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단위 변경(리디노미네이션) 등 화폐개혁 논란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다.
화폐 발행기관인 한국조폐공사는 화폐개혁의 직접적 영향을 받기 때문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기존 화폐를 대체하는 새로운 화폐가 나오면 매출이 늘어날 수 있지만 고액권이 추가되면 오히려 실적에 부담이 될 수 있다.
9일 이원욱 의원실에 따르면 13일 국회에서 ‘리디노미네이션을 논하다’ 정책토론회가 열린다.
이원욱 박명재 최운열 심기준 김종석 등 여야 의원과 국회입법조사처가 공동주최한 자리로 최근 주목받는 리디노미네이션과 관련한 논의가 오갈 것으로 보인다.
이 의원은 “오랜 시간 리디노미네이션 도입 논란이 이어져 왔지만 이와 관련한 정책토론회는 거의 없었다”며 “리디노미네이션의 대승적 논의가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3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리디노미네이션 논의를 할 때가 됐다”고 말하면서 화폐개혁을 향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 총재가 4월 기자간담회에서 “가까운 시일 내에 추진할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었으나 국회 차원의 논의까지 이어지면서 논란이 사그라들지 않을 기세다.
화폐개혁이 이뤄지면 기존 화폐가 새로운 화폐로 대체되기 때문에 화폐를 발행하는 주체인 조폐공사는 바빠지게 된다.
기존 화폐를 대체하고 새로운 화폐를 만드는 비용은 수천억 원대로 추산된다. 이는 곧 조폐공사의 매출과 직결된다. 조폐공사 화폐개혁 논의를 주의 깊게 지켜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과거에는 조폐공사 사장이 리디노미네이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직접 낸 적도 있다. 2010년 전용학 당시 조폐공사 사장은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의 경제 규모나 위상으로 볼 때 리디노미네이션이 바람직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라고 언급했다.
참여정부 시절 박승 한국은행 총재의 주도로 화폐개혁을 추진한 일이 있으나 물가 상승 등 우려로 리디노미네이션은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고액권인 5만원권이 화폐권종에 추가되고 신권이 구권을 대체하게 됐다.
신권 발행은 조폐공사 실적에 실제로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2005년까지 2천억 원대였던 매출은 5천원 권 신권 발행이 시작된 2006년부터 3천억 원대로 늘어나 2008년 3811억 원까지 증가했다.
아직 화폐개혁을 놓고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되지는 않았다. 화폐단위를 변경해 시장에 충격을 주기보다 과거 계획했다가 무산된 10만원권 발행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만약 화폐개혁 논의가 리디노미네이션이 아닌 고액권 추가에 그친다면 조폐공사에는 오히려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조폐공사는 5만원권이 도입된 후 10만원권 수표와 1만원권 지폐 사용이 줄어들면서 실적이 후퇴했다.
조폐공사 매출은 5만원권을 발행한 2009년 3530억 원으로 내려앉은 후 2013년까지 2008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순이익도 2008년 56억 원이었으나 2009년 5억 원으로 감소했고 2011년에는 5억 원의 순손실을 내며 적자로 돌아섰다.
당시 전용학 사장은 “5만원권 발행으로 조폐공사가 비상경영체제를 가동할 만큼 실적에 타격을 받았다”며 “10만원권 발행은 신중해야 한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전 사장은 10만원권이 나오면 은행권이 70% 감소하고 공사 인원의 70%를 구조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폐공사 관계자는 화폐개혁과 관련해 “단기적으로 실적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지만 예단할 수는 없다”며 “한국은행에서 화폐 권종을 어떻게 정하고 몇 년에 걸쳐 진행할지 등에 따라 영향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과거와 달리 화폐사업의 비중이 낮아졌기 때문에 화폐개혁이 이뤄진다 해도 조폐공사의 실적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조폐공사의 화폐사업 매출 비중은 2007년 61.3% 수준으로 높았지만 2017년에는 32.6%로 낮아졌다. 조폐공사의 화폐 제조비용은 2018년 1104억 원으로 역대 최소 수준까지 떨어졌다.
그럼에도 조폐공사는 메달 사업, 정품인증 사업, ID(전자여권 등)사업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하고 해외 수출을 늘리면서 매년 최고 실적을 경신하고 있다.
조용만 조폐공사 사장의 취임 첫 해인 2018년에도 매출 4806억 원, 영업이익 95억 원으로 6년 연속으로 실적 성장세를 이어갔다.
조폐공사 관계자는 “조폐공사 사업이 화폐사업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화폐개혁을 한다고 해도 예전처럼 영향이 크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