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대통령 |
박근혜 대통령이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를 밀어 붙이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문 후보자도 언론 보도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보이며 사퇴거부 의사를 확실히 표시했다.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은 13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총리 임명동의안은 오는 16일 국회로 갈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문 후보자에 대한 여론의 동향과 상관없이 ‘문창극 카드’를 고수하기로 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이는 박 대통령이 인사청문회의 검증을 통과할 인물을 더 이상 찾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분석된다. 박 대통령은 안대희 전 후보자의 사퇴 때도 끝까지 만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은 이미 2명의 총리 후보자가 청문회에 서보지도 못하고 낙마한 부담을 안고 있다. 그런데 문 후보자까지 낙마할 경우 치명상을 입게 될 것은 불보듯 뻔하다.
박 대통령을 이런 곤란한 상황에 빠뜨린 것은 공교롭게도 박 대통령 자신이다. 인사청문회를 도입한 것도, 인사청문회의 기준을 높게 만들어 여러 명을 낙마하게 만든 것도 한나라당이기 때문이다.
◆ 버티기 나선 문창극
문 후보자는 13일 서울 종로구 정부청사 창성동 별관에 마련된 집무실에 출근하면서 기자들에게 “과거 발언이 정확하게 기억이 안 난다”며 “그것을 검토해야 하고 다른 청문회 준비도 많다”고 말했다.
문 후보자는 “질문을 좀 받아달라”는 취재진의 요청에 “질문은 그때그때 총리실 통해서, 총리실에 여러 보좌하는 분들이 많으니 그분들이 질문을 받으면 그때그때 적당하게 답변을 드리겠다”고 말했다.
총리실이라는 공식적 경로를 통해 해명하겠다는 것으로 사실상 청문회까지 가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이다.
이에 앞서 12일 문창극 총리후보자 인사청문회 준비단은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KBS의 왜곡된 편집이 전혀 사실과 부합되지 않음을 분명히 말씀드리며 해당 언론사의 보도책임자를 상대로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 등 혐의로 법적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문 후보자 측은 총리실 인터넷 사이트에 후보자의 강연전문과 원본 동영상을 게재해 문 후보의 강연내용을 국민들이 직접 판단하게 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그 뒤 국무총리실 인터넷 홈페이지에 동영상이 올려졌다.
새누리당은 적극적으로 문 후보자 감싸기에 나섰다.
새누리당의 이완구 원내대표 등 원내지도부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주요당직자회의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문 후보자의 강연 동영상을 다같이 시청했다. 새누리당 지도부들은 이어 문 후보자를 옹호하며 야당에 정상적 인사검증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윤상현 새누리당 사무총장은 “이 분이 어떤 능력과 역사관을 갖고 있는지 들어보지도 않고 후보지명을 철회하라고 얘기하는 것은 인사검증 절차를 무시하는 발상”이라며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의견을 들어보는 게 정도”라고 말했다.
야당은 더욱 반발하고 있다. 일부에서 인사청문회 보이콧 얘기도 나오고 있다.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문 후보자의 자진사퇴가 가장 옳겠지만 새정치연합이 인사청문회 거부도 검토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 문창극 총리 후보자가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으며 출근하고 있다.<뉴시스> |
◆ 박근혜의 자승자박인가
문 후보자의 과거발언들이 다 밝혀지게 된 것은 인사청문회의 영향이 크다. 후보자의 능력 자체보다 성품과 도덕성을 우선하는 분위기가 인사청문회 도입 이후 형성됐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총 4명의 총리 후보자를 지명했다. 그 중 총리자리까지 간 사람은 정홍원 총리 한 명뿐이다. 2명은 인사청문회까지 가기도 전에 여러 논란에 휩싸이며 낙마했고 문 후보자도 거센 사퇴요구에 직면해 있다.
총리후보뿐 아니라 박근혜 정부 들어 고위공직 후보의 낙마사태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 들어 1년3개월 동안 청문회 문턱도 넘지 못한 고위공직자 후보는 이동흡 헌재소장 후보,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 등을 비롯해 10명이 넘는다. 대다수가 부동산 투기와 위장전입, 자녀 병역비리 등의 항목들에서 발목이 잡혔다.
여러 공직자들이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하자 일부에서 인사청문회가 정국 주도권을 잡기 위한 싸움터로 변질됐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고위공직자 후보자의 자질과 능력검증보다 낙마를 목적으로 불필요한 사생활을 폭로하고 이를 당리당략적으로 악용한다는 지적이다.
박 대통령도 당선 직후 “공직 후보자를 불러다가 너무 혼을 내고 망신을 주는 식의 청문회가 이뤄지니까 나라의 인재를 불러다 쓰기가 참 힘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인사청문회를 처음 도입한 것도, 인사청문회 대상을 넓힌 것도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이다. 인사청문회를 도입할 당시 박 대통령은 한나라당 부총재였고, 인사청문회 대상이 확대될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다.
인사청문회는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인 2000년 도입됐다. 야당이던 한나라당이 대통령의 인사권을 견제하기 위해 먼저 요구해 제정됐다. 한나라당은 인사청문회 도입을 요구하며 “정책 자질뿐 아니라 높은 도덕성과 국민정서에 부합하는 인물을 임명케 하자”고 취지를 밝혔다.
2년 후 장상 총리지명자, 장대환 총리지명자는 인사청문회의 벽을 넘지 못하고 낙마했다. 첫 여성총리로 지명된 장상 전 이화여대 총장이 첫 총리 사퇴자가 됐다. 장 전 총장은 당시 위장전입과 부동산 투기, 아들의 이중국적 의혹 등으로 국회 본회의에서 인준안이 부결됐다.
그 뒤 새 총리로 지명된 장대환 매일경제신문 사장도 국회 인사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낙마했다. 장 사장은 세금탈루,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업무상 횡령배임 의혹에 휩싸였다.
한나라당은 2005년 당시 박근혜 대표를 중심으로 인사청문회 대상 확대를 요구했고 인사청문회법은 장관후보자까지 인사청문회 대상범위를 확대하도록 개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