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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덕규 고재호 이돈주, 전문경영인 단명은 숙명인가

김디모데 기자 Timothy@businesspost.co.kr 2015-03-31 12:4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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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덕규 고재호 이돈주, 전문경영인 단명은 숙명인가  
▲ 문덕규 전 SK네트웍스 사장(왼쪽)과 김창근 SK그룹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우리나라 전문경영인들은 왜 단명할까? 오너 경영체제에서 임기조차 채우지 못하고 떠나는 전문경영인의 단명은 숙명일까?

얼마 전 재계에서 보기 드문 일이 벌어졌다. 문덕규 전 SK네트웍스 사장이 임기가 끝나지 않았는데도 물러나야 하는 이유를 납득시켜 달라며 공개적으로 항명했다.
 
중소기업도 아닌 국내 4대 재벌로 꼽히는 SK그룹에서 일어난 일이다. 우리나라 전문경영인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글로벌기업들을 보면 좋은 실적을 낸 전문경영인이 수십 년 동안 기업을 이끌어가고 오너는 뒤로 물러나 있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설령 실적부진에 시달리더라도 스스로 물러나는 경우는 있어도 임기가 끝나기 전 예고없이 해임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적어도 임기 중 오너가 인내심을 발휘한다.

하지만 국내 전문경영인들은 단명하는 경향이 강하다. 실적과 무관하게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떠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전문경영인은 억울할 법도 하지만 오너의 뜻이 절대적이라 하소연할 곳도 없다.

◆ 전문경영인이 한계를 보이는 까닭

올해 초 재계에서 대규모 투자와 인수합병 등을 이끌어야 하는 총수가 수감중이거나 재판중인 경우 원활한 기업활동이 어렵다는 이유를 들며 사면복권론에 군불을 땠다.

재벌 총수의 석방을 위해 유리한 여론을 끌어내기 위한 근거로 제시한 것이기도 하나 그 배경에 전문경영인들은 이런 중대한 결정들을 할 수 없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전문경영인은 한계가 있다는 것을 기본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전문경영인이 이런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여러 설명이 있다.

전문경영인들은 대개 3년 안팎의 임기 안에 성과를 내야하기 때문에 장기적이고 거시적 관점에서 회사를 이끌어가지 못하고 단기성과에 집중하는 측면이 강하다. 이 때문에 당장 실적에 부담을 줄 수 있는 인수합병과 설비투자는 꺼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설명이 전부는 아니다. 전문경영인이라는 자리는 실적에 의해서만 결정되지 않는다. 오너의 의사가 더 크게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전문경영인이 독자적 판단에 따라 회사를 이끌어가기는 쉽지 않다.

전문경영인이 한계를 보이는 진짜 이유는 실적 부담감보다 오히려 오너의 눈치를 봐야하기 때문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전문경영인의 책임과 권한은 결국 오너가 결정하는 것”이라며 “오너의 신뢰가 깊은 전문경영인은 그만큼 넓은 시야로 경영을 할 것이고 오너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전문경영인은 단기적 실적에 급급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전문경영인이 임기도 채우지 못하고 반복적으로 교체되는 회사라면 누가 와도 좋은 실적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 문덕규의 비애, 분식회계 집행유예 공로도 인정받지 못해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수감돼 있어 SK그룹은 오너가 경영일선에 없다. 대신 김창근 의장을 중심으로 수펙스추구협의회가 SK그룹을 이끌고 있다.
 


  문덕규 고재호 이돈주, 전문경영인 단명은 숙명인가  
▲ 최태원 SK그룹 회장
문 전 사장은 최근 김 의장에게 메일을 보내 임기 중 물러나야 하는 이유를 듣지 못했다며 “당당하게 만나 내 얘기를 듣고 나를 이해시키고 설득시켜 달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말 ‘이제 그만 내려놓으세요’라는 말 이외 어떤 설명도 듣지 못했다”며 “SK네트웍스 대표이사를 물러나야 하는 사유를 말해달라”고 요구했다.

문 전 사장 교체가 결정된 것은 지난해 12월 SK그룹 사장단 인사 때였다. 그런데 문 전 사장이 3개월 전 결정된 일에 대해 갑자기 납득하지 못하겠다며 소리를 높인 데 대해 주위에서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문 전 사장은 SK그룹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문 전 사장은 “그룹의 리스크 매니지먼트 수준과 신상필벌이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며 “총수의 불행한 상황에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고 쓴소리를 했다.

문 전 사장은 이 대목에서 SK네트웍스의 전신인 SK글로벌의 분식회계 사태를 언급하기도 했다. 문 전 사장은 2003년 SK글로벌 재무지원실장으로 1조7천억 원의 분식회계를 저지른 혐의로 2008년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 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구조조정추진본부장인 김창근 의장도 같은 혐의로 동일한 형을 선고받았다. 이 때문에 문 전 사장이 과거지사를 상기시키며 김 의장에 대한 압박수위를 높인 것이라는 말도 나왔다.

한 재계 관계자는 “결국 전문경영인의 한계와 비애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문 전 사장은 40년 이상 SK그룹에 근무한 인물이면서 김창근 의장과 함께 분식회계 책임을 지기도 했다”며 “그런 김 의장이 내친다는 생각에 억울하기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전문경영인 저항, 살아남은 적이 없다

전문경영인에게 막대한 권한과 책임이 주어진다 해도 정작 그의 인사권은 오너에게 달려있다. 전문경영인이 무리한 인사에 대해 법적으로 대응하겠다며 맞서더라도 결국 진압되고 만다.

박대호 전 스포츠토토 사장이 대주주인 담철곤 오리온 회장에 맞선 사건이 대표적이다.

담 회장은 2012년 당시 박 사장의 직위해제 조치를 내렸다. 스포츠토토 검찰수사 사태에 경영진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는 이유를 댔다. 그러자 박 사장은 “대주주의 횡포”라며 “법적으로 대응할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사정은 이랬다. 스포츠토토 이사회에서 단독대표에서 각자대표제로 전환하는 안건을 다뤘다. 정선영 스포츠토토 부사장을 대표로 추가선임하는 내용이었다. 정 부사장은 담 회장이 횡령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내려 보낸 인물로 오리온그룹 재무담당 부사장 출신이었다.

그러나 이사회에서 9명 가운데 5명이 정 부사장의 대표 선임에 반대했고 결국 각자대표 안건은 부결됐다. 담 회장은 이를 인사권 수용에 대한 거부로 봤다.

박 전 사장은 “이사회 뒤 담 회장이 수차례 불러 ‘대주주 인사권이 무시돼 모욕적’이라고 말했다”며 “담 회장이 자기 사람을 심으려다 안 되자 상법을 무시해가며 보복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사장은 전문경영인이 대주주의 잘못을 지적하자 결국 해임으로 보복했다고 해석했다.

담 회장과 박 전 사장이 맞서며 갈등이 깊어질 조짐을 보였다. 스포츠토토 이사회는 박 전 사장 해임안을 통과시키지 못하고 연기했다. 그러나 결국 물러선 쪽은 전문경영인인 박 전 사장이었다.

박 전 사장은 해임안을 의결할 두 번째 의사회가 열리기 전 돌연 자진사퇴했다. 박 전 사장은 “대주주의 인사권을 존중하기 위해 사퇴한다”고 밝혔다. 박 전 사장 후임에 예정대로 정선영 부사장이 선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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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재호 대우조선해양 사장

◆ 고재호는 왜 시한부 사장을 수용했나

실적이 아무리 좋아도 전문경영인의 자리가 보장받는 것은 아니다.

고재호 대우조선해양 사장은 지난해까지 연임이 확실시되는 분위기였다. 조선업 불황속에서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 유일하게 수주목표를 달성했다. 고 사장이 영업통으로 구축한 네트워크가 빛을 발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회사 내에서 돈독한 신뢰를 쌓고 노조와 관계도 원만했다.

그러나 고 사장은 결국 연임에 실패했다. 대우조선해양의 대주주인 산업은행은 고 사장을 교체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산업은행은 고 사장 임기가 끝나는 이달 말까지 후임사장을 정하지 못했다. 심지어 아직 사장추천위원회도 열리지 않아 후임사장 후보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결국 임기가 끝나는 고 사장이 한시적으로 유임됐다. 고 사장은 다음 임시 주주총회가 열릴 때까지 시한부로 비상경영체제를 이어가고 있다.

회사 안팎에서 이대로 정상적 경영이 어려울 뿐 아니라 고객사의 신뢰도 떨어져 수주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그렇지만 산업은행은 고 사장을 교체한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 사장 교체 결정을 놓고 여러 말들이 나온다. 산업은행보다 더 높은 청와대의 뜻이 반영된 결정이라거나 대우조선해양 매각을 위한 사전작업이라는 말도 흘러 다닌다.

고 사장 교체가 결정된 데 대해서도, 고 사장이 시한부 사장을 수용한 데 대해서도 업계 관계자들은 뜻밖이라는 눈길을 보낸다.

고 사장이 만일의 경우를 믿고 연임이 가능할 것이라는 희망의 줄을 놓지 않았다는 말도 나오고, 대우조선해양 출신으로 대우조선해양의 경영공백을 최소화 하기 위해 희생을 했다는 해석도 흘러다닌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고 사장이 경영능력이 부족해 교체되는 것은 아닌데도 시한부 체제를 받아들인 것은 상당히 뜻밖의 결정”이라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전문경영인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 이돈주, 만일 이건희가 건재했다면

지난해 말 삼성전자 사장단 인사에서 모바일부문 넘버 1, 2로 꼽히는 두 사람의 희비가 갈렸다. 신종균 사장은 자리를 지켰고 이돈주 사장은 물러났다.

사장단 인사가 발표나기 전까지 신 사장이 자리를 지키기 어려울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었다. 삼성전자 휴대폰사업이 고전을 면치 못하면서 중국업체들의 약진에 대한 대책을 수립하지 못한 신 사장이 실책에 대한 책임을 질 것이라는 말이 나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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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돈주 전 삼성전자 사장
삼성전자 안팎에서 신 사장이 물러나고 이돈주 사장이 모바일사업을 맡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왔다. 그러나 사장단 인사 결과는 예상과 정반대였다.

이 사장은 물러나면서 직원들에게 보낸 메일에서 “아직도 더 속도를 내서 뛰어야 하고 수많은 장애물이 곳곳에 출현하고 있는데”라며 진한 아쉬움을 보였다.

이 사장이 물러난 데 대해 한참 뒤에 출장길에 개인적으로 처신을 잘못해 눈밖에 났다는 등의 말도 나왔다.

하지만 삼성그룹이 이재용 부회장으로 승계되는 과도기에 이 부회장이 마케팅보다 기술을 선택하는 등 변화보다 안정을 결정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

이돈주 사장은 중국시장의 변화에 주목하면서 삼성전자가 애플과 맞상대하기 위해 프리미엄 스마트폰 중심으로 대대적인 변화를 꾀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런 이 사장의 주장이 프리미엄시장과 중저가시장을 동시에 대응하기 위해 기술력을 더욱 중시해야 한다는 논리에 밀렸다고 한다.

삼성전자 안팎에서 “이건희 회장이 건재했다면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위기 상황에서 다른 결정을 했을 가능성도 있었고 사장들의 운명이 다르게 갈렸을 수도 있다”는 말도 나돌았다.

◆ 전문경영인의 장수 비결, 어떻게 오너 신뢰를 얻나

국내에도 장수하는 전문경영인이 있다. 이들은 기업을 비약적으로 성장시켰거나 생존의 위기에서 기업을 구해내며 오너의 신뢰를 얻는데 성공한 인물들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최양하 한샘 회장이다. 최 회장은 1979년 한샘에 입사해 15년 만인 1994년 대표이사 전무에 올랐다. 최 회장은 21년째 장수 CEO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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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양하 한샘그룹 회장
최 회장은 부엌가구 전문기업인 한샘에 홈인테리어 패키지 개념을 국내 최초로 도입해 종합인테리어 전문기업으로 비꿔놓았다. 한샘은 1997년 매출 1900억 원에서 2013년 매출 1조 원으로 5배 이상 성장하며 업계 1위에 올랐다.

가구 공룡인 이케아가 국내에 상륙했지만 최 회장의 지휘 아래 한샘은 사상 최대 실적을 기대하고 있다. 한샘 오너인 조창걸 명예회장의 최 회장에 대한 신뢰도 변함없다.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도 장수 전문경영인 자리에서 빠질 수 없다. 차 부회장은 최 회장처럼 한 기업에만 재직하지 않았다. 그러나 LG생활건강에서 차 부회장의 존재감은 대단하다.

차 부회장은 1998년 P&G 쌍용제지 대표이사, 2001년 해태제과 대표이사를 지냈다. LG생활건강이 차 부회장을 영입한 것은 2004년이다. LG그룹이 외부인사를 대표이사로 영입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차 부회장은 코카콜라음료, 더페이스샵, 해태음료 등을 공격적으로 인수하며 LG생활건강의 체질을 바꿨다. LG생활건강은 생활용품에서 음료와 화장품으로 사업을 확대해 성장가도에 올라섰다.

차 부회장은 지난해 LG생활건강의 매출과 영업이익을 취임하기 전인 2004년과 대비해 각각 4.9배, 9.4배 늘렸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차 부회장을 영입한지 7년 만인 2011년 부회장으로 승진시키며 힘을 실어줬다. LG그룹에서 외부출신으로 부회장으로 승진한 사람은 차 부회장이 처음이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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