 가족경영, 투명성 부족에 대해 질책을 받기도 한다”면서도 “저희도 이 문제가 계속 진행되지 않도록 시간이 좀 더 흐르면 전문경영인체제로 전환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채널Who 남희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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