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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 |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고성능차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현대차가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으려면 지금처럼 ‘싸고 좋은 차’를 만드는 것을 넘어 ‘누구나 갖고 싶은 차’를 만들어야 한다.
정 부회장의 적극적 지원으로 현대차는 차근차근 고성능차 개발의 꿈을 현실로 만들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해 11년 만에 ‘월드랠리챔피언십(WRC)’에 성공적으로 복귀했다. 현대차는 WRC에 출전하며 쌓은 기술과 경험을 통해 현대차의 성능을 한 단계 끌어올린 고성능 브랜드 ‘N'을 출시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정 부회장은 지난해 말 BMW의 고성능 브랜드 M시리즈를 만든 알버트 비어만 부사장도 영입했다.
하지만 갈 길이 멀다. 고성능차 개발은 인내심과 끈기가 필요한 사업이다.
◆ '정의선 현대차'의 미래
고성능차 개발은 정의선 부회장이 이끌 현대차의 미래가 걸려있다.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글로벌 자동차회사 가운데 다섯 번째로 판매량 800만 대를 돌파했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현대차의 위치는 애매하다. 짧은 시간 안에 양적 성장은 거뒀지만 질적 발전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
현대차가 글로벌 자동차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면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려야 한다. 지금과 같이 ‘저렴하고 적당한 성능을 가진 차’를 만드는 회사 이미지에서 벗어나야 한다.
현대차를 둘러싼 외부환경도 녹록치 않다.
정몽구 회장은 그동안 미국과 유럽 등 선진시장의 경기침체와 신흥시장의 성장이라는 외부환경의 혜택을 톡톡히 누리며 현대차의 양적 성장을 이끌었다.
하지만 경영환경이 변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시장은 되살아나는 반면 신흥시장은 성장세가 한풀 꺾이고 있다. 가격경쟁력을 내세워 성장을 거듭했던 현대차에 불리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현대차는 고성능차를 통해 돌파구를 찾으려 한다.
메르세데스-벤츠의 AMG, BMW의 M, 아우디의 R 등 양산차 브랜드들은 이름만으로도 소비자를 설레게 하는 고성능차종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은 고성능차 개발에 매년 많은 비용을 아낌없이 쏟아 붓는다.
이들이 고성능차 개발에 투자하는 이유는 길게 봤을 때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고 기술력도 갖추는 등 무형의 이득이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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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차는 지난해 8월 월드랠리챔피언십(WRC)에 복귀한 후 처음으로 우승했다. |
◆ 정의선이 주도하는 현대차 월드랠리팀
정 부회장은 현대차의 고성능차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고성능차 개발과 관련된 모든 작업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며 직접 챙기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 1월 개막한 ‘2015 월드랠리챔피언십(WRC)’에서 두 달 연속 좋은 성적을 거뒀다. 1월 열린 개막경기에서 폴크스바겐에 이어 제조사 2위를 차지했고 지난달 열린 2차 대회에서 제조사 1위에 올랐다.
월드랠리챔피언십은 국제자동차연맹(FIA)이 주관하는 세계적 자동차 경주대회 가운데 하나다. 산악지대와 숲길, 빙판 등 극한의 상황에서 치러지는 만큼 차량의 내구성과 주행성능을 겨룰 수 있다.
모터스포츠에 참가해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은 자동차회사가 브랜드를 인정받기 위한 일종의 통과의례다. 이미지를 높일 뿐 아니라 차의 성능을 최대한 끌어올려 대회에 참가한 뒤 이 경험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양산차의 품질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2003년 이 대회에서 철수한 경험이 있다.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데 비해 효과는 적다고 판단해 참가 3년 만에 철수한 것이다.
현대차는 당시 ‘베르나’를 통해 이 대회에 참여했다. 하지만 현대차가 팀을 직접 운영하지도 않았고 차량 개발도 영국의 자동차 개조 전문업체가 맡았다. 성적도 4위가 최고성적이다.
현대차가 2012년 월드랠리챔피언십에 재도전하겠다고 밝혔을 때만 해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현대차 내부에서도 회의적 분위기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 부회장은 이런 반대를 무릅쓰고 월드랠리챔피언십에 다시 출사표를 던졌다. 이번에 팀도 현대차가 직접 꾸렸고 차량도 수백억 원을 들여 직접 개조했다. 현대차는 재도전 의사를 밝힌 지 불과 1년여 만에 출전준비를 모두 마쳤다.
정 부회장은 이 과정에서 물심양면으로 지원과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토요타와 푸조 등에서 기술 책임자를 지내며 51회의 우승컵을 들어 올린 미쉘 난단을 영입해 팀의 총 책임자로 세웠다. 2013년 월드랠리챔피언십에서 종합 2위를 차지한 스타 선수 티에리 누빌도 영입했다.
대회 참가를 위한 현대모터스포츠 법인도 독일에 설립했고 차량 개조에도 거액을 투자했다. 그 결과 현대차는 지난해 8월 출전 첫해 우승을 거머줬다.
정 부회장은 당시 드라이버와 현대모터스포츠 법인 직원에게 직접 선물과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정 부회장은 지난해 10월 스페인까지 직접 찾아가 대회를 지켜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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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버트 비어만 현대자동차 신임 부사장 |
◆ 윤곽 드러내는 고성능 브랜드 'N’
지난해부터 소문만 무성하던 고성능 브랜드 N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냈다.
현대차는 우선 'i30'나 ‘i20', '벨로스터'의 고성능 모델을 출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판매모델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엔진과 변속기 같은 동력계를 바꾸는 방식이다.
N 브랜드는 2017년경 확실한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김원일 현대차 상품전략 담당 부사장은 지난 1월 열린 디트로이트모터쇼에서 현대차의 고성능차 출시 계획에 대해 “상황을 봐야하겠지만 2017년경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N 브랜드 출시를 앞두고 현대차는 기술면에서 크게 개선됐다는 평가를 듣는다.
현대차는 지난달 고성능 터보 GDi 엔진을 탑재한 쏘나타 2.0 터보를 내놓았다.
쏘나타 2.0 터보는 최고출력 245마력과 최대토크 36.0kg.m로 기존 가솔린 2.4 GDi 모델보다 각각 27%, 43% 향상된 동력성능을 갖추고 있다.
YF쏘나타 2.0 터보 모델(271마력, 최대토크 37.2kg.m)보다 출력이 다소 낮아졌지만 최대토크 영역은 1750rpm에서 1350rpm으로 400rpm 낮아졌다. 숫자만 높이는 데서 벗어나 실용 영역에서 더욱 우수한 주행성능을 갖췄다는 평가가 나온다.
쏘나타 2.0 터보에 현대차가 개발한 ‘뉴 쎄타-i 2.0 터보 GDi 엔진’이 탑재됐다. 현대차는 2011년부터 41개월 동안 연구개발을 진행해 핵심부품의 98%를 국산화했다. 등록한 특허만 142건에 이른다.
쏘나타 2.0 터보는 현재 소비자들 사이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현대차가 드디어 방향을 제대로 잡았다는 호평도 나오고 있다. 현대차는 당초 쏘나타 터보의 판매목표를 4200대로 잡았지만 시장의 반응에 힘입어 5천 대로 올려 잡았다. 성능에 대한 자신감을 보인 것이다.
쏘나타 2.0 터보는 미국에서도 인기가 높다. 현대차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서 출시된 쏘나타 2.0 터보는 북미 전체 쏘나타 판매량의 25%를 차지하고 있다.
◆ BMW M 시리즈 만든 전문가, 부사장으로 영입
정의선 부회장은 지난해 말 알버트 비어만 부사장도 영입했다.
기술력을 단기간에 끌어올리기 위해 이미 이 분야에서 최고실력을 인정받은 전문가를 영입한 것이다.
정 부회장은 2006년에도 폴크스바겐과 아우디에서 디자인 총괄 책임자를 지낸 피터 슈라이어 사장을 영입해 기아차의 디자인 수준을 단기간에 끌어올린 경험이 있다.
비어만 부사장은 현대차에서 N 브랜드 개발을 총괄한다.
비어만 부사장은 독일 BMW에서 30여 년 동안 고성능차를 개발해 온 세계적 전문가다.
그는 1983년 BMW그룹에 입사해 고성능차의 주행 성능, 서스펜션, 구동, 공조시스템 등을 개발했다. 최근 7년 동안은 BMW 고성능 브랜드 M의 연구소장을 지냈다.
비어만 부사장은 올해 4월부터 남양연구소에서 근무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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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13일 미국 디트로이트 '2015 국제 오토쇼'에서 현대자동차의 '쏘나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를 소개하고 있다. |
◆ 오랜 시간 걸리는 고성능차 개발
비어만 부사장의 영입 사실이 알려지면서 현대차의 고성능차 개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하지만 고성능차 개발은 단순히 돈과 인력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인내심과 지속적 투자가 필요한 일이다. 영입된 인재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장기간 인내를 갖고 기다려야 한다.
신차 개발에 최소 3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고성능차의 경우 더 길어질 수 있다. 비어만 부사장이 성공적으로 활약했던 BMW는 고성능차 개발 역사만 40년이다.
현대차의 보수적 조직문화도 걸림돌로 지적된다. 현대차 특유의 경직적 문화는 외국인 임원들의 적응을 어렵게 한다.
현대차그룹의 외국인 임원은 지난해 8월 기준 2명에 불과하다. 삼성전자의 외국인 임원이 90명을 넘는 것과 비교하면 매우 적다.
피터 슈라이어 사장도 기아차 입사 초반 수직적인 기업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불만을 표시한 적이 있다. 당시 그는 기아차 임원들이 설문조사 등을 이유로 디자인을 지나치게 수정한다고 지적했다.
비어만 부사장 영입을 놓고도 우려의 소리가 나온다. 그가 현대차의 문화를 새롭게 바꿀 것인지 반대로 그가 현대차의 조직문화에 익숙해질지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그가 담당할 연구개발 부문은 매우 보수적이다.
피터 슈라이어 사장이 디자인으로 기아차를 바꿨지만 디자인과 동력 등의 성능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디자인은 단기적으로 바뀔 수 있고 눈에도 잘 띄지만 성능은 그렇지 않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정의선 부회장을 중심으로 현대차에도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현대차 안팎에서도 정 부회장에게 거는 기대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비어만 부사장이 영입되면서 그동안 현대자동차의 시험과 파워트레인을 담당하던 김해진 사장은 현대파워텍으로 자리를 옮겼다.
당초 비어만 부사장과 김해진 사장이 역할을 나눌 것으로 예상됐지만 비어만 부사장이 좀 더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셈이다. 비어만 부사장은 앞으로 현대차의 파워트레인을 맡게 된다.
현대차의 파워트레인에서 세대교체가 이뤄진 셈이다.
정 부회장도 장기적 관점에서 고성능차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정 부회장은 지난해 초 차량 문제로 월드랠리챔피언십 도중 포기하는 일을 겪은 뒤에도 법인 관계자들에게 성적은 전혀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단기간의 성적보다 장기간 기술개발과 경험을 쌓는 것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