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재호 대우조선해양 대표이사 사장 <뉴시스> |
고재호 대우조선해양 사장은 3월 28일 주주총회를 연다. 고 사장은 이번 주총에 ‘임원 퇴직금 지급규정 변경안’을 안건으로 올렸다. 사장의 퇴직금 지급률을 4배에서 3배로 줄이고, 부사장은 3.5배에서 3배로, 전무는 3배에서 2배로, 상무는 2.5배에서 2배로 각각 내리는 안건이다.
고 사장은 임기 1년을 남겨놓고 있다. 그런데 스스로 퇴직금을 삭감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고 사장의 비상한 각오를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최근 대우조선해양에 두 가지 현안이 자리잡고 있다. 수익성을 개선해야 하고 윤리성을 회복해야 한다. 고 사장은 마지막 남은 임기 1년 동안 이 현안들을 풀어야 한다. 이 문제에서 일정한 성과를 내지 못하면 내년 사장의 연임을 장담하기 어렵다.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최고경영자가 된 그에게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 불황 속에서도 수주목표 초과달성
고 사장은 ‘영업통’이다. 그는 1980년 신입사원으로 대우조선해양에 입사해 인사총무 담당 전무를 잠시 한 것을 제외하고 주로 영업일선에서 뛰어왔다. 그런 점들이 평가를 받아 CEO 자리에 올랐다. 그는 대우조선해양에서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CEO가 된 최초의 인물이다.
그래서 고 사장은 선박수주를 위해 품질이나 납기 등 현장의 생산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2012년 취임 이후 현장경영을 내걸고 초기에 서울사무소보다는 거제 옥포조선소에서 절반 이상의 시간을 보내며 회사를 이끌었다. 또 사장이 된 첫 날 옥포조선소 노조 사무실을 가장 먼저 방문했다. 성과를 만들려면 직원들의 사기를 높여야 하고 특히 노사의 단합된 모습이 중요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고 사장은 취임 이후 대우조선해양의 경영실적을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해 왔다. 대우조선해양은 공적자금이 투입돼 있다. 따라서 무엇보다 경영성과가 좋아야 한다.
대우조선해양의 모체는 1973년 대한조선공사가 기공한 옥포조선소다. 1978년 대우조선공업주식회사가 옥포조선소를 인수하며 화학제품 운반선을 최초로 건조했다. 1993년 선박 수주 세계1위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이듬해 1994년 대우중공업에 합병됐다가 대우그룹의 구조조정에 따라 2000년 대우조선으로 독립했다. 2002년 현재의 사명인 대우조선해양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대우조선해양은 2001년 산업은행과 한국자산관리공사가 1조 원이 넘는 공적자금을 투입해 대우그룹 계열사 중 가장 먼저 워크아웃을 벗어났다. 31.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산업은행이 대주주다. 한국자산관리공사의 지분 17.15%는 지난해 금융위원회로 넘어갔다. 금융위는 일부 지분을 매각해 현재는 12.15%를 보유하고 있다.
고 사장 취임 이후 대우조선해양은 조선업 불황이라는 악재 속에서도 선전했다. 취임 첫해인 2012년 수주목표를 30% 초과달성하며 수주실적 1위를 차지했다. 대우조선해양은 4년 연속 수주 목표를 초과달성했다.
◆ 문제는 수익성, 저가수주로 영업이익 크게 줄어
문제는 수익성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연결기준으로 지난해 매출액 15조3052억 원을 기록했다. 매출액은 전년보다 8.9% 늘었다. 하지만 지난해 영업이익은 4409억 원으로 전년보다 9.3% 줄었다. 2011년과 2012년 조선업의 불황 속에서 일감을 확보하기 위해 저가로 수주한 선박 물량들이 지난해부터 실적에 반영되면서 수익성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다.
저가수주의 대표적 예가 대우조선해양이 말레이시아에서 건조 중인 FLNG(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생산설비)다. 대우조선해양은 이 설비를 7억7천만 달러에 수주했다. 그러나 비슷한 설비를 삼성중공업은 14억7천만 달러에 수주했다. 연간 LNG 생산량이 150만 톤으로 대우조선해양이 수주한 120만 톤보다 많기는 하지만 7억 달러는 너무 큰 차이다. 수주를 잘 못해도 너무 잘 못한 셈이다. 이런 수주가 수익성을 악화시키고 있다.
▲ 고재호 대우조선해양 대표이사 사장 |
고 사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수익성을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고객의 오랜 신뢰 덕분에 수주 측면에서 다소 유리한 것은 사실이지만 재무적 수치는 아직 우리의 노력에 비해 만족할 수준의 결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모두 한마음 한 뜻으로 원가는 최소화하고 수익성은 극대화하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존의 관행을 탈피하는 과감한 혁신과 창의적 사고가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며 작은 낭비도 두려워할 줄 아는 절약 마인드를 모든 구성원들이 체질화하여 불필요한 낭비 요소를 없애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행히 올해 들어 조짐은 좋다. 고 사장은 지난 1월 루마니아 대우망갈리아 조선소를 방문했다. 이 조선소는 대우조선해양이 1997년 인수 이후 계속 골치덩어리였다. 거의 선박 수주를 못해 적자가 누적되면서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대우조선해양은 여러 차례 자금을 긴급지원해야 했다.
고 사장이 이 조선소를 방문한 것은 지난해 18척, 총 10억7000만 달러 상당의 선박을 수주했기 때문이다. 대우조선해양은 “불황의 영향으로 올해까지 실적이 안 좋겠지만, 수주가 많이 확보돼 내년부터 실적이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 17일 러시아와 세계 최초로 쇄빙 LNG선 계약을 체결했다. 3억1800만 달러 규모의 이번 계약은 향후 최대 16척까지 수주로 이어질 수 있어 수주 규모가 최대 5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런 수주실적을 감안하면 대우조선해양은 올해도 수주목표를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 연이은 비리로 실추된 이미지 회복 위해 안간힘
고 사장에게 윤리경영을 뿌리내리는 것도 주요한 숙제다. 이것은 특히 그의 리더십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 임직원들이 납품회사로부터 수십억 원대의 금품을 받은 사건으로 곤욕을 치렀다. 지난해 6월 구매 담당 임직원 4명이 구속된 데 이어 몇 달 뒤인 10월 14명이 무더기로 기소됐다. 조사과정에서 이들이 납품회사에 무리한 요구를 한 것까지 드러나면서 대우조선해양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들은 납품회사에 “아내가 TV를 보고 김연아 목걸이를 갖고 싶어 하니 사오라”라는 낯뜨거운 요구도 서슴없이 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 사장은 임직원에게 사과 이메일을 보내 “재발 방지를 위해 강력히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고 사장이 CEO로서 사과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또다시 납품비리가 터지면서 대우조선해양의 내부 분위기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고 사장은 상무 이상 임원 60여 명 전원의 사표를 받았다. 지난 12월 이 가운데 10명의 사표를 수리했다. 이 일로 임원인사가 연기됐고, 얼마 뒤 외부 공표 없이 조용히 이뤄졌다. 하지만 인적 쇄신의 의지가 부족한 인사라는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눈 가리고 아옹하는 식'이라는 지적도 많았다. 퇴직자 수(10명)보다 승진자 수(13명)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보다 임원 수가 5%가량 줄었다”며 “이번 인사는 지난해 실적을 반영한 통상적인 것”이라고 해명했다.
▲ 고재호 사장은 "조선회사 경영은 항해를 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
전문가들은 대우조선해양에 공적자금이 투입된 뒤 ‘준 공기업’ 같은 문화가 생겨나다 보니 오너가 없는 회사처럼 ‘책임경영’이 부족해졌다고 비판한다. 고 사장의 리더십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고 사장이 신년사에서 유독 윤리경영을 강조한 것도 이런 우려를 의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고 사장은 “윤리경영의 철저한 실천”을 최우선 경영방침으로 내세웠다. 그는 “지난해 경험을 반성하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엄격한 윤리 기준을 마련하고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겠다”며 “모든 비리나 잘못된 관행을 확실히 뿌리 뽑도록 시스템을 갖출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 사장은 최근 언론 기고를 통해 이런 말을 했다. “조선회사의 경영은 배를 타고 거친 바다를 향해하는 것과 같다. 흔히 호황은 짧고 불황은 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시황의 부침이 크다. 당연히 승자보다 패자가 훨씬 많을 수밖에 없다.” 고 사장은 ‘호행우시’라는 말을 자주 쓴다고 한다. 호랑이의 눈처럼 전략을 살피되 일단 한번 실행하면 소처럼 묵묵하게 목표를 향해 걸어간다는 의미다. 그러나 그가 현실에서 호행우시 전략을 제대로 구사하고 있는 것일까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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