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에너지솔루션을 향한 시장의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배터리 화재가 계속되면서 향후 대규모 수주기회를 놓칠 수 있고 고객기업들이 이탈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이기도 하다.
LG에너지솔루션이 위기를 도약을 위한 디딤돌로 삼으려면 배터리사업을 향한 시장의 의문을 해소해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 우선이다.
◆ 배터리 향한 의문에 LG는 답 내놓을 수 있나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를 바라보는 시장의 시선이 불안하다. LG에너지솔루션이 제작한 배터리를 탑재한 차량에서 화재사고가 반복되자 의구심이 일어난 것이다.
가장 뼈아픈 지적은 ‘LG는 과연 원인을 알고 있느냐’는 말이다.
이런 지적은 LG에너지솔루션 스스로 키운 측면이 크다.
LG에너지솔루션은 과거 현대차 코나EV에서 연달아 화재가 발생하자 2020년 10월에 배터리 상태를 점검하는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했다. 하지만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한 차량에서 또 화재가 발생하자 결국 올해 2월에 배터리 전량 교체 리콜을 실시했다.
제너럴모터스(GM) 차량 리콜 사태는 현대차 리콜 사태보다 더 혼란스러웠다.
GM은 볼트EV 배터리 화재로 2019년 이전에 출시된 볼트EV를 대상으로 충전을 제한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업데이트하겠다고 2020년 11월에 공지했다. 이어 올해 4월 소프트웨어 개발을 마쳤다고 밝혔지만 리콜을 받은 볼트EV에서 또 화재가 발생했다.
GM이 7월에 다시 배터리모듈 교체 리콜을 발표하면서 사태를 마무리하는가 싶더니 최근에는 기존에 문제가 없다고 봤던 2019년 이후 출시된 차량도 리콜하기로 결정했다.
GM이 낸 보도자료를 보면 LG에너지솔루션조차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GM은 8월20일 보도자료에서 “추가 조사를 통해 한국 오창공장 이외의 LG 제조시설에서 생산된 특정 배터리셀에서 제조결함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 추가 조사는 GM이 스스로 진행했다. GM이 자체조사를 해보니 LG에너지솔루션이 설명했던 것보다 많은 문제가 드러났다는 뜻이다.
리콜 과정을 살펴보면 처음에는 소프트웨어 문제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2019년 이전 생산 배터리문제라고 했고 결국 더 많은 배터리에 문제가 있다는 설명으로 확대됐다.
증권가는 LG에너지솔루션의 대처가 신뢰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한다.
전유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근본적으로 LG화학의 생산기술과 공정에 대한 신뢰도 하락이 불가피해졌다”며 “현재는 글로벌 업체 중 최대 수주잔고를 확보하고 있지만 향후 추가 대규모 수주 여부와 고객사 이탈 가능성 등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바라봤다.
◆ LG에너지솔루션 성장통인가, 위기를 도약의 전환점으로 만들까
물론 전기차배터리산업이 이제 막 성장하는 단계라는 점을 감안할 때 LG에너지솔루션 스스로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할 수도 있다.
화재 발생의 근본적 원인이 완성차기업에 있는지 아니면 배터리기업에 있는지도 아직 결론나지 않았다. LG에너지솔루션은 현대차, GM 등 완성차기업과 배터리 화재와 관련한 충당금을 일정 비율로 나눠서 내고 있다.
하지만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를 탑재한 차량에서 유독 화재가 연달아 발생하는데다 대응 방식이 스스로 시장의 의구심을 키우고 있다는 점은 분명히 문제다.
LG에너지솔루션 관계자는 회사의 해명이 상황에 따라 바뀌는 것 아니냐는 물음에 “결과적으로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며 “하지만 애초 의도는 화재사고에 빠르고 선제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파악된 부분에 적극적으로 대처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화재사고의 특성상 배터리가 모두 타버리기 때문에 문제의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는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며 “완성차 제조기업들과 각국 관련기관의 조사도 거쳐야 하는데 현재는 사고 수습을 놓고 고객사들과 조율하는 단계”라고 덧붙였다.
LG에너지솔루션에게 닥친 이번 위기가 언젠가는 겪어야 할 성장통이라는 시각도 있다.
박연주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이 이슈가 LG화학의 기술력 부족 때문이라기보다는 배터리 양산기술 자체의 난도가 높기 때문이라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글로벌 배터리업계에서 중국 CATL과 점유율 1, 2위를 다툰다. 국내 배터리3사로 불리는 SK이노베이션, 삼성SDI 등과 비교해 총수주량과 연간 배터리 생산능력에서도 단연 앞서있다.
글로벌 선두기업이다 보니 앞서 완성차기업에 공급한 배터리 물량도 많은데 이런 이유에서 예상하지 못한 불미스러운 사고가 발생할 수 있지만 이를 LG화학의 기술력 문제와 관련짓기 힘들 수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다른 배터리기업이 성장하면서 겪을 수 있는 문제를 미리 경험하는 과정일 수 있다는 시각으로 보면 현재 LG에너지솔루션의 위기가 성장통일 수 있다는 의견도 수긍할 만하다.
LG에너지솔루션이 이번 위기를 넘겨 배터리업계의 선도기업으로 입지를 다지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전유진 연구원도 “이제 막 개화된 시장에서 톱티어조차 피할 수 없는 과정이라는 점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면 후발업체들의 자리잡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증명하는 셈”이라며 “분명한 점은 전기차시장의 방향성에는 변함이 없고 모두가 처음 걸어가 보는 이 길에서 산전수전을 겪으며 살아남는 업체 중심으로 승자독식 기회가 주어질텐데 LG화학은 그 가능성이 높은 소수업체 중 하나”라고 봤다.
LG에너지솔루션이 배터리업계와 완성차업계의 관심이 집중된 화재사고와 관련해 원인을 충분하게 규명하고 안전한 배터리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해 낸다면 오히려 시장의 선도기업으로 입지를 확고히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LG에너지솔루션 관계자는 신뢰 회복 계획과 관련해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 조치들은 내부사항이라 모두 알리기 힘들지만 파악한 문제를 놓고는 공정에 개선사항을 즉시 반영하는 방식으로 대처하고 있다”고 말했다.
◆ 현대차와 GM은 어떻게 신뢰 회복했나, 정의선과 메리 바라의 결단에서 배울 점
현대자동차그룹과 GM의 사례는 시장의 신뢰가 무너지는데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효과적인지를 보여준다.
현대차그룹은 오랜 기간 품질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대표적인 것이 세타2엔진 문제인데 현대차와 기아는 이른바 ‘3분기의 저주’를 계속 겪으며 실적에 타격을 받았다.
현대차기아가 세타2엔진 관련 품질 충당금으로 쌓았던 비용은 2018년 3분기 4600억 원(현대차 3천억 원, 기아차 1600억 원), 2019년 3분기 9200억 원(현대차 6100억 원, 기아차 3100억 원), 2020년 3분기 3조3600억 원(현대차 2조1천억 원, 기아차 1조2600억 원) 등이다.
정의선 회장은 총수 취임 직후인 2020년 3분기에 대규모 품질비용을 지출하면서 품질문제를 다루는 유관부서를 통폐합하는 방향의 조직개편 추진했다. 이를 놓고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다는 판단에 칼을 빼든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정 회장은 생산 측면에서도 진정성 있는 행보를 보였다.
쏘나타 소음진동문제와 GV80 엔진 떨림현상 등이 거론되자 생산과 출고를 즉시 중단하고 품질을 높일 것을 지시한 것이 대표적이다.
정 회장의 선제적 조치를 놓고 시장은 신뢰 회복을 위한 현대차그룹의 의사결정이 솔직하고 빨라진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물론 여전히 현대차기아의 품질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많다. 하지만 품질문제를 쉬쉬하던 관행에서 탈피해 고객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품질경영을 그룹의 가장 큰 목표로 삼고있다는 점은 분명 과거와 다르다.
GM도 신뢰문제로 큰 위기에 몰렸지만 메리 바라 회장의 결단으로 신뢰를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
메리 바라가 GM 회장으로 취임한 2014년 초 GM 차량에서 점화장치 결함이 발견됐다. 하지만 추가 조사를 해보니 GM측이 이런 사실을 10년 전에 이미 발견했지만 이를 숨겨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파산 직전까지 갔다가 미국 정부의 구제금융으로 간신히 살아난 GM에 대형악재가 터진 것인데 이를 계기로 브랜드 이미지가 추락했다.
GM은 이후에도 에어백 결함과 전조등 결함, 기어변속기 문제 등이 연달아 발견돼 품질위기와 신뢰 하락의 이중고에 놓였다.
메리 바라 회장은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취임 이후 5달 동안 모두 48차례나 리콜을 결정하며 차량 2천만 대를 리콜했다. GM이 2014년 한 해 동안 리콜을 결정한 차량은 모두 84차례에 걸친 3천만 대다.
메리 바라 회장은 조직 내부의 잘못된 관행을 수면 위로 드러내고 이를 바로잡는 데도 단호한 모습을 보였다.
메리 바라 회장은 리만브라더스 파산 사태를 조사했던 안톤 발루카스 변호사를 고용해 내부 관계자 200여 명을 인터뷰해 보고서를 만들도록 지시했다.
이 보고서는 페이지만 수백만 쪽인데 GM 위기의 배경으로 ‘GM 노드(nod)’, ‘GM 살루트(saluet)’로 불리는 무책임한 조직문화를 지적했다.
문제를 제기하면 그냥 고개만 끄덕거리고(nod), 점잖게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기는(salute)는 문화가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위기로 키웠다는 것이다.
메리 바라 회장의 솔직하고 선제적인 조치는 GM이 위기를 넘기고 소비자들의 신뢰를 일정 수준 회복하는 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정의선 회장과 메리바라 회장의 사례는 LG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구광모 회장은 LG그룹 총수 취임 이후 ‘선택과 집중’ 전략을 선택했다. LG전자의 핵심인 스마트폰사업을 접는 대신 성장성이 높은 LG화학의 배터리사업을 그룹의 중요한 사업 축으로 삼겠다는 것이 그것이다.
스마트폰을 접고 총력을 기울이는 배터리사업이 흔들리면 LG그룹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에서 신뢰 회복을 향한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구광모 회장이 직접 배터리사업과 관련한 신뢰회복 메시지를 낸다면 LG에너지솔루션을 향한 시장의 시선도 바뀔 수 있다. [채널Who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