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정치개혁특별위원회 간사(왼쪽)와 심상정 정의당 대표,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위원장이 2019년 8월2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를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더불어민주당 압승과 미래통합당 참패라는 결과를 낳은 총선이 헌법 개정과 선거구제 개편 논의를 다시 소환할까?
16일 정치권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제21대 국회의원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180석을 차지하면서 앞으로 ‘헌법 개정’과 ‘선거구제 논의’가 화두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
개헌은 정부와 여당뿐 아니라 야당까지도 모두 속내는 달랐지만 실제 추진에 의욕을 보였던 정치적 의제다.
국회는 2017년 1월 헌법개정특별위원회의 첫 회의를 시작으로 2018년 1차례 운영기간을 연장하면서까지 개헌안을 논의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정부 주도로 개헌안을 마련해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서 개헌안을 동 투표에 부치지 못하면서 개헌 논의는 수그러들었다.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2019년 말 기자회견에서 “새로운 개혁은 총선 이후에 새로 구성된 정치주체들이 새롭게 해야 한다”면서 “20대 개헌 논의는 끝났으며 21대에서 다시 논의를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흐름들을 고려할 때 이번 총선으로 새롭게 구성된 국회가 개헌안 논의의 불씨를 다시 지필 수 있다는 말이 정치권 안팎에서 흘러나온다.
벌써부터 직접 개헌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손학규 민생당 대표는 16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대표 사퇴를 선언하면서 “현재 승자독식의 제왕적 대통령제로 거대 양당은 정권 싸움에만 몰두하게 됐다”며 “개헌을 통해 권력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현재 시점에서 정부와 여당에게는 개헌 논의가 썩 달갑지만은 않을 수 있다.
집권 초기에 추진했던 개헌은 ‘권력욕’ 등과 같은 부정적 프레임과 무관하게 밀어붙일 여지가 많았지만 임기를 2년 남짓 남겨둔 현재 시점에서 논의를 진행하는 것은 논란만 양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헌 논의가 자칫 경제 살리기와 관련한 정책 의제들을 모두 묻어버릴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더불어민주당이 단독으로 180석을 확보하면서 쟁점법안의 여당 단독 처리도 사실상 가능해졌다. 정부와 여당은 이를 기반으로 코로나19 국면 이후 경제 살리기를 위한 각종 경제 입법과제를 풀어내는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개헌 논의가 시작된다면 이런 노력들이 빛을 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30년 넘게 유지한 헌법의 틀을 바꿔 새 틀을 마련하려면 여론 수렴부터 해야하기 때문에 국회에서도 여야의 격렬한 의견 대립이 예상된다.
이른바 ‘개헌 블랙홀’로 불리는 이유다.
문제는 미래통합당 등 범보수진영에서 총선 패배 이후 정치적 돌파구를 마련하고 이슈를 선점하기 위해 개헌 카드를 꺼낼 경우다.
문 대통령과 여당에서 공약으로 내세웠던 만큼 범보수진영의 개헌 제안을 섣불리 뿌리치기 어려울 수 있다. 개헌 논의를 거절할 뚜렷한 명분을 내세울 수 없다.
하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자면 ‘개헌 블랙홀’을 감수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다. 다음 대선을 위해서라도 경제 살리기 문제를 풀어내야 하지만 개헌 프레임에 잘못 빠져들다가는 대선 정국에 불리한 위치에 몰릴 수도 있다.
개헌과 동시에 선거구제 개편도 다시 논의될 공산이 크다.
국회는 비례대표를 기존과 같은 47석으로 유지하지만 이 가운데 30석에 대해서는 각 당 지지율과 연동해 50%의 상한선을 설정하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해 이번 21대 선거에서 처음 적용했다.
거대 정당에 집중된 권력을 줄이고 소수 정당의 국회 진출 가능성을 넓혀줘 소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가 선거구제 개편에 반영됐다.
하지만 미래통합당이 개편안의 허점을 이용해 위성정당을 창당했고 더불어민주당도 범진보진영을 묶어 더불어시민당을 만들면서 이런 목적은 퇴색했다.
21대 총선 결과로만 보면 오히려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의 양당체제가 공고해졌을 뿐이다. 이번 총선에서 정의당은 총 6석(지역구 1석, 비례대표 5석)을 얻어 기존과 동일한 의석 수를 유지했고 국민의당과 열린민주당도 각각 3석을 얻는데 그쳤다.
비례대표 의석 수를 차지하기 위해 총선을 앞두고 급하게 꾸려진 정당이 수십 곳에 이른다.
실제로 현재와 같은 선거법 아래 22대 총선이 치러질 가능성은 전무하다는 것이 정치권 안팎의 중론이다.
손 대표도 기자회견에서 “이번 선거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비례위성정당으로 왜곡한 거대 양당의 잘못으로 만들어진 결과”라며 “선거법 개정을 통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구 후보를 일정 수 이상으로 내지 않는 정당에게는 비례후보를 낼 수 없게 하고 비례의석수를 늘려 연동형의 취지를 살리는 방안 등이 논의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소선거구제 자체에 대한 논의로 확산될 수도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