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선 공천에 선거구민 고려는 보이지 않는다. 국회 의사당의 야경. <국회> |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사는 50대 한 유권자는 미래통합당이 내놓은 후보를 놓고 고개를 갸우뚱한다. 태영호 전 주영국 북한공사를 놓고 표를 줘야 한다는 ‘유대감’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유권자는 대구 출신에 스스로 보수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동안 선거에서 미래통합당 계열의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왜 이 후보에게 표를 줘야 하는지 의문을 절로 의문을 품게 된다고 했다.
김형오 통합당 공천관리위원장은 태 전 공사의 공천을 놓고 “전략적으로 생각한 끝에 적합하다는 결론을 냈다”며 “여러 가지 점에서 적합했다”고 말했다.
이런 말이 통합당을 지지하는 유권자가 품는 의문에 답이 될 수 있을까? 그냥 표만 찍으면 된다는 오만의 느낌이 난다.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의 총선 공천이 막바지에 접어 들었다. 정당의 존재가치는 권력을 잡는 것이고 이를 위해 총선에 나설 후보를 놓고 최선의 카드를 골라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공천 과정을 보면 그 기준에서 유권자는 아예 제외돼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선거구의 민심은 전혀 안중에도 없다.
이낙연 전 총리와 황교안 대표가 서울 종로에서 출마하는 것은 그나마 이해가 된다. 총선에서 승리를 위해 전략적 결정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공천이 허다하다.
이언주 통합당 의원은 경기 광명을이 지역구인데 부산 중구영도구에 공천을 신청했다가 부산 남구을로 공천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출마의 변이 궁색하다.
이 의원은 부산 남구을 공천을 놓고 “민주당 현역이 있는 곳에 가서 한 석이라도 빼앗아 오겠다, 그래서 문재인 정권 심판의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겠다는 생각도 좀 있었다”며 “물론 제가 고등학교를 나온 곳을 희망하기는 했지만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당에서 그런 역할을 부여했다”고 말했다.
김재원 통합당 의원은 지역구인 경북 상주·군위·의성·청송에 공천을 신청했다가 배제되고 험지인 서울 중랑을에서 윤상일 전 의원과 경선을 치르게 됐다.
김 의원은 현역 정책위의장으로 산전수전 겪은 정치인인데 이른바 험지 출마론을 수용하면서도 경선을 놓고 “눈 앞이 깜깜하다”고 했다. 아무런 연고가 없고 활동한 전력도 없다 보니 지역 민심의 거부감을 염두에 둔 듯 “제2의 정치적 고향”을 내걸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도 예외는 아니다.
김남국 변호사는 서울 강서갑에 공천을 신청해 검찰개혁을 놓고 현역의원과 경선을 하겠다고 의지를 보였으나 경기 안산시 단원구을로 공천됐다. 당에서는 안까운 ‘인재’를 버리지 않겠다는 배려이겠지만 정작 김 변호사는 선거구민에게 뭐라고 출마의 변을 꺼낼까?
통합당에서 홍준표 전 대표나 김태호 전 경남지사가 공천배제된 것도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
고향에 출마하겠다는 것이 왜 공천배제의 이유가 되는지 모르겠다. 경쟁력이 없다면 경선을 붙여 검증하면 될 일이고 경쟁력이 높으니 다른 곳에 가야 한다는 이유라면 인물이 부족하다는 고백이나 다름없다.
이런 공천이 비일비재하다 보니 일일이 꼽기도 어렵다.
국회의원은 나라를 위해 일한다. 그러나 지역을 대표하기도 한다.
국내에 주민등록이나 거소 신고가 돼 있지 않은 재외국민은 대통령 선거나 비례대표 의원 선거와 달리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권이 공직선거법상 인정되지 않는다.
헌법재판소는 이런 공직선거법이 헌법정신에 어긋나지 않는 이유로 "전국 단위 선거 투표에는 국민이라는 자격만으로 충분한 데 반해 특정한 지역구의 국회의원 선거에 투표하기 위해서는 ‘해당 지역과 관련성’이 인정돼야 한다”고 짚었다.
지역구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임과 동시에 소속 지역구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헌법재판소가 분명히 한 셈이다.
김재경 미래통합당 의원은 지난해 9월 한국과 외국의 공천제도를 비교한 ‘정당의 민주화’ 출판기념회에서 “우리나라는 이미 선진국 반열에 들어섰음에도 유독 정당의 운영과 공천에서는 과거의 잘못을 답습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한국의 공천제도는 밀실공천이나 비민주적 공천이라는 부정적 의견이 많다”며 “이제는 소수가 아닌 당원이나 국민이 후보자를 선택하는 상향식 공천방식으로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봤다.
유권자는 표로 심판한다.
이번 총선이 정권심판이든 야당심판이든 유권자의 선택이겠지만 유권자를 안중에 두지 않는 공천에 대한 심판도 함께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을 품어 보면 너무 세상 물정을 모르는 것일까? [비즈니스포스트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