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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 |
선전포고를 하자마자 전면전이다. 전선도 넓다.
박근혜 대통령이 기업을 상대로 벌이고 있는 반부패 전쟁의 양상이다.
기업을 향한 사정의 칼날은 거침이 없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이완구 국무총리, 황교안 법무부장관, 김진태 검찰총장까지 한 목소리를 내며 부패와 전면전에 나서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올해 초까지만 해도 경제 활성화를 외치면서 기업들에 협조를 부탁했다. 그러나 돌연 태도가 변했다.
박 대통령의 태도변화를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박 대통령이 이명박 전 대통령 측근을 쳐내며 완전히 결별수순을 밟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이명박 정부의 가장 큰 약점인 4대강과 자원외교 비리와 관련해 포스코가 가장 먼저 검찰의 수사철퇴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조국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포스코 등 기업에 대한 전면수사는 이명박 회고록에 대한 박근혜의 답변”이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이 전 대통령이 지난 1월 말 펴낸 회고록은 박 대통령과 갈등요소가 적잖이 담겨 있었다. 이 때문에 박 대통령이 반부패를 명분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을 대상으로 공세를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재계 길들이기에 나섰다는 말도 나돈다.
박 대통령은 경제 살리기에 올인하겠다고 수차례 공언하며 재계의 협조를 당부했다. 그러나 재계의 움직임은 예전 같지 않다. 정부가 요구한다고 해도 바로 맞장구를 치지 않는다.
최근 임금인상을 놓고 정부의 요구를 재계가 묵살한 것이 대표적이다. 재계가 경제 살리기에 대한 협조를 제대로 하지 않은 데 대한 박 대통령의 실망감이 분노로 확대됐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박 대통령이 부패와 전쟁으로 정국을 주도하고 지지율도 끌어올리려는 의도가 깔려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박 대통령은 올해 들어 지지율이 추락한 데다 인적쇄신 효과도 미미한 상황이다. 세간의 관심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에 쏠리면서 박 대통령이 일찍 힘을 잃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고 정국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반부패전쟁을 기획했다는 것이다. 반부패전쟁을 벌이면 검찰수사는 기업과 정치인의 연결고리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밖에 없다.
곧 세월호 1주기가 돌아온다. 세월호 특별법 처리와 관계자 처벌 등 세월호 사태를 무난하게 봉합하지 못한 정부에 대한 책임론이 다시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열리는 4월29일 재보궐 선거 결과도 부담이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남은 임기 동안 주도권을 안정적으로 잡을 필요성이 있는데 이를 위해 반부패를 내세웠을 가능성도 있다. 특히 부정부패 척결은 박 대통령이 세월호 사건 이후 대국민 담화에서 발표한 ‘적폐청산’과 맥락이 닿아 있다.
◆ 부패와 전면전
박근혜 대통령은 17일 국무회의에서 부정부패를 발본색원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박 대통령은 “각 부문에서 켜켜이 쌓여온 부정부패에 대해 단호한 조치가 필요할 것”이라며 "비리의 뿌리를 찾아내서 그 뿌리가 움켜쥐고 있는 비리의 덩어리를 들어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국무총리가 추진하고 있는 부패청산은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말고 국민들과 나라 경제를 위해 사명감으로 반드시 해 줄 것”이라며 이완구 국무총리에도 힘을 실어줬다.
이 총리는 12일 대국민담화에서 “우리사회의 고질적 적폐와 비리를 낱낱이 조사하고 진상을 규명해 엄벌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뒤 검찰은 포스코건설을 압수수색하는 등 기업비리에 대한 수사강도를 높였다. 포스코건설에 대한 수사는 포스코 본사와 정준양 전 회장까지 확대됐다.
검찰이 비리혐의로 수사하고 있는 기업은 포스코건설 외에도 동국제강, 동부그룹, 신세계그룹, 롯데쇼핑, 경남기업 등 재계 전반에 걸쳐있다. 특히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등 총수 일가의 비자금 조성 혐의를 파헤치고 있어 재계가 받는 충격은 크다.
전면전의 선봉에 서있는 황교안 법무장관이나 김진태 검찰총장의 입과 눈은 매섭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13일 대검찰청에 공문을 발송해 “부정부패 처단에 모든 역량을 집중할 것”을 당부했다. 황 장관은 “검찰이 일해도 되는 상황이 됐다”며 “성역없이 철저히 수사해 국민에게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태 검찰총장 역시 “부패척결은 검찰 본연의 사명이고 존립근거”라며 “부정부패 척결에 매진할 것”을 강조했다. 김 총장은 10일 SK건설의 담합행위에 대해 공정위에 고발권을 행사하기도 했다.
대통령, 국무총리, 법무부장관, 검찰총장이 모두 나선 상황은 이례적이다. 이 때문에 이번 정부의 사정의지가 ‘끝’을 보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이 정도로 강조한 이상 그에 상응하는 결과물이 나오지 않으면 정부의 위신이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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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전 대통령 |
◆ 박근혜, 이명박에 칼 들이대나
이번 반부패전쟁이 이명박 전 정부의 실세들을 노리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검찰의 강력한 수사를 받고 있는 포스코와 경남기업은 자원외교 비리에 깊이 연루돼 있다. 이들을 수사하다 보면 관련 인사들에 대한 수사로 자연스레 이어지게 된다. 부패척결 수사가 이명박 정권에 대한 심판 성격을 띨 가능성이 높다.
새누리당 친이계 의원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점도 이 때문이다.
친이계 좌장으로 꼽히는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은 “부패청산이 특정정권의 권력유지를 위한 구호가 되면 안 되며 큰 도적이 작은 도적을 잡는 명분으로 삼아서도 안 될 것”이라며 “부정부패 척결이 박근혜 정부의 역사적 과업이 되려면 총리 등이 부패청산을 위해서 스스로 참회하고 자리를 물러나겠다는 결단을 해야 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정병국 새누리당 의원은 “누가 기획했는지 정말 새머리 같은 기획”이라며 “집권 3년차 레임덕을 반전시키려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친이계 모임인 ‘함께 내일로’는 19일 모임을 열기로 했다가 취소했다. 현 상황에서 대규모 회동이 확전을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기 때문이다.
황교안 장관은 “나는 '친이'가 뭔지도 모른다”며 “정치적 고려 없이 철저히 부정부패를 수사할 뿐”이라며 기획수사 지적을 일축했다.
여권 내부에서 역풍을 맞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포스코 수사는 이명박 정부를 겨냥한 기획수사”라면서 “엄청난 비리가 드러나지 않으면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이명박 정부 시절의 비리를 캐내는데 소극적이었다. 일부에서 이명박 정부 때 일어난 대선 개입 사건이 박근혜 대통령 당선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에 서로 간섭하지 않는다는 암묵적 동의가 있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역풍 가능성이 나오는 이유도 바로 이 대목이다.
◆ 박근혜 대기업 등 재계도 압박
이번 반부패전쟁이 단순히 이명박 정권에 대한 심판 성격만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검찰이 손대고 있는 신세계그룹이나 동부그룹 등은 자원외교와 관련이 없는 기업들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 기업의 비리 의혹은 1년 전 이미 나온 것들인데 검찰은 다시 꺼내들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이 때문에 박 대통령이 추진해 온 경제 살리기에 재계가 협조하지 않는 데 대한 분노의 표시라는 시각도 있다.
최경환 부총리는 최근 내수를 살리기 위해 임금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하지만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는 올해 임금동결을 발표했고 재계를 대표하는 단체인 한국경영자총협회도 임금인상폭을 1.6% 이내로 제한할 것을 회원사들에게 권고했다.
정부정책과 재계 행보가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인상을 줬고 정부정책이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는 인식을 심어줬다.
또 박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1년6월 만에 문화체육 활성화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기업인들과 오찬 자리를 마련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이 참여했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평창동계올림픽에 대한 기업들의 지원도 요청했다. 평창올림픽 후원금 목표의 30% 밖에 모으지 못해 재정운영에 빨간불이 켜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통령과 만남 이후에도 평창올림픽 스폰서 유치 실적은 한 건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조양호 조직위원장이 회장으로 있는 한진그룹의 대한항공이다.
박근혜 정부는 취임 뒤 친기업과 반기업 사이를 오락가락했다. 그러는 동안 정부와 재계 사이가 멀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 대통령은 경제민주화를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돼 집권 초에 대기업의 불공정행위를 차단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롯데그룹과 코오롱그룹 등 이명박 정부에서 수혜를 받은 기업으로 꼽혀던 곳이 세무조사를 받았다.
그러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내놓고 규제개혁을 핵심과제로 꼽으며 친기업 정책으로 선회했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기업활동을 제한하는 각종 규제를 철폐했다. 기업들은 박 대통령의 규제개혁 목소리에 반색했다.
하지만 최경환 부총리는 취임한 뒤 기업의 돈을 가계로 흐르게 하겠다며 기업소득환류세제 등을 내놓았다. 기업인들은 경제 활성화를 목적으로 세수를 늘리려는 것이라며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가 지나치게 기업활동에 간섭한다며 볼멘소리를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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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이 17일 청와대에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여야대표 영수회담을 하고 있다. |
◆ 정국 주도권 잡을 수 있나
박근혜 대통령이 반부패전쟁을 통해 주도권을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박 대통령은 올해 들어 지지율 30%대가 무너지며 집권 3년차에 조기 레임덕을 맞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비서실장과 총리를 교체하고 내각개편을 실시했지만 믿었던 이완구 카드가 청문회 과정에서 각종 비리 의혹으로 힘을 잃은 데다 비서실장에 이병기 국정원장을 발탁하면서 인사쇄신 효과도 미미했다.
이러는 사이에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로 정국의 무게추가 이동했다. 두 사람은 각각 노무현 대통령 묘역과 박정희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는 등 세력을 넓히고 있다.
박 대통령이 올인하고 있는 경제 활성화 이슈도 이들이 점령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기업들과 엇박자를 내는 동안 김 대표는 경총을, 문 대표는 대한상의를 각각 방문해 재계와 소통을 넓혔다.
이런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꺼내든 부패척결은 정국의 주도권을 잡는 데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특히 경기부진에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청년실업이 늘어나면서 반기업 정서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이 때문에 반부패 전쟁은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도 있다.
정치권은 부패를 청산하겠다는 명분 자체를 뒤집기 어렵다. 부패척결 의지의 진정성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는 정도에 그친다.
박 대통령 지지율은 지난주 40%대를 회복했다. 2주 연속 상승세다. 이달 초 미국대사 피습사건으로 지지율 상승효과를 누렸지만 지난주에 더욱 지지율이 오른 것은 부패척결선언도 한몫 했다는 평가다.
문제는 피로다. 반부패 전쟁이 길어지면 모두가 피로를 느낄 수밖에 없다. 피로가 누적되면 국민 지지는 오히려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
또 박 대통령이 강력히 추진하고 있는 경제살리기의 효과를 높일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기업으로서 당장 투자확대 등 흉내를 낼 수 있지만 시간 때우기로 할 가능성도 높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