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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아는 얘기 '사도', 이준익 모험이 성공한 까닭

김수정 기자 hallow21@businesspost.co.kr 2015-10-03 20:4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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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가 아는 얘기 '사도', 이준익 모험이 성공한 까닭  
▲ 영화 '사도'의 한 장면.

세상에서 제일 재미없는 사람이 남들 다 아는 얘기를 하는 사람이다. 더욱 최악인 것은 그 얘기를 ‘하고 또 하고’ 반복하는 사람이다.

남들 다 아는 얘기를 하는 사람은 대략 두 부류다. 남들이 그 얘기를 모른다고 ‘생각’하거나, 남들이 안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는 경우다.

이준익 감독은 후자에 속한다.

조선시대 역사물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에서 뒤주에 갇혀 죽은 사도세자 이야기는 이미 지겹도록 재생산됐다.

그런데도 이준익 감독은 사도세자 이야기를 다시 들고 나왔다. 영화를 재미있게 만들어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는 감독의 입장에서 위험천만한 모험이다.

영화 ‘사도’는 개봉 16일 만인 1일 5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기대와 우려가 쏟아졌지만 일단 이준익 감독의 모험은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이는 곧 이 감독이 남들 다 아는 얘기를 다르게 이야기하는 데 성공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무엇이 사도세자를 소재로 한 전작들과 달랐을까?

이 감독은 ‘무엇(WHAT)’이 아닌 ‘왜(WHY)’에 집중했다. 처음-중간-끝으로 이어지는 전통적인 내러티브 방식을 따르지 않는다. 남들이 다 아는 얘기를 하려면 뭔가 달라야 하기 때문이다.

이 감독은 영화 개봉을 앞두고 한 여러 인터뷰에서 “사건이 아닌, 사연을 들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연은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라는 질문과 해답을 담는다.

영화는 구체적으로 ‘왜 아비가 아들을, 그것도 뒤주라는 극한의 공간 안에 가둬두고 죽도록 방치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역추적해 들어간다.

영화는 첫 장면부터 압도적이고 강렬한 장면을 제시한다. 어두운 밤 관 속에서 송장놀이를 하던 사도(유아인)가 벌떡 일어나 칼을 들고 영조(송강호)를 향해 돌진하고 곧바로 뒤주에 갇히고 만다.

과거의 회상을 다루는 ‘플래시백’은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는 영화적 도구다. 사도 역시 플래시백을 구사했다. 절대권력을 지닌 아비의 손에 죽임을 당하는 아들의 비참한 운명을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 설명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더욱 주목되는 것은 뒤주에 갇힌 사도의 8일을 과거와 교차시켜 마치 연극의 막(幕)을 차용한 느낌을 준다는 점이다.

이는 나아가 그리스 비극을 떠올리게 만들기도 한다. 그리스 비극은 디오니소스 제례에 야외극장에서 실연됐던 가면극이었다.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는 영웅들이었으며 이들의 충돌은 비참한 결말을 낳는다.

  모두가 아는 얘기 '사도', 이준익 모험이 성공한 까닭  
▲ 이준익 감독.
영조와 사도의 운명도 그리스 비극 속 영웅들의 운명과 다르지 않다. 왕과 세자라는 신분적 질서 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을 타고 났기 때문이다.

그리스 비극은 영웅들의 비극적 운명을 그리지만 그 안에 인간의 보편적 운명을 담고 있다. 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서사에서 그리스 비극의 원형이 변주돼온 것도 이 때문이다.

이준익 감독은 사도에서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원초적이고 보편적인 인간관계에 초점을 맞췄다. 영조와 사도세자의 갈등에 작용한 정치적 국면을 최대한 배제한 것이다.

영화는 흔히 감독의 예술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해석은 관객의 몫이다. 이준익 감독의 의도는 절반쯤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사도를 본 관객들의 평가는 호불호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영화를 보는 내내 아버지를 떠올리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또 다른 이는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자신을 한번쯤 성찰하는 계기가 됐을 수도 있다.

반면 이미 다 아는 얘기가 펼쳐지는 동안 그 묵직함과 비장함에 눌려 2시간 내내 하품을 참아내야 했을 수도 있다.

사도는 관객의 영화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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