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창규 KT 최고경영자(CEO)의 내정을 둘러싸고 배경, 경영 능력, 미래 비전 설정 범위 등에 대한 설왕설래가 활발하다. 이석채 전 회장의 중도 사임, 그것도 검찰 수사와 맞물린 불명예 사퇴로 촉발된 KT의 비정상적 경영 상태가 황 내정자의 역량에 따라 얼마나 정상화할 수 있을 지 주목되기 때문이다.
▲ 황창규 KT 회장 내정자
KT는 황 내정자가 이같은 강점을 바탕으로 현재 KT가 처한 위기를 극복하고 KT의 경영을 정상 궤도에 올려놓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장기적으로 회사의 가치를 크게 높일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정부와 경쟁업체 등 업계 전반에 걸친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데도 탁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삼성전자의 스마트폰이 사실상 한국 내수 시장을 장악한 상황에서 KT가 무선 부문의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황 내정자의 역량이 필요하다는 설명도 뒤따르고 있다.
이와함께 이석채 전 회장 취임 이후 불편한 관계를 이어온 KT와 삼성전자의 관계 발전에 적임이라는 점도 발탁의 이유로 꼽힌다. 실제 경쟁사인 애플의 아이폰 도입과 지난해 2월 ‘망중립성’ 논란으로 KT와 삼성전자의 갈등은 정점에 달했다.
당시 KT는 “삼성이 KT의 인터넷망을 무단사용하고 있다”며 삼성 스마트TV에 대한 접속을 제한했고, 삼성전자는 이를 가처분 신청으로 맞서는 등 일촉즉발의 위기까지 치달았다.
KT는 대표적인 정보통신(IT) 전문가이면서 새로운 시장 창출 능력과 도전 정신을 보유한 황 내정자로 회사 안팎의 경영 위기를 조속히 극복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KT 관계자는 “이석채 전 회장 사퇴 이후 발생한 경영 공백으로 이완된 조직을 재빨리 정비하고 내부 결속을 다질 수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내비쳤다.
◆ 내부 후보의 몰락
KT가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을 CEO로 내정한 것은 KT 안팎의 예상을 뒤엎는 것이었다. 당초 업계에서는 권오철 SK하이닉스 고문, 김동수 법무법인 광장 고문(전 정통부 차관), 임주환 고려대 전자 및 정보공학과 객원교수(전 전자통신연구원장),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성균관대 석좌교수) 등 4명의 후보 가운데 관료 출신인 김 전 차관과 임 전 원장이 유력하다는 설이 유력했다.
CEO추천위원회가 후보 4명을 압축해 발표하기 이전에는 KT 내부에서 표현명 사장, 최두환 전 SD부문장, 김영일 사장, 김영환 전 KT네트웍스 대표 등이 거론되기도 했다.
KT 관계자는 “청와대 낙점설 등의 소문이 나도는 상황에서 CEO추천위원회의 부담도 컸다”며 “20년 넘게 삼성전자에서 근무하며 반도체 사업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이끌었던 경험이 높게 평가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황 전 사장은 CEO추천위원회 회의에서 KT의 미래 전략 수립과 경영 혁신에 필요한 비전 설정 능력, 추진력, 글로벌 마인드 부문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다는 후문이다. 또 지경부 R&D전략기획단장을 역임하며 정보통신과학(ICT)분야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다양한 산업에 대한 관련 이해도도 강점으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 황창규는 낙하산에서 자유로운가
황 내정자가 일단 시급히 해결해야할 과제는 한두가지가 아니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인적 청산이라는 표현으로 집약된다. 특히 이 전 회장 재임 동안 낙하산 인사로 논란을 불러일으킨 30명 가량의 임원을 어떻게 처리할 지가 벌써부터 초미의 관심 대상이다.
최민희 민주당 의원은 지난 10월 미래창조과학부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에서 낙하산 인사로 분류한 KT 전현직 인사 36명의 명단을 전격 공개했다. 최 의원은 이들 ‘낙하산 임직원들’이 11억5500만원에 달하는 거액의 평균 연봉을 받고 있다고 폭로했다. KT 직원의 평균 연봉은 6200만원에 불과해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관련 명단에는 김은혜 전무, 이춘호 EBS 이사장(사외이사) 등의 이명박 정부 인사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또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선거대책본부장을 지냈던 홍사덕 민화협 상임의장(경영고문)과 공보단장을 지낸 김병호 전 의원(경영고문), 국민행복기금이사장을 겸임하고 있는 박병원 사외이사 등 박근혜 정부 인사도 다수 포함됐다. 인적 청산이 제한적일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이유이다.
◆ 내부 계파 갈등을 잠재울 수 있나
▲ 황창규 KT CEO 내정자 |
삼성전자라는 오너기업의 전문경영인과 재계 11위권 기업이면서도 대주주가 존재하지 않는 KT 최고경영자 역할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무노조’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달리 강성 노조가 버티고 있는 KT에서는 당연히 공존을 모색하는 시도가 있어야 한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공채 출신으로 불리는 ‘원래 KT’와 이석채 회장 이후 성장한 ‘올레 KT’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갈등도 봉합해야하는 임무가 놓여있다. 또 옛 정보통신부 출신, KTF 출신 등이 얽히고 설킨 게 KT라는 조직이다. 임직원 6만2000여명은 저마다 출신이 다르고 연봉 체계마저 모두 달라 조직 구성은 마치 모래알을 방불케 하는 측면이 있다. 그가 지닌 부담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황 내정자는 여기에다 뼈속까지 파고든 그의 삼성 ‘DNA’를 이식해야 하는 상황이다. 자칫 무리한 시도가 있을 경우 심각한 부작용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 안정보다 변화 및 개혁?
황창규의 내정 소식에 KT 내부와 업계에서는 우려감이 적지 않았다. KT그룹의 양대 간판 사업인 통신 분야와 금융업에 정통하지 않다는 판단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로벌 시장을 호령했던 황 내정자의 리더십과 미래 비전 설정 능력을 KT에 접목해 경영 혁신을 가속할 수 있느냐가 그의 경영 성공을 이끄는 관건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미 시장 포화 상태로 성장 정체에 빠져든 통신 사업과 BC카드, KT렌탈, KT스카이라이프 등 내수 위주로 편재된 KT 계열사의 한계를 딛고 새로운 글로벌 KT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차원이 다른 고강도 수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황창규의 KT 출범과 맞물려 신사업과 글로벌 사업이 크게 강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흘러나온다. 한편에서는 모두가 닫혀있다고 생각하는 통신 시장에서 새로운 가치 창출을 이뤄낼 것이라는 기대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그는 실제로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기 이전 “모바일 시대가 열릴 것”이라며 타이완 반도체 학술대회를 정례화하는 등 미래 비전 제시에서도 남다른 감각을 보여왔다.
◆ 삼성식 개혁 통할 수 있나?
황 내정자는 일단 2014년 1월 임시주주총회 이전까지 내정자 신분으로 KT 본사 및 계열사의 업무보고를 순차적으로 받는다. 지금까지 유지하던 성균관대 석좌교수직은 내려놓고 KT의 미래 경영 구상에 몰두할 예정이다.
당연한 예상이지만 경영 구상의 밑바닥에 삼성전자에서 두루 익힌 경험이 자리할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하다. 삼성그룹 출신으로 최근 마사회 회장에 취임한 현명관 씨는 취임 일성으로 “고객 중심의 사고로 업무를 처리하라”는 삼성식 사고방식을 주문했다는 후문이다.
일각에서는 제조기업 경험은 풍부하지만 KT의 주력업종인 통신 분야의 경험은 많지 않다는 점을 황 내정자가 지닌 흠결로 지적하기도 한다. 이동통신업체와 거래 관계인 단말기 제조업체 출신 인사가 KT의 최고경영자를 맡으면 시장 질서가 왜곡될 수 있다는 지적도 꽤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삼성전자 재직 시절 치밀하고 합리적인 리더십을 선보였다는 평가를 내외에서 받았다. 외부의 의심은 황 내정자가 직접 풀어야할 과제인 셈이다.
황 내정자는 지난 16일 “창의와 혁신, 융합의 KT를 만드는데 일조하겠다”며 “비전을 나누고 참여를 이끌어내 KT 경영을 정상화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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